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만든 중국 제재 조치가 줄줄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무기'가 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8년 한국, 중국, 일본 등 철강 생산국에 압박카드로 사용했던 '무역확장법 232조'(철강 232조)가 대표적이다.
이 조치는 중국 등에서 생산된 철강 제품이 멕시코를 경유한 뒤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되는 사례를 차단하기 위해 철강 232조의 원산지 규정을 강화한 것이 골자다. 제강 원산지가 멕시코가 아닌 경우 철강은 25%, 알루미늄은 10%의 관세를 부과받게 된다. 중국 기업을 겨냥한 조치이지만, 한국 기업들도 영향권에 있어 국내 철강업계 또한 긴장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발표한 포고문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철강 소재와 제품은 멕시코나 캐나다, 미국에서 제강되지 않은 경우 철강 232조에 의거해 관세를 부과받는다. '제강(melt and pour)'이란 쇳물로 철강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한국·일본·중국 기업들이 자국에서 생산한 철강을 미국으로 수출하려면 한계가 있었다. 철강 232조에 따라 특정 수입품이 미국의 안보를 침해하게 되면 수입량을 제한하거나 고율 관세 부과 등 무역제재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 232조는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다만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캐나다와 멕시코는 관세 부과 대상국에서 제외돼 무관세가 적용된다.
이에 중국 등 국가의 철강기업들은 멕시코를 대미(對美) 철강 수출의 '우회로'로 활용해왔다. 자국에서 제강한 철강 제품을 멕시코로 보낸 뒤 멕시코에서 약간의 가공을 거쳐 미국에 수출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멕시코가 원산지가 되면서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전임 트럼프 정부가 남겨놓은 이 같은 '허점'을 보강했다. 새로운 조치에 따라 멕시코로 철강을 들여오는 수입업자는 제강 원산지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또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철강과 알루미늄, 파생제품을 수출할 때는 제강 원산지 정보를 미국 세관에 제공하도록 했다.
만약 멕시코에서 쇳물을 부어 철강을 만드는 제강 과정을 거치지 않은 철강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면 관세 25%가 부과된다. 알루미늄 역시 제련·주조(smelt and cast) 과정을 거쳐야 무관세가 적용된다. 제련·주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알루미늄 제품에는 관세 10%가 붙는다. 특히 러시아, 벨라루스, 이란, 중국에서 주조한 알루미늄 1차 제련·주조물은 관세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미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2023년에 멕시코에서 수입한 철강은 약 380만t이며, 이 가운데 약 13%인 48만t이 제3국산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로서는 전임 트럼프 정부의 상징적 조치였던 철강 232조를 자신들의 정책으로 가져오면서 대중 압박·철강산업 보호에 대한 의지를 대중에 전달할 수 있다.
한국도 일부 철강 제품을 멕시코를 거쳐 미국에 수출하고 있어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은 미국에서 수입쿼터 물량을 받아 제한된 물량만큼을 수출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에서 제강한 철강이 멕시코에서 가공돼 수출된 물량은 6만5400t 수준이다. 현재 포스코가 멕시코에서 자동차 강판 등을 가공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