컨텐츠 바로가기

07.05 (금)

이슈 오늘의 사건·사고

사고 기록엔 ‘풀액셀’ 밟았다는데…“급가속 증거” “실제와 다를수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역주행 사고, 급발진인가 아닌가

조선일보

지난 1일 밤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역주행 사고를 낸 차량. /박상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일 15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의 가해 차량 운전자 차모(68)씨는 2일 본지 통화에서 “100%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라며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으나 차량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갑자기 차량이 튀어 나갔다”고도 했다. 차씨는 현직 버스 기사로 차량 운전 경험이 많은 사실도 알려졌다.

조선일보

그래픽=정인성


급발진은 운전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차량이 급가속하는 현상을 말한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속도가 줄지 않아 보통은 다른 차량 등과 충돌한 후 멈춰 서게 된다. 최근 차량이 전자화되면서 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하지만 사고 직후 가해 차량이 서서히 멈춰 서는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면서 “급발진이 맞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정인성


①급발진인가 아닌가

2일 공개된 블랙박스 영상에서 가해 차량은 사고를 낸 이후 감속하며 서서히 멈춰 섰다. 차량 뒤편의 브레이크등도 켜졌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 교수는 “일반적으로 급발진 의심 사고는 차량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가드레일이나 전봇대 등과 강하게 부딪힌 뒤 멈춰 선다”며 “영상을 보면 차량 기능은 정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운전자 과실이 사고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반면에 하종선 변호사는 “가해 차량이 다른 차량과 가드레일 등을 들이받으면서 그 충격으로 차량 제어 장치가 리셋(reset) 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사고 후 멈춰 서는 모습만으로 급발진이 없었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했다. 급발진 후 차량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②사고기록장치 보니 ‘풀액셀’ 밟았다는데

가해 차량의 EDR(사고 기록 장치)을 분석 중인 경찰은 이날 “차씨가 사고 직전 가속페달을 90% 이상 밟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DR은 차량에 장착된 기록 장치다. 사고 직전 5초간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등의 작동 상황이 저장된다.

이를 두고 “차씨 주장처럼 차량이 갑자기 튀어 나간 게 아니라 차씨가 의식적으로 속도를 내기 위해 급가속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일방통행 도로에 역으로 진입한 운전자가 당황해 가속페달을 세게 밟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EDR 데이터만으로 급발진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EDR 자체가 고장 나 실제 상황과 기록된 데이터가 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급발진 사고를 겪었다는 한 운전자는 “보안 카메라 등을 분석해보니 EDR에 나타난 주행 기록과 일치하지 않았다”고 했다.

③실제 급발진 인정 사례 있나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매년 40건가량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접수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차량 제조사가 급발진을 인정한 사례는 없다. 대법원에서도 제조사의 급발진 책임을 인정한 경우는 없다.

해외에서는 급발진 의심 사고로 제조사가 거액의 과징금을 문 적이 있다. 2013년 도요타는 미 법무부로부터 과징금 12억달러 처분을 받았다. 당시 도요타는 집단소송을 낸 소비자들과 합의하는 데도 4조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하종선 변호사는 “최근 미국에서도 급발진 소송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지만 판결 전에 제조사와 운전자가 합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제조사들도 소비자 보호 책임을 인정한 것이지 급발진 사실을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④급발진 입증 책임은 누구에게

급발진 인정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국내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사실 입증 책임이 운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가 차량 결함 등으로 급발진 사고가 난 사실을 입증해야 하지만 일반인이 자동차의 결함을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제조사들도 차량 관련 정보를 전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입증 책임을 차량 제조사가 져야 한다. 이는 미국 법 체계의 ‘입증 책임 전환’ 규정 때문이다. 소송을 건 피해자가 아닌 제조사가 제조물에 결함이 없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는 이게 불가능하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이날 브리핑에서 “사고 원인이 급발진이라는 것은 피의자의 진술뿐”이라며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사고 차량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종석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