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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37일 만에 또 통과된 ‘채상병 특검법’…필리버스터까지 등장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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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규명 방식 놓고 여야 대립
野 특검 요구에 與 “수사 먼저”
국회 본회의 또 통과했다지만
尹거부권 전망…정국은 급랭


매일경제

지난해 7월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故) 채모 상병 영결식에서 영현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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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지키겠다며 씩씩하게 집을 나선 청년이 하루아침에 순직했다. 황망한 죽음 앞에 여야는 모두 진상 규명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분명 뜻은 같이하는데 그 방법에 있어서는 줄곧 평행선을 달린다. 현재로서는 합의점을 찾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분위기다.

급기야는 특검법 제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까지 2년 3개월 만에 등장했다. 여야의 첨예한 대치 끝에 ‘채상병 특검법’은 야당의 주도로 지난 4일 국회 문턱을 다시 넘었다. 매경닷컴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인 이 법안을 집중 분석했다.

‘채상병 특검법’이 대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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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인근에서 열린 해병대 예비역연대 주최 ‘해병대원 순직 및 수사외압 사건 특검법, 국정조사 촉구 범국민 집회’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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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채상병 특검법의 정식 명칭은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했고, 그 외 170명의 의원이 공동 제안했다.

특검법은 지난해 경북 예천군에서 집중호우로 실종자가 발생, 국방부가 수색 작전을 진행하던 중 해병대원 채 모 일병(순직 후 상병으로 추서)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사건과 관련해 순직 해병 수사 방해와 사건 은폐 등의 행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게 골자다.

제21대 국회 임기 중이었던 지난 5월 2일 민주당을 중심으로 범야권 의원들이 통과시켰고, 같은 달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일주일 뒤 재표결이 이뤄졌다. 무기명 재표결 결과, 재석 294명 중 찬성 179명, 반대 111명, 기권 4명으로 부결됐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다시 통과하려면 재석 의원의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재석 294명 중 196명)이 찬성해야 한다. 당시 재적 인원 296명 중 무소속 윤관석·이수진(서울 동작을) 의원 등 2명은 불참했다.

법안이 폐기된 지 이틀 만이자 제22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5월 30일 민주당은 특검법을 곧바로 수정·재발의했다. 법안은 6월 21일 야당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여당은 또다시 강하게 반발하며 지난 3일부터 이틀간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필리버스터는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의 표결로 약 26시간 만에 강제 종결됐다. 곧바로 표결에 부쳐진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 5일 재석 190명 중 찬성 189명, 반대 1명으로 가결됐다. 새 국회 들어 처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이다. 지난 국회에서 폐기된 지 37일 만이다.

진상 규명엔 동의, 방법엔 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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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가 종료되고 채상병 특검법 표결이 시작된 가운데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언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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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병 특검법을 대표 발의한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누가 이 사건의 수사를 방해하고 은폐하고 조작했는지 밝혀서 그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법안”이라며 “순직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진상은 온전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가 짚은 의문점은 ▲누가 장화를 신고 거센 물살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는가 ▲누가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작전을 진행하도록 지시했는가 ▲작년 7월 31일 휴가 중인 국방부 장관에 걸려온 유선전화는 누가 쓰던 전화인가 ▲지난해 8월 2일 대통령의 개인 휴대폰은 왜 급박하게 움직였는가 ▲수사 결과 보고서는 누구의 지시로 회수되었는가 ▲누가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누명을 씌웠는가 ▲누가 주범이고 누가 공범인가 등이다.

국민의힘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등에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야권이 수사를 특검의 형태로 진행하려는 건 대통령 탄핵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경찰 수사 이후 특검 여부 판단’이라는 방침을 공언한 만큼 이를 존중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지난 3일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선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특검후보자 추천권과 관련해 “민주당 및 다른 단체에만 독점적으로 부여하면서 대통령의 특별검사에 대한 임명권의 실질을 침해하여 헌법상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야당이 일방으로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면 수사 결과의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고, 나아가서는 정치적 의도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게 국민의힘의 판단이다.

유 의원은 또 채상병 영결식에 민주당 의원이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기도 했다. “민주당은 수사외압 의혹이 언급되자 태도를 바꿔 젊은 군인의 고귀한 순직을 선동의 제물로 오염시켰다”고 비판했다. 진실 규명이 목적이라기보다 윤 대통령 탄핵을 위한 소재로 야당이 정쟁화하고 있다는 게 여권의 시각이다.

통과됐지만, 또 尹 거부권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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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에게 무제한토론을 종료할 것을 요청하자,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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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결을 앞두고는 일각에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직에 도전하는 한동훈 후보의 경우 대법원장 등 제삼자가 추천하는 ‘제삼자 특검’을 공개 제안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 역시 “추천 주체 변화는 논의가 시작되면 가능성이 언제든지 열려 있다”며 수용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한 후보와 경쟁 관계인 원희룡 후보는 제삼자 특검이 대안이 아님을 강조하며 “역사는 대통령과 당 대표의 갈등이 정권을 잃게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며 특검법 주장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한 후보의 제안이 당론을 거스르는 일방적 견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선(先)수사 후(後)특검’ 방침을 따라야 한다는 논리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 속에 특검법은 또다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필리버스터 강제 종결과 특검법 강행 처리에 반발해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안철수·김재섭 의원만이 본회의장에 남아 각각 찬성, 반대표를 던졌다.

재발의 된 채상병 특검법은 앞서 민주당만이 가졌던 특검 추천권을 비교섭단체에도 부여, 조국혁신당 등도 특검 후보를 추천할 수 있게 하는 등 기존 법안과 다른 내용이 일부 포함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직후 “헌정사에 부끄러운 헌법 유린을 개탄한다”는 입장을 냈다.

특검법에서 비롯한 여야 대치로 정국은 또다시 얼어붙는 분위기다. 5일 열릴 예정이었던 제22대 국회 개원식도 연기됐다. 국민의힘이 민주당과 우원식 국회의장을 규탄하며 개원식 불참을 선언하고, 윤 대통령에게도 불참을 요청한 까닭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 재표결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 안팎에서는 탈출구가 마땅찮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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