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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돈 안 된다는 외부위탁운용… 사업자 이탈에도 NH투자증권 버티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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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금융투자업계의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던 외부위탁운용(OCIO·Outsourced Chief Investment Officer) 시장이 성장통을 겪고 있다. 낮은 수수료에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이를 견디지 못한 사업자는 관련 조직을 축소하거나 없애고 있다. 자연스레 OCIO 시장은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을 비롯한 일부 대형사 중심으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여전히 OCIO의 잠재력을 믿는 금투사들은 기금형 퇴직연금, 패밀리 오피스 등 OCIO가 진출할 분야가 점점 늘어날 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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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래소 자금 관리 두고 5개 증권사 경쟁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다음 주 중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하나증권 등 5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1500억원 규모 OCIO 기관 선정을 위한 면접 심사를 진행한다. 지난해 거래소는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을 OCIO 기관으로 선정하고 각각 1000억원, 500억원을 맡긴 바 있다. 올해 이 두 증권사는 자리를 계속 사수해야 하고, 나머지 3개 증권사는 자리를 빼앗아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OCIO 사업은 2000년대 초 연기금 투자풀이 주간운용사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연기금 투자풀은 연기금의 여유 자금을 한데 모아 주식·채권 등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는 연기금 투자풀 방식으로 모은 돈을 대표 운용사 1~2곳이 맡아 굴렸지만, 각 기관의 적립금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연기금 투자풀에 참여했던 기금이 독자적으로 OCIO 기관을 선정하는 일이 늘었다.

주택도시기금·고용보험기금·산재보험기금·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 등 공적 기금과 민간 기업, 대학 발전기금,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여윳돈을 은행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하는 일이 많았는데, 기금 수익률 강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OCIO의 역할론도 더욱 부각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특정 기금 관리를 통째로 맡으면서 자본시장 내 입지를 다질 수 있다는 점도 OCIO를 하는 이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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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낮은 수수료에 “사업성 없다” 속속 이탈

문제는 수익성이다. OCIO 사업자가 공적 기금을 위탁 관리해 받는 수수료는 3bp(1bp=0.01%포인트) 수준에 불과하다. 주식형 공모펀드의 운용보수가 50bp 안팎이란 사실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편이다. 한 대형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경쟁 입찰이라 높은 수수료를 적기 힘든 측면이 있다”며 “특히 나라 곳간 성격의 공적 기금은 국민 정서상 사업자가 보수를 많이 챙겨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OCIO 사업자의 또 다른 주요 타깃인 DB형 퇴직연금은 날로 그 규모가 위축하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 자체는 성장 추세이나, 돈이 몰리는 영역은 DB형이 아니고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이다. 2014년 70%에 달하던 퇴직연금 내 DB형 비중은 지난해 54%까지 작아졌다. 대학 기금도 인구 감소와 대학 재정난 등의 영향 탓에 미래가 불투명한 고객으로 분류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OCIO 시장에 진출했던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가운데 본부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이탈하는 사업자가 발생하고 있다. 운용업계에선 지난 2018년 OCIO 사업을 시작한 한화자산운용이 최근 OCIO솔루션사업본부를 없앴고, 2년 전 이 시장에 진출했던 키움투자자산운용도 OCIO솔루션팀을 자산배분전략팀에 합치면서 철수를 결정했다. 신한투자증권은 OCIO사업본부를 부서 단위 조직으로 축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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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때까지 길게 봐야” 버티는 대형사들

물론 OCIO 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계속 긍정적으로 보고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사업자도 존재한다. 이전에는 자산운용사가 주로 OCIO 사업을 추진했는데, 현재는 인력·자금 동원 역량에서 운용사를 앞서는 대형 증권사가 이 시장을 장악해 가는 분위기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공공기관과 민간법인의 여유 자금이 계속 늘고,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패밀리 오피스 시장도 활성 단계인 만큼 뭉칫돈을 맡길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업자들이 기대하는 분야는 언젠가 국내 도입이 예상되는 ‘기금형 퇴직연금’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회사와 근로자, 외부 전문가가 만든 기금운용 위원회가 해당 기업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관리하면서 금융투자사들에 자금 운용을 맡기는 개념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여러 사업장이 적립금 공동 관리에 나설 수도 있다. 가령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기업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기금운용 위원회를 꾸릴 수 있다는 의미다. OCIO 사업자 입장에선 주택기금 같은 대형 기금이 늘어나는 셈이다.

이런 미래의 큰 먹거리를 기다리면서 OCIO 사업자들은 이미 형성된 시장을 뺏고 빼앗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근 두각을 보이는 회사는 증권업계 최초로 OCIO사업부를 만든 NH투자증권이다. 올해 1월 NH투자증권은 통일과나눔 재단의 OCIO 신규 사업자로 선정됐고, 5월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 OCIO 단독 사업자로 뽑히기도 했다. 주택기금과 성과보상기금, 건설공제조합, 교직원공제회, 강원랜드 등도 NH투자증권의 OCIO 고객이다.

경쟁사들은 NH투자증권이 관리하는 기금 가운데 올해 계약 만기가 도래하는 자금을 쟁탈하고자 준비 중이다. 한국거래소를 비롯해 성과보상기금, 금융투자협회, 서민금융진흥원 등이 올해 하반기 중 새 사업자를 찾는 OCIO 자금이다. 국내 대형 증권사 OCIO 사업부 관계자는 “당장 수익이 적게 나더라도 인내 구간을 버틴 회사가 결국에는 OCIO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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