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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늑대 경례’가 뭐길래… 독일·튀르키예 외교 갈등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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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 Why]

조선일보

튀르키예 축구선수 메리흐 데미랄이 지난 2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유로 2024 16강 토너먼트에서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두 번째 골을 넣고 양손으로 '늑대 경례'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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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진행 중인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4)에서 튀르키예의 한 선수가 골 세리머니로 선보인 ‘늑대 경례’가 국가 간 외교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독일은 이 손동작이 인종차별적인 우익 극단주의 단체의 상징이기 때문에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튀르키예는 튀르키예인들이 민족적 자부심을 나타내기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손동작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제의 세리머니는 2일 저녁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튀르키예와 오스트리아의 16강전에서 나왔다. 2대1로 튀르키예가 승리한 이날 경기에서, 튀르키예의 중앙수비수 메리흐 데미랄(26)이 두 골을 모두 득점했다. 데미랄은 후반 14분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양손으로 ‘늑대 경례’ 세리머니를 했다. 엄지와 약지·중지를 모으고 나머지 검지와 새끼 두 손가락은 곧게 펴 늑대의 얼굴 모양을 만든 것이다.

유럽에서 이 손동작은 튀르키예 우익 극단주의 단체 ‘회색 늑대’의 인사법으로 통한다. 튀르키예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튀르크족 민족주의를 앞세운 회색 늑대는 튀르크족을 제외한 쿠르드족과 유대인 등 다른 민족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주로 1970년대 튀르키예 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테러·살인 등 정치 폭력 사태를 일으켰다. 이 때문에 독일 헌법수호청은 이 단체를 우익 극단주의로 분류해 감시하고 있다. 튀르키예와 경기를 펼친 오스트리아에서는 이 손동작을 법으로 금지, 최고 4000유로(약 600만원)의 벌금형까지 내린다. 프랑스도 회색 늑대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개최국인 독일 정부는 자국 경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당 세리머니에 대해 비판 성명을 냈다. 낸시 페저 독일 내무장관은 경기 직후 “튀르키예 우익 극단주의자들의 상징은 우리 경기장에 설 자리가 없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인종차별의 장으로 삼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유럽축구연맹(UEFA)에 조사를 촉구했다. UEFA도 이날 데미랄의 ‘부적절한 행동’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튀르키예는 반면 이 같은 비난이 독일 사회의 가장 큰 이민자 집단인 튀르키예인들을 향한 ‘외국인 혐오’라고 맞서고 있다. 늑대는 튀르크인 설화에서 고난에 빠진 튀르크인을 구해준 신성한 동물이고, 해당 경례는 따라서 단순히 민족적 전통의 표현일 뿐 우익 극단주의의 상징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튀르키예 외무부는 3일 튀르키예 주재 독일 대사를 청사로 불러 페저 장관의 성명에 대해 항의했다. 외무부는 “(골 세리머니는) 단순히 역사적, 문화적 상징을 사용한 것일 뿐인데, (독일과 UEFA가) 정치적 동기로 조사를 한다”며 “독일에서 이 손동작을 법적으로 금지한 것도 아닌데, 독일 당국의 반응 자체에 외국인 혐오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데미랄 역시 경기 이후 기자회견에서 “세리머니는 튀르키예인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숨은 메시지 같은 것은 없다”면서 “이 세리머니를 더 보여줄 기회가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처럼 유럽 국가들과 튀르키예가 이 손동작에 대해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늑대 경례 사건’의 해결이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독일 MDR방송의 튀르키예 전문가 툰자이 외즈다마르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도 몇 년 전 늑대 경례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튀르키예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서도 “데미랄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을 것이다. 늑대 경례는 튀르키예 사회와 팬들, 팀을 분열시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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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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