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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미술품 감정까지 국가가 맡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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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술품의 진품 여부와 평가액 따위를 가늠하는 ‘감정’을 둘러싼 화랑가의 해묵은 ‘감정싸움’을 다룬 기사. <한겨레>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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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발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기능 중 하나는 미술품의 진품 감정이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주고 구매한 작품이 위작으로 판정되는 순간 금전적 가치는 완전히 무화된다. 따라서 진품을 검증하고 확인해주는 객관적이고 책임 있는 감정기구의 존재는 너무나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감정 시비가 있을 때마다 국가에서 전문가를 섭외해 책임 있는 감정평가기구를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언뜻 당연하게 들리는 이 요구가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선진국에서 국가가 아니라 작가의 재단이 감정업무를 전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 운영’ 주장은 작품의 진위를 100%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과학기술 발달을 향한 과도한 믿음 탓에 작가가 사용한 재료와 고유의 붓 터치를 위조범의 것과 비교해 판별하는 일 정도는 당연히 가능할 것으로 예단한다. 그러나 통상 지불하는 수십만원의 감정료를 받고는 값비싼 과학 장비를 도입해 분석하는 감정을 실행할 수 없다. 또한 실행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100% 정확한 판정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최첨단 기술의 효용, 제한적





작가가 기계가 아닌 이상 모든 작품의 품질이 균질적일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와 달리 대충 그리다 만 태작이 유통될 수도 있다. 자신의 작업실이 아닌 외지에서 작업해 평소 쓰던 재료가 아닌 다른 재료를 사용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과학적 분석 결과가 판정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사례 못지않게, 그렇지 못한 사례가 공존한다. 특히나 위작 의혹은 언제나 무언가 전형적이지 않은 작품인 경우에 발생하고, 그런 작품의 사례는 늘 예외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최첨단 과학기술의 효용은 의외로 제한적이다.



감정에서 과학적 분석보다 더 절대적인 확실성을 제공하는 것은 작품의 유통이력이다. 흔히 프로비넌스(provenance)라고 부르는 작품의 유통이력은 취득 경로를 역추적해 작가에게서 유래한 작품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작가에게 직접 작품을 구입한 사람을 역추적해 확인할 수도 있고, 작가가 전시에 출품한 작품인 경우에는 도록이나 전시 장소로 작품을 보낸 송장 등과 같이 출품을 증빙하는 자료로 추적할 수도 있다. 감정 의뢰를 접수할 때 감정기구는 작품과 함께 작품이력을 최대한 상세하게 작성하도록 요구하고, 무엇보다 먼저 이력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작업을 우선시한다.



프로비넌스가 이토록 중요하기 때문에 해외의 주요 경매회사들은 출품작의 유통이력을 상세하게 기재한다. 몇 년 전부터는 한국 경매회사들도 출품작의 유통이력을 기재한다. 다만 서구에 비해 미술시장의 역사가 길지 않고, 과거에 미술품이 절세 수단으로 주로 사용되면서 거래기록의 노출을 꺼리던 관행 탓에 작품의 유통이력을 작가 본인에게까지 추적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복수의 전문 감정인이 안목감정을 한 후에 협의로 판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판정 기준이 반드시 만장일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사실상 일부 감정인이 위작으로 본 작품이 진품 판정을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감정인의 구성이 조금 바뀌면 진품이던 작품이 재감정 시에 위작으로 판정받는 사례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진품 판정의 번복은 분쟁을 야기하며, 결국 시장의 안정성과 신뢰를 훼손한다.



한국의 감정기구는 애초에 화랑협회에서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화상들이 중심이 돼 구성했다. 2000년대 초반 판정 오류로 시비가 잦아지자 미술품감정원이라는 새로운 기구가 발족하면서 화랑협회의 감정기구를 흡수했다. 2019년경 이우환 작품의 판정 시비가 발생하면서 화랑협회가 다시 자체 감정기구를 발족시키고, 기존의 감정원은 주체와 이름을 변경해 새롭게 출범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기구가 개편되고 새로 발족하는 와중에도 사실상 기존의 감정인들은 크게 바뀌지 않은 채 다수가 그대로 감정을 하고 있어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국가가 나선다고 뾰족수 없어





그래서 국가가 전문성을 지닌 감정인을 고용해 직접 진위 감정을 하고 이를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곤 한다. 그러나 국가가 나서서 새롭게 감정인단을 꾸린다고 더 잘할 거라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진품 감정이란 것이 구조적으로 100% 보장할 수 없고, 따라서 손실에 따른 보상책임을 질 수도 없는데 국가가 그런 위험을 안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미술시장이 발달한 서구에서는 주로 작가나 작가의 재단이 진위 감정을 전담한다. 작가 본인이 아무래도 본인의 작품인지를 더 잘 알 수 있다. 또한 작가의 유고 시에는 유족이 주도하는 재단이 해당 작가의 전작도록 발간 등 작품 관리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갖는다. 전속화랑 제도가 정착돼 있어 화랑이 작가의 작품을 전적으로 관리하므로 유통이력 관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작가의 유고 시에는 유품 관리를 승계해 작가의 재단과 관련 자료를 공유한다. 자기 작품만을 감정하는 기구와 시장에서 유통되는 모든 작가의 작품을 감정하는 기구 사이에는 당연히 전문성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감정 오류가 발생해 해당 작가가 시장에서 신뢰를 잃으면 다른 누구보다 작가와 작가의 재단, 그리고 이를 관리하는 전속화랑이 가장 직접적이고 큰 피해를 입는다. 과거 전속작가 없이 팔리는 작품을 구해 파는 데 주력했던 한국 화랑들도 점차 전속작가 제도를 도입하고 있어 향후 감정 업무의 주체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소득과 부의 양극화 현상에서 보듯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만능은 아니어서 국가의 적절한 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효과도 없는데 어설프게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동하고 시장의 실패를 작동 주체가 책임질 수 있도록 시장구조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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