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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말썽 많은 ‘예산 신속집행’이 경기 부양?…득실부터 따져보자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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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회의에서 F1 경주의 피트 스톱 사진을 들고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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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근주 | 40대·경남 사천시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예산 신속 집행’으로 행정서비스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신속 집행’을 검색하면 ‘각 지방자치단체장이 신속 집행을 독려했다’, ‘상반기 신속 집행을 60%까지 하겠다’라는 것들이 검색되지, 정작 중요한 ‘신속 집행의 효과’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신속 집행은 정부에서만 할 수 있는 가장 무능력한 정책이라 생각한다. 일반 기업에서는 사업을 시행함에 있어 ‘효과성’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업을 구조화할지 고민한다. 그러나 정부에서 시행하는 신속 집행의 ‘효과성’은 찾아볼 수 없고, 신속 집행 독려로 인한 행정력 낭비와 행정서비스 질 저하만 있을 뿐이다.



신속 집행의 판타지는 ‘연초에 정부 예산을 집행하면 당해 연도 내수시장이 활성화한다’로 출발한다. 당연히 연초에 정부 예산을 집중해서 지출하면 당기 내수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다만, 신속 집행에 따른 부작용이 있다면 적어도 부작용에 따른 손실 및 균형 집행을 통한 내수시장 활성화의 효과에 대한 연구를 선행해야 한다.



공정해야 하는 정부가 신속 집행을 위해 행정절차까지 간소화하고 시설비의 상반기 지출을 위해 선금 지급을 장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정성은 떨어지고, 선금을 받은 시공사와 정부의 위치는 바뀌게 된다. 신속 집행에 따른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다. 균형 집행을 하면 은행에서 이자를 지급한다. 연금리 4.5%로 1조원만 계산해도 한달에 37억5천만원이다. 또한 상반기까지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한 공사 기간 단축은 부실 공사로 이어지고 추가 보수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상반기 신속 집행 60% 달성을 위한 독려’라는 명목으로 최일선에서 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매일 계획서를 제출받으면서 발생하는 행정력 낭비 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민간에서도 불만이 없지 않다. 상반기에 공사가 몰리면서 한시적 인력 부족과 선금으로 인한 추가 보증보험 가입, 자재 부족으로 인한 가격 인상 등으로 예상했던 비용보다 지출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10억원 이상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사를 상반기에 마무리해야 하는 정부는 설계 기간도 짧게 설정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며, 충분한 고민을 통해 지어져야 할 건축물을 단기간에 준공하다 보니 주민들은 수십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건축물의 결과를 보며 ‘세금 낭비’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들도 고민스럽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신속 집행 이행 실적에 따라 교부세를 차등 지급한다. 따라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신속 집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충분한 견학과 벤치마킹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지출해야 하지만 신속 집행을 위해서 설계 기간, 공사 기간도 단축하는 마당에 벤치마킹은 언감생심이며 그저 절차에 맞춰 예산을 빨리 집행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우리나라 정부가 ‘효과성’ ‘효율성’ ‘기회비용’ 등을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신속 집행’이라는 판타지에 갇혀 비효과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예산을 낭비하는 현 실태를 보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한다. 선진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부도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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