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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4 (토)

20조 초고압해저케이블 시장 두고 LS·대한전선 갈등...'제 살 깎아 먹기' 논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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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신재생 전환 이어 미국 AI 열풍으로 케이블 시장 급성장

LS·대한전선, 해저케이블 생산능력 확대 위해 조 단위 투자

경찰 압수수색에 LS전선 법적대응 엄포...대한전선 결백하다 반박

국내 기업 시장 점유율 한 자릿수...장기간 법적 분쟁 실익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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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 동해사업장 [사진=LS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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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열풍으로 전 세계 초고압(UHV) 해저케이블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국내 1·2위 전선업체인 LS전선과 대한전선이 관련 기술 유출 의혹을 놓고 법적 분쟁을 예고했다. 업계에선 국내 해저케이블 시장 주도권을 놓고 그동안 묻혀있던 양사 악감정이 폭발하면서 한국 전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16일 산업계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가운데 하나인 해상풍력발전 확대로 초고압 해저케이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일례로 LS전선은 지난해 5월 네덜란드 국영전력회사 테네트와 2조원에 달하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 공급 계약을 했다. 유럽 북해 해상풍력단지와 독일·네덜란드 내륙을 HVDC 케이블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기존에 유럽 정부·기업을 중심으로 확대되던 해상풍력발전은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남에 따라 북미 기업들도 큰 관심을 보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연간 전력 사용량이 2026년 최대 1050테라와트시(TWh)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2022년 460TWh와 비교해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해상풍력발전과 AI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려면 긴 길이의 초고압 해저케이블이 필수다.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2022년 49억9200만 달러(약 6조9000억원) 수준이던 초고압 해저케이블 시장은 연평균 16.1%씩 성장해 2029년에는 149억 달러(약 20조6000억원)에 도달할 전망이다.

한국 정부도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18.3기가와트시GWh 규모의 해상풍력발전 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사실상 국내에서도 초고압 해저케이블 수요 급증이 예고된 상황이다.

이러한 시장 급성장(슈퍼사이클)이 LS전선과 대한전선 분쟁의 가장 큰 이유다. 두 회사는 슈퍼사이클에 맞춰 초고압 해저케이블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하며 시장 대응에 나섰다.

선제적으로 관련 투자를 한 곳은 LS전선이다. LS전선은 지난해 5월 강원도 동해시에 1800억원을 투자해 아시아 최대 규모의 HVDC 해저케이블 생산 라인을 완공한 데 이어, 지난 6월에는 1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생산 라인을 증설하기로 했다.

지난 10일에는 1조원을 투자해 미국 버지니아주 체사피크시에 연면적 7만㎡(약 2만평) 규모로 해저케이블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2027년 준공 예정인 해당 공장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200m 규모 전력 케이블 생산타워도 함께 짓는다. 해저케이블은 케이블을 감싸는 절연 물질을 전선 밖에 뿌리는 과정에서 외형 변화가 생기지 않도록 수직으로 만든다. 케이블 생산타워가 커지면 케이블 길이를 더 길게 만들 수 있어 전력 손실이 줄어들고 제품 품질이 올라간다.

대한전선도 초고압 해저케이블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대한전선은 총 2200억원을 투자해 충남 당진에 해저케이블 1공장을 건설했다. 두 단계로 나눠 건설하는 1공장은 지난달 1단계 완공됐고 2단계는 내년 1분기 중 건설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어 대한전선은 72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2027년 상반기까지 2공장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공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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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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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찰이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의혹과 관련해 건축사무소에 이어 대한전선을 압수수색하면서 해저케이블 시장 주도권과 관련한 양사 신경전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LS전선은 "대한전선의 기술 탈취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내외에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대한전선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피의자 전환하고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LS전선이 보유한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 노하우가 가운종합건축사무소를 통해 대한전선에 유출된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 중으로 알려졌다. 가운종합건축사무소는 2008년부터 2023년까지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공장 1~4동 건축 설계를 전담한 업체다.

이에 대한전선은 "2009년부터 해저케이블 공장과 생산 관련 연구를 했으며 2016년 이후 당진 케이블 공장에 해저케이블 생산 설비를 설치한 바 있다"며 "독점적 지위를 가진 LS전선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대한전선 시장 진입을 방해하면 해저케이블과 해상풍력 산업 관련 국가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조속히 경찰 수사를 마무리하고 해저케이블 사업 관련 투자를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라며 "혐의가 없다고 밝혀지면 민형사상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이탈리아 프리즈미안(30%), 프랑스 넥상스(25%), 덴마크 NKT(15%) 등 글로벌 기업이 해저케이블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점유율이 한 자릿수에 머무르고 있는 국내 전선 기업끼리 법적 분쟁을 벌이는 것은 실익이 낮다고 지적한다. 두 회사가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확충해서 AI와 신재생에너지로 촉발된 해저케이블 슈퍼사이클에 올라타도 글로벌 기업과 경쟁이 힘에 부치는 상황에서 지리멸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순전히 기업 역량에 달린 해외 사업 수주와 달리 국내 사업 수주는 회사 이미지도 큰 역할을 한다"며 "국내 해상풍력발전 단지 사업 수주가 걸린 문제인 만큼 두 회사 분쟁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주경제=강일용 기자 zero@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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