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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주식 들고 14년 버틴 ‘창업주 고향후배’ 신동국…한미 모녀 지분 팔 때 동반 매도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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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조선DB




한미약품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반전을 맞았다. 개인 최대주주로서 ‘캐스팅보터’로 여겨져온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임종윤·임종훈 형제에게서 등을 돌리고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 모녀와 손을 잡은 것이다. 신 회장은 두 사람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1644억원에 사들여 지분율을 19%까지 끌어올리고, 그 대신 모녀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줬다.

신 회장은 지난 2010년 420억원으로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12% 넘게 사들인 뒤 지금까지 거의 팔지 않고 대부분 보유 중이다. 지금도 모녀의 우호 주주로 남아 경영까지 관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엔 보유 지분을 정리하고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번 신 회장과 한미 모녀의 주주 간 계약에는 콜옵션이나 풋옵션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신 신 회장은 태그얼롱(동반매각참여권)을 보장 받았다. 향후 모녀가 지분을 팔 때 자신의 지분도 함께 매각할 권리를 받은 것이다. 신 회장 개인의 지분이 19%, 즉 소수지분이어서 단독으로 매각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형제 지분도, 소수주주 지분도 더 안 살 듯…일단 모녀와 운명공동체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미사이언스는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의 지분 일부를 신 회장이 매수하는 내용의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모녀가 보유 중인 지분 가운데 6.5%를 신 회장이 1644억원에 사주기로 한 것이다. 신 회장은 개인 지분율을 12.43%에서 18.93%로 끌어올리고 그 대신 모녀에게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준 셈이다.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은 각각 6.16%, 9.7%의 지분율 보유하게 됐다.

개인 지분율에는 변동이 있지만 세 사람은 ‘운명 공동체’로 남기로 했다. 신 회장·송 회장·임 부회장의 합산 지분율은 34.79%로, 직계 가족 및 우호 지분을 더하면 절반에 가까운 48.19%가 된다. 이들은 의결권도 공동으로 행사하기로 했으며 주식 처분에 제한도 두기로 했다.

즉, 신 회장이 모녀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제3자에게 보유 지분을 파는 게 불가능한 구조다. 신 회장이 앞서 3월 열린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에서 임종윤·임종훈 형제의 손을 들어준 과거가 있는 만큼, 모녀 입장에선 신 회장이 다시 형제와 손 잡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게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신 회장은 형제에게서 등을 돌리고 모녀의 손을 잡은 이유가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전날 그는 한 언론 매체에 “형제의 불투명한 경영 계획 등으로 기업가치가 훼손됐으며, 특히 장남 임종윤 사장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 커져 전문 경영인 체제를 서두르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 사장은 코스닥 상장사인 디엑스앤브이엑스(DXVX)와 홍콩 코리그룹의 실소유주인데, 시장에서는 임 사장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 회사를 한미약품그룹에 매각할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신 회장은 당분간 엑시트 계획 없이 모녀의 우군으로 남기로 했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지분율을 현재 수준에서 유지할 생각이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두 아들의 소수지분을 사줄 만한 제3자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므로 신 회장이 장·차남의 지분까지 인수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신 회장은 그렇게 큰 돈을 들일 의지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신 회장과 모녀, 그 외 특수관계자들의 지분율이 49%에 육박하는 만큼 더 많은 지분은 필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과반의 지분을 확실하게 손에 넣기 위해 공개매수 등의 방법을 동원할 의지도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녀 지분 팔 때 같이 팔 수 있는 ‘태그얼롱’ 받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오너 일가가 아닌 신 회장이 결국 보유 지분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번 주주간 계약에도 그의 엑시트를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계약엔 콜옵션(자산을 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이나 풋옵션(자산을 미리 정한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은 상속세 재원 때문에 지분을 신 회장에게 파는 것인 만큼, 이들이 향후 신 회장에게서 주식을 다시 사올 돈을 마련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신 회장이 모녀를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신 회장은 그 대신 태그얼롱을 보장 받았다. 즉, 향후 모녀가 지분을 매각할 때 함께 팔 권리가 있는 것이다. 태그얼롱은 원래 대주주가 지분을 팔 때 소수주주가 동반 매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때문에 개인 최대주주인 신 회장의 케이스와는 차이가 있지만, 앞으로 송 회장이 대주주로서 신 회장 지분까지 연명보고(최대주주가 대표로 보고하는 것)하기로 한 만큼 신 회장이 모녀를 상대로 태그얼롱을 행사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임 부회장이 그동안 회사 경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왔던 만큼 신 회장에게 태그얼롱을 보장해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건 모녀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에 부과된 상속세는 총 5400억원으로, 가족은 총 2700억원을 미납한 상태다. 송 회장은 1000억원, 임 부회장은 500억원을 미납했다. 형제도 약 1000억원의 상속세를 더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너 일가는 올해 3월 700억원 규모의 3차 납부 기한을 지키지 못해 오는 11월로 미룬 상황이다. 주식담보대출 금액은 약 5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주가가 하락하며 지분 일부에 대해 반대매매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적어도 송 회장과 임 부회장 보유 지분에 대해서는 반대매매로 인한 오버행(과잉 매물 출회) 리스크가 해소된 상태다.

◇2010년 주요 주주로 등판…지금까지 대부분 보유중

한편, 신 회장은 지분을 언젠가 엑시트해야 한다는 의지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14년 간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거의 매각하지 않고 보유해온 만큼, 출구를 고민할 시기가 이미 지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신 회장이 한미사이언스의 ‘큰손’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건 2010년의 일이다.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의 고향 동생이자 고등학교(경기 김포 통진종합고등학교) 후배인 신 회장은 당시 420억원으로 12% 넘는 지분을 손에 넣은 뒤 막후에서 조용히 영향력을 키워왔다.

신 회장은 2011년과 2015년 각각 10억원, 52억원어치를 매각한 걸 제외하면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거의 팔지 않고 대부분 보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14년 동안 12%대 지분율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2015년 말 18만원을 찍고 2020년 1만7000원대까지 추락하는 동안에도 신 회장은 주식을 팔지 않고 꿋꿋히 버텼다. 계열사 한미약품 주식은 2015년 334억원어치 매각한 것과 반대되는 행보다.

이번 딜을 통해 모녀의 보유 지분에 대한 반대매매 리스크가 해소된 만큼, 신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기업가치를 높여 향후 엑시트해서 얻게 될 차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4일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경영권 분쟁 재점화 전망에 6% 넘게 오르고 있는데, 현 주가를 기준으로 신 회장 지분 가치는 약 28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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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운 기자(j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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