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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4대 금융 ‘탄소 배출왕’은 어디? ESG 보고서 살펴보니[경제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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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사과값이 급등하고 때이른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해, 기업들의 ‘기후 공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온실가스 저감 등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지표를 투자자·소비자 등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최근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은 잇따라 2023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를 내놓으며 각사의 기후 대응 현황을 밝혔습니다. 이들의 기후 공시를 살펴봤습니다.

사실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금융회사의 역할이 무척 중요합니다. 금융회사들이 직접 화석연료를 태워 철강을 만들거나 AI(인공지능)를 개발하진 않지만, 그런 기업의 ‘돈줄’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업에 대한 대출·투자로 간접적으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금융배출량’이라고 합니다. 4대 금융그룹은 각사의 탄소배출량 지표를 상세하게 공개했습니다.

그렇다면 4대 금융 중 지난해 ‘탄소배출왕’은 어디일까요? 공들인 보고서가 무색하게도 답은 ‘모른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엿장수’ 맘대로 금융배출량
적용기준·시점 등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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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그룹의 금융배출량 추이. 신한자산운용 배출량은 별도 표기. 신한금융그룹 2023 ESG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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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각사마다 탄소배출량을 측정·검증·공시하는 기준과 방법이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수치만 보면, 지난해 탄소배출량이 가장 많은 곳은 5605만톤CO2eq(이산화탄소환산톤, 이후 톤으로 기)을 배출한 신한금융입니다. 자세히 보면 대부분이(5596만톤)이 투자·대출 등으로 발생한 금융배출량(스코프3)이었습니다. 이는 신한금융 내부 탄소배출량(스코프 1·2)의 약 800배에 이르죠. 금융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금융회사의 기후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수치상으로 그 뒤를 잇는 건 4924만톤을 배출한 KB금융입니다. 하지만 보고서를 잘 들여다보면,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KB금융은 2023년 보고서에 2022년 기준으로 금융배출량을 공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KB금융 관계자는 “2022년도 기업의 총 온실가스배출량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시점이 2024년 2분기쯤이기 때문에 시차가 발생한다”면서 “글로벌 ESG 공시기준은 ‘가장 (가능한) 최신의 정보를 사용하라’고 정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신한금융은 2023년을 기준으로, KB금융은 2022년 기준으로 작성된 수치라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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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그룹의 금융배출량 추이. KB금융지속가능경영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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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배출량의 측정 기준이 되는 자산 규모도 신한금융은 288조원, KB금융은 208조원 등으로 4대 금융그룹이 모두 다릅니다. 기준도 시점도 다르니 배출량의 숫자만 놓고 단순 비교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은 지난해 탄소배출량이 각각 4752만톤, 2386만톤이라고 공시했습니다. 신한·KB금융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어보이는데, 이 또한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앞선 두 회사는 금융배출량을 국제 기준(GHG 프로토콜)에 따라 측정하고, 그 결과에 대한 제3자의 검증을 거쳤음을 분명히 밝혔지만 우리·하나금융은 검증 여부 등을 따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각 회사들이 따르고 있는 ‘글로벌 공시 기준’도 제각각입니다. 어떤 회사는 지난 6월부터 통용되고 있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공시 기준을 따르는가 하면, 그 전까지 널리 쓰이던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협의체(TCFD)의 기준을 따르는 곳도 있습니다.

금융회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쏟아져 나오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누가 누가 잘했나’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비교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기후 공시 의무화 도대체 언제?


그렇다고 금융회사들이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기후 공시를 했다고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기후 공시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공시에 나서고 있는 만큼, 어떤 기준을 따를 것인지도 스스로 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업권과 비교하면 금융권이 기후 공시에 그나마 적극적인 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기업들이 의무적·공통적으로 따라야 하는 기후 공시에 대한 기준이 여전히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적 흐름은 다릅니다. 유럽연합은 올해 1월부터 기업 지속가능성 공시지침 등을 대기업에 적용하고 있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역시 지난 3월부터 기후 공시 규정을 최종 채택해 내년부터 의무화한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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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내 ESG 공시제도에 대한 경제계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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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논의는 이뤄지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작성한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초안을 발표했죠. 5월부터 오는 8월까지 의견 조회 과정을 거쳐 최종안을 공개하겠다고 해요.

초안을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기후 관련 사항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지만, 금융배출량이 포함된 스코프3(공급망 내 간접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의 공시 의무화는 불투명해보입니다. 탄소배출량의 국제적 측정 기준인 GHG 프로토콜의 사용 여부 역시 기업의 선택에 맡겼고요. 무엇보다 이 공시의 의무화 시점을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재계에서는 2029년까지 미뤄야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공시 의무화 시기를 앞당겨 하루빨리 표준화된 공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상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융기관의 기후리스크 공시에 관한 국제기구의 움직임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내 금융당국 역시 더욱 체계적이고 강제성 있는 공시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금융그룹들은 보고서에 명시한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기후 공시 의무화가 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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