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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시위와 파업

[논현로] 위화감 조성하는 ‘전삼노’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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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임금 귀족노조 지나친 분배요구
억지주장만 있고 타협·양보는 없어
집단이기주의 깨야 경제위기 극복


이투데이

삼성전자 창사 55년 만에 처음으로 8일 노동조합의 총파업이 단행됐다. 비록 강도는 높지 않았으나 그동안 무노조경영을 고수해오던 삼성전자에 노조가 결성돼 파업으로 이어진 것은 국내 노동운동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은 1969년 창사 이후 줄곧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는 노조를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이후 반세기 넘게 유지해온 무노조경영은 삼성이 세계적 기업으로 커가는 데 지렛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무노조경영은 ‘노조파괴’ 취급을 받았고 곧바로 삼성전자의 무노조 신화가 깨지고 말았다. ‘노동하기 좋은 세상’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은 문 정부는 ‘노조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며 삼성전자 노조 설립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런 흐름 속에 탄생한 노조가 3일간 총파업에 돌입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다.

전삼노 조합원 수는 삼성전자 5개 노조 중 가장 많은 2만9000여 명으로 전체 직원 12만5000명의 24%에 달한다. 이 중 90%가 DS(반도체)부문 소속이다. 노조원 수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1만 명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반도체 실적 부진으로 성과급을 못 받게 되자 올해 들어 노조원 수가 급속히 늘어났다고 한다. 노조에 가입하면 회사 측을 압박해 성과급을 받기가 쉬워질 것이란 기대심리가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을 유지해온 때문인지 파업열기는 높지 않았다. 당초 노조에서 5000~6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던 첫날 파업 참여자는 3000여 명(경찰 추산)에 그쳤다.

삼성엔 노조 결성 이후 예전과 다른 기업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타협과 협력, 양보가 지배하던 자리에 과도한 분배요구와 억지성 주장이 대신하고 있다. 평균 연봉 1억2000만 원으로 국내 근로자 4% 이내의 고임금을 자랑하지만 노조권력에 편승한 근로자들은 더 많은 파이를 얻기 위해 파업까지 불사하고 있다. 실적을 키우기보다 힘을 통해 더 많은 파이를 가져가겠다는 집단이기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사업부문 영업이익이 14조88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해 성과급을 못 받게 되자 노조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비록 실적은 좋지 않았지만 정당한 보상차원에서 성과급을 내놓으라고 회사 측을 압박했다. 노조는 현재 시행 중인 성과급 기준 ‘EVA(경제적 부가가치)’가 불공정하고 붙투명하다며 영업이익 기준의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노사협의회에서 ‘올해 임금인상률 5.1%(기본급 3%+성과인상 2.1%)’에 합의했는데 전삼노는 이에 동의하지 않은 강성노조원 855명에 대해 더 높은 임금 인상률을 적용해달라고 회사 측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강성조합원만 혜택을 주자는 황당한 주장이어서 회사 측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거부했다.

고임금을 받는 귀족노조의 집단이기주의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데 앞장선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전삼노는 ‘무노동 무임금’을 공언하고도 ‘파업으로 발생하는 조합원의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라’는 엉뚱한 주장까지 내놓았다. 노조결성과 단체행동은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자의 기본권리라고 하지만 전삼노의 행태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구시대적 노동운동에 다름아니다.

전삼노는 비교적 온건 노동운동을 펼치는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전투적 조합주의를 지향하는 민주노총으로 갈아탈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민주노총 우산 속으로 들어가야 위협효과(threaten effect)가 확산돼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쉬워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전삼노가 내세운 파업 명분은 회사 측의 부당한 보상이라고 주장하지만 회사 안팎에서는 노조 요구가 더 부당하고 비정상적이라고 비판한다. 삼성그룹 5개 계열사 노조가 연합한 초기업노조는 전삼노의 파업을 정치적 목적으로 의심하고 있다. 파업목적이 직원들의 근로조건 향상이 아닌, 민주노총 가입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다.

한국의 노조 문화는 권력화, 정치화, 이념화로 얼룩져 있다. 지금껏 무노조 경영체제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고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총파업을 벌이며 과도한 파이를 요구하는 현실에 걱정이 앞선다. 평균 연봉 1억 원 넘는 귀족 노조들이 걸핏하면 파업 깃발을 흔드는 것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할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줄 뿐이다. 노사가 대립과 갈등이 아닌 상생과 협력을 통해 힘을 합칠 때 위기를 극복하고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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