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7 (일)

나이지리아 ‘왕좌의 게임’...천년 묵은 왕국 차지하려 두 왕 대치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개혁파 왕, 축출됐다 올해 복귀
쫓겨난 왕 지지하는 보수파 반발
궁전과 별관서 무기 들고 대립
2027년 선거승리 ‘분기점’ 주목돼


매일경제

나이지리아 카노 왕국의 사누시 왕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의 천년 묵은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두 왕이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다.

2027년 선거를 앞두고 두 왕의 지지 세력 중 승자가 권력을 거머쥘 것으로 예상되면서, 법정과 의회에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대리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의 북서쪽에 있는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인 카노시에 위치한 왕국에서 새로 부임한 왕은 정식 궁전을 차지하고, 축출된 왕은 바로 옆 별관을 차지해 코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이슬람 10대 도시 카노왕국서 분쟁 발생
450만명의 인구가 사는 카노시는 나이지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아프리카의 10대 도시 중 하나로, 고대 무역의 중심지였다.

카노 왕국은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존경받는 왕국 중 하나다. 현재는 나이지리아 민주주의 체제의 일부로 들어가 있지만, 카노 지역은 물론 중앙정부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카노 왕국의 왕 ‘에미르’도 공식적인 권력은 거의 갖고 있지 않지만 신하들에게는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 성은 호화롭게 꾸며져 있고, 왕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다니며, 어디를 가든 시종이 따라다니며 수발을 든다. 왕이 물을 마실 때면 혹시라도 좋지 않은 모습이 드러날까 봐 시종이 천으로 모습을 감출 정도다.

카노 왕국의 왕위는 세습되지 않는다. 왕은 카노 주지사와 선발권을 가진 ‘킹메이커’들의 선택을 받는다.

매일경제

나이지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아프리카의 10대 도시 중 하나인 카노시의 시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개혁파vs보수파 정면충돌...쫓겨난 사누시 왕
지난 2014년 사누시가 왕에 오를 때만 해도 카누 왕국의 왕권은 순조롭게 계승됐다.

문제는 사누시 왕이 기존 왕들보다 더 개혁적인 성향을 갖고 발언권을 강화하면서 시작됐다.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로 나이지리아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사누시 왕은 여성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고, 가난한 남자는 여러 명의 아내와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남성 지배세력에게서 서양의 꼭두각시라는 조롱을 받으며 반감을 샀다.

정치인의 부정부패도 강하게 비판했는데,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노주 최고 권력자인 압둘라하 간두제 주지사를 적으로 돌렸다. 간두제 주지사는 거액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찍혀 비판받았다.

간두제 주지사는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사누시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사누시의 친척이자 조언자였던 아미누에게 왕위를 넘겨줬다. 사누시는 나이지리아의 가장 큰 도시인 라고스로 도망쳤고, 새로 취임한 아미누 왕은 과거 왕들과 마찬가지로 현실 정치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폐위된 왕, 돌아오다...본격적인 대치 시작
매일경제

나이지리아 카노 왕국의 사누시 왕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폐위를 주도한 간두제 주지사는 지난해 선거에서 아바 유수프에게 패배했는데, 유수프 신임 주지사의 핵심 공약 중 하나가 바로 사누시 왕을 복귀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23일 유수프 주지사는 아미누 왕을 왕궁에서 쫓아내고, 사누시 왕을 다시 복귀시켰다. 수백 명의 카노 지역 귀족들이 함성과 함께 사누시 왕의 복귀를 환영했다. 귀족들은 사누시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편지를 건넸다. 심지어 사누시 왕을 배신한 귀족들도 경의를 표했다.

그날 밤늦게 축제가 끝난 뒤 사누시 왕은 다시 궁전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아미누는 폐위된 지 불과 며칠 만에 연방정부가 파견한 군대와 함께 왕국으로 돌아와 영빈관으로 사용되던 별관을 차지했다.

아미누의 법률 대리인은 아미누가 폐위됐을 때 정확한 법적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별관에서는 수십 명의 무장 경찰들이 아미누를 24시간 경비하는 한편, 왕궁에서는 사누시 왕의 일반인 지지자 수백 명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대기와 칼로 무장한 채 경비를 서는 대치 국면이 이어지게 됐다.

유수프 주지사가 두 차례에 걸쳐 아미누를 별관에서 축출하고 체포하라고 경찰에 명령했지만, 지금까지 경찰은 이를 거부해 왔다. 경찰은 오히려 사누시 왕을 지키고 있는 자경단들에게 물러나라고 명령했다.

▲2027년 선거 승패 가를 대결...법정다툼 치열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두 왕의 대립이 전 국민의 관심이 끌어모으면서 2027년 치러질 선거 승패의 향방을 가를 분기점으로 떠오르자 사누시 왕을 지지하는 지방 개혁파와 아미누를 지지하는 중앙 연방정부 보수파의 힘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유세프 주지사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누시 왕을 유임시켜야 한다. 반면 중앙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보수파는 아미누를 왕위에 복귀시켜야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다.

법정 다툼에서도 주 법원에서는 사누시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반면, 연방법원에서는 아미누가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서아프리카 이슬람 사회를 다루고 있는 역사학자 압둘바싯 카심은 “사누시는 훼방꾼이지만, 아미누는 아무것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라며 “둘은 더 큰 정치 체스 게임에서 장기말이 됐다”고 설명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