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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인도 돌진 당시 액셀 작동… 브레이크등도 안 켜져 [시청역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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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사고 ‘급발진 주장’과 배치

정확한 원인 규명엔 시일 걸릴 듯

스키드마크 확보했다던 경찰

“차량 부동액·냉각수 흐른 듯”

전문가들 ‘급발진’ 의견 분분

“브레이크 밟으면 무조건 점등”

“전자시스템 먹통 땐 안 먹혀”

국과수 EDR 분석 앞당길 듯

“운전자도 호전되는대로 조사”

사망 공무원 동료 부상 추가확인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시청역 ‘차량 돌진 참사’ 당시 도로를 역주행한 사고 차량의 보조브레이크등이 꺼져 있었던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사고 후 차량이 멈춘 현장에선 스키드마크가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 당시 운전자가 감속 페달(브레이크)을 밟지 않았고, 차량이 무리 없이 멈춘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다.

경찰과 전문가들은 급발진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실으면서도, 사고 원인 규명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운전자가 사고로 다쳐 진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사고 차량의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에도 시간이 걸려 경찰이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세계일보

3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의 한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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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경찰이 확보한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에 따르면 사고를 낸 차모(68)씨가 운전한 제네시스 G80 차량은 참사 당일인 1일 오후 9시27분쯤 웨스틴조선호텔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출입구 부근 과속방지턱에서 가속을 시작한 뒤 세종대로 방향 일방통행 4차로 도로까지 역주행했다. 사고 차량은 안전 펜스와 보행자들을 들이받은 뒤 BMW와 쏘나타 차량과 잇달아 충돌했는데, 영상 속 차량의 보조브레이크등은 미 점등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 브레이크등과 보조브레이크등이 모두 켜진다. 야간 주행 중에도 켜지는 후미등과 달리 보조브레이크등은 페달을 밟을 때만 불이 들어오기 때문에 급발진 여부를 증명할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경찰은 사고 차량의 EDR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EDR에는 사고 직전 5초간 액셀과 브레이크 작동 상황이 저장되는데, 경찰은 자체 분석 결과 차씨가 사고 직전 가속 페달(액셀)을 강하게 밟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세계일보

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 교차로 대형 교통사고 현장에서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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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에서 스키드마크가 발견되지 않은 것도 차씨가 페달을 오인해 밟았을 가능성을 더한다. 스키드마크는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았을 때 도로 표면의 마찰력으로 인해 타이어가 녹아 도로 표면에 길게 흡착되는 검은 줄을 남기는 현상이다. 스키드마크의 길이에 따라 차량의 주행 속도, 브레이크를 밟은 시점 등을 추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브레이크의 정상 작동 여부도 판단할 수 있다. 경찰은 당초 “정차 지점에 남아 있는 스키드마크를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고 차량의 부동액 또는 냉각수 등이 도로에 흐른 흔적인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차씨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음에도 제동장치가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차량에 이상이 있을 경우, 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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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남대문경찰서 교통과장이 2일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열린 시청역 인도 차량돌진 사고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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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정차할 때까지 보조브레이크등이 켜진 상태였다면 급발진이 맞겠지만, 사고 차량은 보조브레이크등 미 점등 상태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주행했다”며 “사고 당시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브레이크등은 페달과 직접 배선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문제와 상관없이 페달을 밟으면 점등되도록 설계됐다는 게 문 교수의 설명이다.

반면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브레이크등 작동 여부는 급발진 판단에 있어서 참고만 할 수 있는 정도“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요즘 브레이크등은 예전과 같이 0.5㎝만 페달을 밟아도 불이 들어오는 접촉 스위치 방식이 아니라 전자 시스템으로 설계됐다“며 ”시스템이 먹통이 됐을 때는 어떤 현상이든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DR의 신뢰성을 놓고도 문 교수는 “가장 객관적인 데이터”라며 “미국의 경우도 EDR 기록을 근거로 급발진 여부를 판단한다”고 평가했지만, 김 교수는 “사고 재연 실험을 해보면 실제와 맞지 않는 기록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차씨 측은 사고 당시 차량이 급가속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차량에 동승한 차씨의 부인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은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사고 당시 갈비뼈를 다쳐 병원에 입원 중인 차씨의 몸 상태가 호전되는 대로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진술을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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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이틀 전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 인근 사고 현장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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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전날 사고 차량 블랙박스와 EDR, CCTV 영상 6점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분석 의뢰했다. 국과수의 EDR 분석에는 통상 1∼2개월이 소요되지만, 이번에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분석 기간을 단축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날 참사로 인한 부상자가 1명 더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 부상자는 사고로 사망한 시청 공무원 2명과 함께 식사한 동료로 경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다른 피해자가 병원에 후송될 때 동행하는 바람에 경찰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로써 차량 돌진 참사 사상자는 총 16명(사망자 9명, 부상자 7명)으로 늘었다. 9명 중 6명은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3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가 사망 판정을 받았다. 부상자는 사고 차량 운전자 차씨와 동승한 부인, 보행자 2명, 차씨 차량이 들이받은 차량 2대의 운전자, 시청 공무원 1명이다.

백준무·이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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