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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 (목)

[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26] ‘ABC 화장품’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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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54년 ABC 화장품의 전쟁 후 최초의 신문광고 지면. /아모레퍼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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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21년 1월 23일 자에는 ‘부인 화장계의 패왕’이라 자처한 ‘박가분’의 광고가 실려 있다. “박가분을 항상 바르시면 주근깨와 여드름이 없어지고 얼굴에 잡티가 모두 없어져서 매우 고아집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보여준다. 이에 조응하면서 화장품 산업은 발전했다.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 중 아모레퍼시픽은 1932년 창업자의 모친이 동백 머릿기름 판매를 시작한 데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 회사의 전신인 태평양화학공업사는 1945년에 창립한 이후 수많은 제품을 개발해 판매했다. 1951년에는 ‘ABC 화장품’ 브랜드의 하나인 ‘ABC 포마드’를 출시했다. 1964년 방문 판매 전용 브랜드인 ‘아모레’가 출시되기 전까지 ABC 화장품 광고가 신문에 자주 등장했으며, 광고용 노래도 제작됐다.

1959년 4월 세광음악출판사에서 간행한 노래책 ‘대중가요’ 2집에 수록된 악보 ‘ABC 청춘신보’와 ‘ABC 행진’은 모두 이 화장품 광고 노래다.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 노래로 1959년 진로소주의 ‘차차차 송’을 드는데, ABC 화장품 광고 노래가 이보다 앞설 가능성이 있다. 반야월이 작사하고 조춘영이 작곡한 두 노래 모두 인기 가수 남인수와 장세정이 함께 불렀다. 음원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악보에 ‘신세기레코드’라 적혀 있어 음반으로 발매되었으리라 추정한다.

두 노래 모두 4분의 4박자에 내림마장조로 이루어져 있다. ‘ABC 청춘신보’는 부점 리듬을 사용해 노래에 경쾌함을 더했고, ‘ABC 행진’은 “라라라”와 같은 조흥구로 흥겨움을 배가시켰다. 후렴은 단순하면서도 기억하기 쉬운 선율을 사용해 광고 노래가 지녀야 할 미덕을 갖췄다.

‘ABC 청춘신보’는 여성들을 겨냥해 “ABC 오백반 크림 바르면 비단같이 분결같이 고와집니다”라거나 “ABC 백정제는 젊어만 진대요”라는 노랫말로 화장품의 효능을 부각하고 있다. ‘ABC 행진’은 “휘파람 날리면서 씽긋 웃는 핸섬보이”가 가장 애용하는 ABC 포마드가 값비싼 외국산을 물리치는 국산품이라는 걸 강조하는 노랫말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ABC 화장품은 “외래품 선전에 속지 말고 손색없는 우리 상품 다 같이 애용합시다”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웠는데, 노랫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K뷰티’라는 말이 일상이 된 가운데 화장품 수출액이 2010년 2조원대에서 2023년 11조원대까지 늘었다. 중국에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전 세계로 시장이 확대되었으니, 앞으로 K뷰티는 계속 성장할 전망이다. 그리고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ABC 화장품 광고 노래를 만날 수 있다.

[장유정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원장·대중음악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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