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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 (일)

노사 갈등만 키우는 '합의 시스템'···위원장도 "제도 한계"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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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결정제도 개선 촉구]

협박·퇴장 등 투표방해 행위 반복

중재 맡은 공익위원 불신만 고조

노사 비현실적 임금안 제시 빈축

"위원 수 줄이고 전문성은 높여야"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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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수정안을 냈네, 왜 이렇게 심의 속도가 빠른 거야.”

11일 오후 11시 10분 최저임금위원회 제10차 전원회의가 열린 회의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최임위 심의는 노사가 원하는 최저임금 수준을 조정하는 수정안을 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통상 1차 회의에서 수정안은 두 번 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오후 3시 시작된 회의에서는 노사가 3개의 수정안을 냈다. 심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차수 변경으로 이어진 12차 회의가 오전 2시 20분을 넘길 때 노사는 마지막 수정안까지 제출했다. 최임위는 수정안 제출 후 20분도 안 돼 사용자위원안 1만 30원(1.7% 인상)을 표결로 의결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측 근로자위원 4명은 항의 차원에서 투표를 거부하고 퇴장했다. 올해 심의는 지난해보다 회의 횟수가 4번 줄었다. 15차까지 이어졌던 수정안도 5차(최종)에서 멈췄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는 노사 합의를 유도하는 현 심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더 키웠다. 극심한 노사 갈등과 공익위원 주도의 심의, 결정 최저임금 후 노사 불만이 반복됐다. 내년 최저임금 심의를 주도한 최임위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심의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인재 위원장은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임위 제11차 전원회의에서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된 후 기자들과 만나 “현 결정 시스템은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진전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최임위) 개편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와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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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달 2일 7차 회의에서는 일부 근로자위원이 투표용지를 찢고 의사봉을 뺏는 투표 방해까지 일어났다. 그동안 최저임금 심의에 대한 여러 우려가 동시에 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임위는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다. 위원 비율로는 3개 주체로 힘이 고르게 배분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익위원이 심의의 키를 쥔다. 늘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 각 위원들의 표결로 결정되기 때문에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쥔다. 올해 일부 근로자위원의 투표 방해도 공익위원에 대한 불신이 자리한다. 이들이 업종 구분 찬성표를 던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뤄졌다는 평가다. 올해는 돌봄 업종에 대한 외국인 근로자 고용 확대 논의를 시작으로 업종 구분에 대한 찬반 여론이 여느 해보다 뜨거웠다.

올해 심의에서도 반복된 노사의 비현실적인 임금안 제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금 수준은 노사가 최초 요구안을 계속 반복하는 식으로 조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 표결이 일반적이다. 이렇다 보니 노사 모두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을 기선 제압으로 활용한다. 근로자위원은 올해 심의에서 27.8%안(1만 2600원)을 제안했다. 경영계는 동결안으로 맞섰다. 내년 최저임금 1만 30원과 비교하면 근로자위원 최초안은 2570원 차이를 빚었다. 경영계는 2022년부터 4년 연속 동결을 주장했다. 매년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사실상 삭감안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결정된 최저임금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반발하는 악순환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최임위 위원을 줄이거나 최임위를 상설화하고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해왔다. 최임위가 심의에 쫓기면서 노사 갈등이 더 심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는 105일로 역대 최장 심의 기간 110일보다 불과 닷새 일찍 마쳤다. 최임위가 막판 심의 속도를 높인 배경인데 노동계에서는 졸속 심의라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최임위는 올해도 표결 전후 위원 퇴장이라는 불명예 기록도 이어갔다. 이 위원장은 2018년 최저임금과 관련된 자신의 논문에서 정부가 노사와 전문가 의견을 듣고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최임위는 최저임금 수준만 정할 뿐 결정된 최저임금에 따른 정책을 요구하거나 권고할 권한이 없다.

임무송 숙명여대 경영전문대 특임교수는 “최임위는 전문가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당사자 의견을 수렴하면 정부가 (최저임금을) 최종 책임을 지고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노조 조직률이 낮은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집단적 중앙 임금 교섭 방식은 노사 갈등을 확대하고 (노조의) 투쟁 수단으로 심의를 변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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