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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97일간 '와신상담'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 다 잡은 듯했던 형제경영 물 건너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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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우호 지분 과반 근접... 경영권 복구 선언
입장 바꾼 최대주주 신동국 회장 영향력 확대
송·신 회장 비밀리에 협력... 장·차남 타격 클 듯
코너 몰린 형제... 지지부진 법적 분쟁 가능성도
한국일보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그룹 본사에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앞두고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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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는 듯했던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을 맞았다. 송영숙 회장이 장·차남에게 넘어간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손을 잡은 것이다.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사실상 경영권이 넘어간 지 97일 만이다. 주총, 법적 분쟁 등 절차는 산적했지만, 상속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핵심 우군을 잃은 임종윤·종훈 형제는 코너에 몰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3일 한미사이언스는 개인 최대주주인 신 회장이 송 회장과 딸 임주현 부회장의 지분 6.5%(444만4,187주)를 매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공동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약정 계약(의결권공동행사약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매매 이후 지분율은 송 회장 6.16%, 임 부회장 9.70%, 신 회장 18.9%가 될 전망이다. 이 외에도 직계가족과 우호 지분까지 더해 송 회장 측은 한미사이언스 전체 의결권의 과반에 근접하는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게 됐다.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는 12.46%,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9.15%를 보유한 상태다. 송 회장 측이 새로 이사진을 구성하고,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충분한 수준의 지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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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국 한양정밀화학 회장. 한양정밀화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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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회장과 신 회장은 법무법인 세종을 통해 "송 회장은 한미약품그룹 창업주 가족의 큰어른으로서, 신 회장은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의 막역한 고향 후배로서 한미약품그룹의 미래를 위한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이번 계약을 전격적으로 합의한 만큼, 앞으로 한미약품그룹을 둘러싼 어떠한 외풍에도 굴하지 않는 건실한 기업으로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으로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은 상속세 납부 재원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액주주들의 정당한 주식 가치 평가를 방해했던 '오버행 이슈'도 해소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한미약품과 OCI그룹의 통합이 무산된 뒤 상속세 부담 때문에 한미사이언스 대주주 지분에 대해 매도 압력이 강해질 것(오버행)이라는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송 회장 측은 임종윤·종훈 형제가 각각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의 대표직을 맡아 구축할 것으로 예측됐던 형제 경영 체제를 전문 경영인 체제로 재편하겠다고 못 박았다. 사실상 장·차남으로부터 경영권을 되찾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송 회장은 "창업자 가족 등 대주주(이사회 구성원)와 전문 경영인이 상호 보완하며 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이끌어 나가는 형태의 한국형 선진 경영 체제를 확립할 것"이라며 대주주는 사외이사와 함께 참여형 이사회로 물러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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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윤(왼쪽) 한미사이언스 이사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지난 3월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OCI그룹과 합병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로코모티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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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임종윤·종훈 형제는 지난 3월 정기 주총에서 송 회장이 추진하던 OCI와의 합병을 저지하며 차지한 경영권을 다시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당시 핵심 캐스팅 보트였던 신 회장이 송 회장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특히 신 회장은 형제 측과 주요 컨설팅 기업에 회사 가치 평가를 의뢰하는 등 형제 측의 미래 전략에 참여하는 듯했으나, 입장을 바꿔 전격적으로 송 회장과 손잡으면서 그룹 내 영향력을 더 키웠다. 송 회장 측이 비밀리에 협력을 진행한 만큼 형체 측은 타격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형제 측의 상속세 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외 사모펀드(PEF)와의 지분 매각 소문이 끊이질 않는 상황에서 신 회장이 마음을 돌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아직 경영권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절차는 산적해 있다. 우선 경영권 장악을 위해서는 임시 주총을 개최해야 하는데, 절차별로 지지부진한 법적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이에 대해 임종윤·종훈 형제 측은 "(신 회장의 의중을) 파악 중이고 아직 확인된 바 없어 입장을 내놓을 수 없다"며 "공시와 계약 관련 법적 문제가 없는지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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