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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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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폭력, 가해자 반복 폭행으로 숨지는데…가중처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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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7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여성플라자에서 여성의당이 주최하는 교제폭력 처벌법 정책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 여성의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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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이 목에 손자국이 나 있었어요. 목을 왜 조르겠습니까? 죽이려고 조르는 거 아닌가요? (…) 그런데도 가해자에 상해치사가 적용됐고 가해자가 언제 나올지 몰라 (보복 두려움에)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경남 거제 교제폭력 사망 사건 피해자 이효정씨의 어머니는 7일 오후 여성의당이 주최한 기자간담회에 참여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여자친구였던 피해자를 감금하고 강간·폭행한 이른바 ‘바리캉 폭행남’ 사건,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옛 연인을 살해한 ‘인천 스토킹’ 사건 등 교제폭력 범죄 피해자 가족들은 이날 여성의당과 함께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의 법 도입과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들은 우선 교제살인·사망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폭력을 지속해서 반복한 경향이 뚜렷해 그 죄질이 중함에도 살인죄에 견줘 경미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의당은 교제폭력 범죄 이력이 있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하거나, 사망 또는 중한 질환에 이르게 한 경우 가중처벌 조항 등을 담은 교제폭력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제폭력으로 인해 피해자가 숨진 거제 사건의 가해자는 상해치사죄(3년 이상 유기징역)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살인죄(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보다 법정형이 가볍다. 이경하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2013년 ‘칠곡 아동학대 사망 사건’ 가해자가 아동을 지속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음에도 ‘살인의 고의’가 없다며 상해치사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며 “이듬해 살인죄와 유사한 법정형을 규정한 아동학대치사죄가 신설됐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교제살인으로 치닫기 이전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영국의 경우 단순 폭행죄는 6개월 이하 징역형에 처하지만 교제 상대나 배우자 등 친밀한 관계의 가해자가 폭력을 행사할 거란 공포심을 주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사건은 최대 징역 5년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해 위험을 측정하는 지표가 실제 위험을 반영하는 데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활용하는 긴급임시조치 판단조사표에는 피해자에게 뚜렷한 외상이 있는지, 현장에 파편이나 집기류 파손 등이 있는지 등을 살피도록 돼 있다. 그러나 중한 범죄의 징후로 알려진 목졸림 피해 경험 등은 빠져 있다. 이예은 여성의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목졸림은 외상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행위”라며 “‘목졸림’ 경험 관련 문항을 (피해자 보호 여부 판단 지표에)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 거제 교제폭력이나 바리캉 폭행남 사건 피해자들은 목졸림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교제폭력 다수에 적용되는 형법상 폭행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는 보복 우려 등으로 처벌 뜻을 밝히기 어려운 맹점이 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교제폭력 가해자를 풀어주는 관행 역시 개선이 필요한 까닭이다.



미국은 여성폭력방지법(가정폭력 및 교제폭력 범죄에 적용)을 통해 경찰이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을 원하는지를 애초 묻지 않으며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체포·기소가 이뤄진다. 이들은 또 교제폭력 사건에서 누가 더 큰 가해를 했는지 구분하지 않고 쌍방 폭행 혐의로 수사하는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세계경찰청장협회(IACP)가 제시한 ‘주 가해자 식별 체크리스트’ 도입도 촉구했다. 거제 교제폭력 사망 사건 피해자 이효정씨 아버지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경찰의 적극적인 개입과 관심”이라고 말했다.



현재 거제 교제폭력 사망 사건과 바리캉 폭행남·인천 스토킹 살해 사건 가해자들은 모두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피해자 가족들은 재판 과정이 피해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토로했다. 바리캉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는 “딸이 약 23알을 먹지 않으면 젓가락질을 못 할 정도로 벌벌 떨고 있다”며 “그런데도 가해자 쪽 요구로 재판에 나갔다가 (범행 원인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등의) 2차 가해성 질문을 받고 기절한 적도 있다. 재판부가 이런 질문을 사전에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지난해 7월 피해자는 4박 5일 동안 감금돼 강간, 폭행을 당하고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리는 가혹 행위를 겪었다.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유가족도 “피해자는 그저 헤어지자고 했을 뿐”이라며 “그러나 수사·재판 전반에서 피해자에게 범죄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묻는다”고 지적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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