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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5 (일)

유튜브에 ‘36주 낙태 영상’ 버젓이… 불붙은 낙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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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진위 여부·살인죄 적용 등

낙태죄 폐지 이후 큰 관심 불러

임신 36주 차에 낙태 수술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유튜브 영상 파문이 커지고 있다. 자신을 20대 여성이라고 밝힌 A씨는 지난달 27일 올린 영상에서 병원에 갔다가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의사는 초음파 검사 결과를 설명하며 “심장 뛰는 것을 보라” “아이를 낳아야 한다. 못 지운다”고도 한다. 하지만 A씨는 “결국 낙태 수술을 받았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영상의 진위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아직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하긴 성급하다”고 했다. 문제의 유튜브 운영자는 현재 낙태 영상을 삭제하고 채널 이름을 바꿔 일상·요리 영상 등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선 영상 조작 가능성도 제기하는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살인 혐의로 A씨와 영상 속 의사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16일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2019년 낙태죄가 폐지돼 현행법상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살인죄밖에 없다”고 했다. 복지부는 2019년 서울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 34주 차 태아를 낙태한 행위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한 판례를 근거로 들고 있다. 당시 법원은 의사가 태아가 살아서 태어날 것을 알면서도 제왕절개를 하고, 이후 물에 넣어 질식사시키고 사체를 소각한 것이 살인·사체 유기라고 판단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15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 사건 수사와 관련, “영상 속 인물이 자궁 밖으로 태아를 꺼낸 뒤 사망케 했다면 영아살해죄로 처벌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34~36주 차 미숙아라 할지라도 일단 산모의 자궁에서 나와 생존해 독립 개체가 됐다면 살인죄가 규정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A씨의 낙태 영상이 사실이라 해도, 자궁 안에서 죽은 채 적출됐다면 살인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태아는 언제부터 인간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확산하고 있다. 기독교(가톨릭·개신교)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受精)한 순간부터 신이 보낸 영혼이 깃든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태아도 사람이고, 이를 죽이는 낙태 역시 살인이라고 본다. 불교·원불교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입장이다. 다만 여성 인권을 고려, 강간 등으로 인한 낙태는 불가피하게 허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법학계에서도 태아의 인간 존엄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모체(母體)에서 완전히 분리될 때 사람이 된다는 것이 민법상 다수설”이라며 “다만 형법에선 출산이 임박했을 때 사람으로 보는 판례도 있다”고 했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6주 ▲모든 장기가 완성되고 뼈 형성이 끝나는 10주 ▲사고나 자아 인식 능력이 생기기 전인 14주 등이 기준으로 제시되지만 합의된 ‘인간 기준’은 아직까지 없다.

유럽 국가의 경우 스페인은 14주, 프랑스는 16주, 스웨덴은 18주다. 태아의 ‘체외 생존 가능성’에 주목하는 법안도 있다. 태아가 모체를 떠나 생존이 가능한 최소한의 시점인데, 세계보건기구는 태아의 생존 능력을 임신 22~24주 이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과 네덜란드는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번 36주 낙태 영상에 ‘살인 논란’이 제기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모든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특수한 사정 때문에 하는 낙태도 있으니 법을 현실에 맞게 고치라는 취지였다. 헌재는 2020년 말까지 보완 입법을 해달라고 했지만 4년이 지나도록 낙태 허용 시기 등을 규정하는 국회·정부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법과 제도의 공백으로 임신부와 태아 모두 고통받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에서 국회·정부가 균형을 잡고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유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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