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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이슈 국방과 무기

미국 정밀 미사일의 독일 배치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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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동서로 분단돼 있던 1976년 소련(현 러시아)은 동독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SS-20을 배치했다. 당시는 소련이 이끄는 공산주의 진영과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주의 진영 간 냉전이 극에 달한 때였다.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SS-20의 동독 배치는 서독은 물론 서유럽 전체의 안보를 위협하는 조치였다. SS-20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던 서독 정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긴급히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나섰다.

세계일보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1974∼1982년 재임). 독일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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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독 집권당은 서방 못지않게 소련과의 관계도 중시했던 좌파 성향 사회민주당(SPD)이었다. 당연히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소련과 외교 협상에 나섰다. 그러면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SS-20에 맞설 강력한 무기의 서독 배치도 검토했다. 역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미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퍼싱-2가 그것이다. 슈미트는 ‘외교가 우선이지만 협상이 결렬되거나 지지부진하면 안보를 위해 서독에 퍼싱-2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SPD 지지층은 물론이고 서독 국민 상당수가 비핵화를 주장하며 퍼싱-2 배치에 반대 의사를 표한 점이다. 소련이 SS-20 철수 요청을 끝내 거부하자 슈미트는 1980년 결단을 내린다. 이후 ‘반전’과 ‘반핵’, ‘평화’를 외치는 대규모 시위가 서독 전역을 뒤덮은 가운데 독일 내 미군 기지에 퍼싱-2가 배치됐다. 유권자들은 SPD에 등을 돌렸다. 그때까지 SPD와 연립정부를 구성했던 자유민주당도 연정 파기를 선언했다. 슈미트는 1982년 10월 의회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되며 총리직을 잃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서독은 안보를 지킬 수 있었다. 이는 1990년 서독 주도의 독일 통일이 이뤄지는 토대가 되었다.

세계일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11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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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독일에 미군의 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해당 무기는 SM-6 함대공 미사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개발 중인 극초음속 미사일 등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다양한 무기체계를 고려할 때 우리에게 정밀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독일 국내에선 벌써부터 “군비경쟁만 부추길 것” “더 큰 위험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 등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마침 숄츠는 40여년 전의 슈미트와 마찬가지로 SPD 소속이다. 슈미트처럼 지지층의 반대도 무릅쓸 각오를 한 숄츠의 정치적 운명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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