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7 (일)

디지털 성범죄, 아동·청소년도 예외는 아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여성가족부, 중·고등학생 4757명 조사했더니…

응답자 3.9% "성적 이미지 보내라거나 공유하자는 요구 받았다"

많은 피해 청소년이 경찰·지원 기관 대신 친구나 선후배에게 알려

"미성년자에게 신체 사진과 성행위 영상을 전송받아 상습적으로 성 착취 영상을 제작한 20대 남성 A씨 등 10명을 검거하고..."

"12살짜리 초등학생에게 접근해 성 착취물을 찍어 보내게 한 남성 25명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들이 피해 아동 한 명에게 요구한 성 착취물은 6개월 동안 1790여개..."

JTBC

지난 5월 24일 보도된 JTBC 〈'성 착취물 사이트' 14곳 운영...미 영주권자 20대 체포〉 뉴스룸 리포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요즘 이런 내용의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실상은 어떨까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여성가족부가 전국 중·고등학생 4천757명을 조사했습니다.

◆ 청소년들, 이런 피해를 보았다

“네 사진 보내”

누군가로부터 본인의 성적 이미지를 보내라거나 공유하자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가 3.9%였습니다. 온라인에서만 아는 사람으로부터 요구받은 경우가 오프라인 지인으로부터 요구받은 경우보다 많았습니다.

“찰칵”

다른 사람이 동의 없이 본인의 성적인 이미지를 촬영했다고 응답한 경우도 2.7%였습니다. 낯선 사람이 카메라 등을 숨겨 촬영한 경우(1.1%)보다, 아는 사람이 동의 없이, 강제로 혹은 몰래 찍은 경우(1.7%)가 더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동의 없이 촬영한 것도 문제지만, 다른 사람의 요구로 자신이 제작한 성적 이미지를 전송하거나 공유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도 0.9%나 있었습니다.

“네 사진 퍼뜨릴 거야. 싫으면 밖에서 따로 만나자.”

“성적 이미지를 유포하겠다”는 협박, 강요를 받은 경우도 0.6%였습니다. 유포하지 않는 대가로 '오프라인 만남'을 강요받은 비율(24.7%)이 가장 높았고, 성적 사진·동영상을 추가로 요구한 경우(23.9%)가 그다음이었습니다. 성관계를 요구받은 청소년도 12.3%나 됐습니다.

“이거 네 얼굴 맞지?”

조사 대상 청소년 중 1.1%가 한 개 이상의 성적 이미지를 공유 또는 유포 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습니다. 대부분 청소년의 일상적인 사진에 다른 성적 이미지를 합성한, '허위 영상물'과 관련한 피해였습니다. 유포 가해자는 주로 친구(64.4%)였습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하기보다는 오프라인에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지인에게 전송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 피해 청소년들은 경찰 대신 친구를 택했다

낯선 사람 혹은 지인이 동의 없이 나를 촬영했다면? 누군가 나와 관련한 성적 이미지를 유포했거나 유포한다고 협박한다면? 어른들은 보통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을 떠올릴 텐데요. 하지만 많은 청소년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거나 개인적인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경찰이나 피해자 지원기관 같은 공적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JTBC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아동·청소년 성 착취 관련 인식 및 피해 경험 조사 결과 자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디지털 성범죄 피해 최소화 위해 미국과 협업한다

다양한 피해 촬영물이 유포되면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성인 사이트에 광범위하게,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가 삭제 지원을 어렵게 만든다고 합니다.

박성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이하 디성센터) 삭제지원팀장은 "불법 성인 사이트 중 한국에 서버를 둔 곳은 4%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95% 이상이 해외 서버다. 그중에서도 서버가 제일 많은 곳이 미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과의 공조와 협업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디성센터를 운영하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미국 실종학대아동방지센터(이하 NCMEC)와 협력해오고 있습니다. NCMEC은 1984년 설립된 비영리 기구로, 아동 성 착취 근절 및 실종·학대 방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디성센터가 NCMEC과 피해 촬영물 삭제 업무를 함께 해온 건 작년 9월부터인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까지 아동 성 착취물 4천555건을 삭제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JTBC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신보라(왼쪽), NCMEC 부대표 존 셰한(오른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엔 업무 협약(MOU)도 맺게 됐습니다. 디성센터에서 피해 촬영물 삭제 요청을 대량으로 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은데요. 이때 디성센터 활동가들이 NCMEC 시스템에 직접 접속해 처리할 수 있도록 전용 접속 계정을 만들 예정입니다. 또 NCMEC이 올해 연말에 선보일 글로벌 정책 플랫폼(GPP)에 디성센터가 한국 대표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전 세계 48개국이 온라인 아동 성 착취 관련 정책, 피해자 지원 제도, 우수 사례 등을 공유하며 협력할 예정입니다.

◆ 아동·청소년 성 착취, 미국도 한국처럼 심각한가요?

미국에서도 아동·청소년 성 착취 범죄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NCMEC에 신고되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 사건이 2021년 2천939만 건, 2022년 3천205만 건, 2023년 3천621만 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범죄는 '아동 음란물 소지·제작·배포'입니다. 작년엔 3천592만 건이 신고됐습니다. 그다음이 '성적 행위를 위한 온라인상 아동 유인'입니다. 2021년엔 4만4천여 건이었는데, 지난해에 18만6천 건으로 3배 이상 급격히 늘었습니다.

◆ 미국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 촬영물 삭제 구조,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를까?

존 셰한 NCMEC 부대표가 지난 2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을 찾아 국내 언론들과 인터뷰하며 NCMEC의 운영 구조를 설명했습니다.

JTBC

존 셰한(John Shehan) 미국 실종학대아동방지센터(NCMEC) 부대표가 지난 2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주최한 언론 인터뷰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형법에는 기업의 신고 의무를 명시해둔 조항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 기반을 둔 기업이 네트워크상에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발견하면, '사이버 팁라인(Cyber Tip line, 온라인 제보 창구)'에 신고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의무가 더 강화됐습니다. 아동·청소년을 유인하려는 시도, 성 착취를 위한 인신매매 시도가 발견될 경우에도 신고해야 하도록 법이 개정된 겁니다. 국내 기업은 성 착취물이 발견되어도 먼저 신고할 법적 의무는 없고, 기관에서 피해 영상물 삭제를 요청하면 그 요청에 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존 셰한 부대표는 “NCMEC은 미국 기업들과 공고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신속하게 삭제를 해주는 편”이라며 “보통 24~48시간 이내에 삭제 조치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 “온라인 플랫폼을 꾸준히 모니터링해서 삭제 요청을 보내고, 이에 불응하면 미국 사법·정보기관에 보고해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신보라 원장은 “국내에서도 기업이 스스로 성 착취물을 탐지하고, 이후 신고·삭제 조치까지 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보완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 혹시 지금 피해를 입고 있다면….

온라인 성 착취 피해로 고통받는 청소년,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디포유스(d4youth)'라는 전용 상담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라인에 모두 채널이 있습니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성 착취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물론, 상담을 원하는 아동·청소년·조력인 등 누구나 상담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피해 상황별로 정보도 제공하고, 피해 촬영물 삭제 및 심리·법률·의료 상담 지원도 연계 받을 수 있습니다.

JTBC

디포유스(d4youth) 상담 채널 소개 포스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희령 기자

JTBC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by JTBC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