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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설왕설래] 만화만도 못한 검사 탄핵소추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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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2일 발의한 검사 4명 탄핵소추안의 후폭풍이 거세다. 한 검사는 술자리 이후 추태를 부렸다는 의혹이 탄핵 사유로 적시됐는데, 당사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법적 대응도 불사할 뜻을 밝혔다. 그의 동료들은 “회식 때 음주를 조금 하긴 했으나 멀쩡하게 퇴근했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이 검사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 등이 연루된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사건 수사에 관여했다. 탄핵소추 시도의 진짜 이유는 이 대표에게 해가 되는 수사를 한 데 따른 보복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세계일보

더불어민주당 김용민(왼쪽부터), 민형배, 장경태, 전용기 의원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박상용, 엄희준, 강백신, 김영철 검사 등 '비위 의혹'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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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대상 명단에 오른 다른 검사의 경우 민주당은 위법한 압수수색을 문제로 삼았다. 그런데 정작 소추안에 기재된 압수수색 날짜가 틀렸다. 어디 그뿐인가. 부당하게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며 근거로 든 언론사 이름과 보도가 이뤄진 날짜도 엉터리다. 해당 검사는 2021년 벌어진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그래서인지 이 또한 ‘보복성 탄핵’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민주당이 이루겠다는 것이 검찰 개혁인지 아니면 한풀이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급하게 진행해서 그렇다’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도 시원치 않을 탄핵 절차를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헌법을 경시하는 태도에 그저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오죽하면 이원석 검찰총장이 5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의 (검사) 탄핵소추는 직권남용이자 명예훼손”이라며 “위법한 부분에 대해 법률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했겠나.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검사 탄핵소추안을 거둬들이길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지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꼭 20년 전인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선고에 앞서 그해 4월 30일 열린 마지막 변론에 소추위원 대리인으로 출석한 한병채 변호사는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된다고 여겼는지 노 대통령 측을 맹비난하며 “헌법재판이 ‘망가’가 됐다”고 외쳤다. 망가는 일본어로 ‘만화’를 뜻한다. 윤영철 당시 헌재소장은 분노를 삭이면서도 “한 변호사의 망가 발언은 유감”이라고 일침을 가한 뒤 변론을 종결했다. 거대 야당이 오류투성이인 검사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를 기어코 밀어붙인다면 이 사안은 결국 헌재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재판관들이 속으로 ‘만화만도 못한 국회’라고 여기지는 않을까.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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