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5 (금)

‘시카고’ 정선아 “두 살 딸 안고 스쿼트… 허리 쭉 펴지고 등 근육 딱 잡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진 행렬 뮤지컬 ‘시카고’ 주인공 벨마역 맡은 정선아

조선일보

무대 위 소품 의자에 앉아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손에 들자, 배우 정선아의 눈빛이 달라졌다. 딸을 낳은 뒤 무대 복귀작으로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 그는 “살 못 빼면, 노래가 안 나오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더 열심히 운동하고 노래했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뮤지컬 ‘시카고’를 여는 노래는 ‘올 댓 재즈’. 스폿 조명 아래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벨마 켈리’는 바람난 남편과 여동생을 불륜 현장에서 죽이고 재판받는 중이지만 한순간도 품위와 우아함을 잃지 않는 여자다.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배우 정선아(40)는 2000년 국내 초연 이후 17번째 시즌을 맞는 ‘시카고’에서 이번에 처음 ‘벨마 켈리’를 맡았다. 리처드 기어, 러네이 젤위거가 출연했던 2002년작 뮤지컬 영화에서 캐서린 제타존스가 맡았던 그 역할이다.

“다 똑같은 검은색 옷에 입술은 빨갛죠. 별다른 소도구나 무대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믿을 건 무대 위 혼자 선 나 자신뿐이에요. ‘벨마’가 첫 곡 ‘올 댓 재즈’부터 분위기로 객석을 압도해야 그 추진력으로 뮤지컬 전체가 가속을 시작할 수 있으니 더 최선을 다하게 돼요.” 최근 공연장 연습실에서 만난 정선아는 “저만이 보여드릴 수 있는 ‘올 댓 재즈’가 있는 것 같다. 가장 좋아하고 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장면”이라고 했다.

지난 7일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시카고’는 대부분 회차가 전석 매진이다. 이 뮤지컬은 코로나 팬데믹 와중이던 2021년 공연도 객석 점유율 96%를 넘겼고, 작년에도 해외 투어팀이 들어와 공연했다. 그런데 이 공연을 또 보겠다고 관객들이 줄을 서는 것이다. 극장에서 ‘대체 이게 뭔 일인가 싶어 관객 설문조사를 해보려 한다’고 할 정도의 깜짝 흥행. 600만회 가까이 재생되며 인터넷 밈(meme)이 된 배우 최재림의 복화술 마리오네트 댄스 동영상이나, 꼭 봐야 할 한 편만 골라 보는 관객 문화의 변화 등도 이유로 꼽힌다. 최정원·윤공주·아이비·민경아·티파니·최재림·박건형 등 ‘시카고 단골’ 배우들에 새롭게 정선아가 합류한 것 역시 이 놀라운 흥행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조선일보

뮤지컬 ‘시카고’의 시작을 알리는 ‘올 댓 재즈’ 장면. ‘벨마 켈리’역 정선아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한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박또박 눌러 짚듯 흔들림 없는 발성, 대극장 무대를 꽉 채우는 카리스마는 정선아의 트레이드 마크. 백치미와 잔인함을 오가는 ‘위키드’의 하얀 마녀 ‘글린다’, 나쁜 남자의 운명적 사랑에 끌리는 ‘드라큘라’의 ‘미나’나 ‘모차르트’의 ‘콘스탄체’까지, 어떤 역할도 정선아만의 스타일로 소화해왔다. 그런 그에게도 한국 최고의 여배우들이 거쳐간 ‘벨마 켈리’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첫 공연을 하는데 손이 막 떨리는 거예요. 난생처음이었어요. 저도 놀라고 제 손 떨리는 걸 본 팬 분들도 놀라시고, 하하.”

그는 “이전에 몇 차례 ‘록시’ 역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인연이 닿질 않았다. 제 성격은 속마음을 그대로 다 표현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록시 같은 여자에 가까운데, 배우로서 저는 오히려 연기에 큰 도전과 공부가 될 벨마 역을 꼭 하고 싶었다”고 했다. “벨마는 상당히 똑똑하고 항상 계획적이죠. 늘 플랜A가 실패해도 플랜B를 갖고 있어요. 그리고 절대 좌절하지 않아요. 고요히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수면 아래서는 미친듯이 발을 놀리고 있는 백조 같은 여자라고 할까요. 그런 면이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가 처절하게 추락하고, 결국 다시 무대에 서게 되기까지 그 전부를 보여드리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조선일보

뮤지컬 '시카고'의 벨마 역을 맡은 배우 정선아. / 조인원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22년 5월 첫딸을 낳은 정선아는 지난해 뮤지컬 ‘이프/덴’으로 성공적으로 무대에 복귀했다. 출산 뒤 무대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배우가 노출 부담이 만만찮은 ‘시카고’를, 그것도 노회한 ‘벨마’ 역할로 출연한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선아가 누군가. 언론과 평론가들 앞에서 이번 시즌 ‘시카고’를 처음 선보인 지난달 초 프레스콜 때, 그는 함께 ‘벨마’를 연기하는 최정원·윤공주 배우와 함께 보디빌더처럼 등 근육을 자랑해 보였다. 정선아는 “이제 갓 두 돌을 넘긴 딸 세연이의 몸무게가 15㎏이 넘는다. 집에서 늘 아이를 안고 스쿼트를 했더니 허리도 쭉 펴지고 등 근육이 딱 잡혔다”며 웃었다.

엄마가 되는 건 축복이지만, 사실 여배우에겐 공포이기도 했다. 그 역시도 “혹시나 ‘정선아, 옛날 같지 않네’, ‘아이 낳고 오더니 이젠 안 되겠네’ 그런 이야기 들으면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아 두려웠던 시간”이었다.

한없이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시카고’는 클래식발레만큼이나 엄격하게 안무가 정해져 있는 밥 포시(Bob Fosse·1927~1987) 스타일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밥 포시는 하나의 장르죠. 내 느낌대로 추는 게 아니라 발산하기보다 수렴하고 놓아버리기보다 절제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대극장 뮤지컬을 주로 하다 보니 뭐라도 더해서 튀어 보여야 좋은 줄만 알았는데, ‘시카고’는 기본에 충실할 때 가장 빛나고 더 잘 보이는 작품이에요.”

정선아의 ‘시카고’ 공연은 9월 29일까지. 8만~16만원.

☞뮤지컬 ‘시카고’

1975년 미국 연출·안무가 밥 포시(1927~1987)가 처음 무대화한 뒤 1996년 리바이벌돼 27년간 1만회 이상 공연된 브로드웨이의 상징과 같은 뮤지컬. 세계 38국, 525도시에서 총 3만3500회 넘게 무대에 오르며 3400만 관객과 만났다. 우리나라도 2000년 초연 이후 이번 17번째 시즌까지 누적 공연 1500회, 관객 154만명을 넘어섰다.

[이태훈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