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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 (목)

[문정훈의 푸드로드] 한국의 냉국 vs 스페인의 냉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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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지금은 여름에 흔히 먹는 냉면은 본디 겨울 음식이었다. 김장이 끝나고 동치미가 새콤하게 잘 익으면 그 동치미 국물과 고기 육수를 섞어 감칠맛을 더한 다음, 가을에 수확한 메밀로 제면한 면을 만 것이 냉면이다. 냉장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이듬해 여름까지 동치미 국물을 보관하기가 쉽지 않았다. 봄이 지나면 탁해지고 너무 시어져 버린다.

여름이 되면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동치미 국물을 그리워하며, 우리는 대안으로 식초를 푼 새콤한 냉국을 만들어 먹었다. 여기에 오이를 썰어 넣으면 오이 냉국, 미역을 풀어 넣으면 미역 냉국(왼쪽 사진)이다. 물론 해장에는 콩나물 냉국이다. 이걸로 성에 안 차면 닭 육수를 맑게 끓여 낸 다음 식초 약간, 그리고 면을 말아 초계(醋鷄)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한국인의 차가운 국물 음식에 대한 애정은 새콤한 국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콩을 곱게 갈아서 만든 고소한 콩국에다 면을 말거나, 투명한 우뭇가사리를 썰어 넣어 시원하게 훌훌 마시다 보면 이만한 여름철 보양식도 없다.



찬 국물 음식, 한국 식문화 일부

스페인도 유사한 요리 여럿 있어

전통 쌀요리 파에야 세계화 성공

K푸드와 농·축산업 함께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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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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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우리 근대 소설 속에서 한여름 시장통에서 팔리던 콩국과 서민들 밥상 위의 오이 냉국이 묘사된 것을 보면, 냉면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양한 차가운 국물 음식들은 꽤 오래전부터 우리의 일상 식문화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차가운 국물 음식은 해외로 나가면 찾기 쉽지 않다.

동남아나 일본의 전통적인 차가운 면 음식의 국물은 우리처럼 ‘후루룩’하고 마시는 용도가 아닌 면을 찍어 먹는 소스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일본의 차가운 면 음식 중 국물을 마시는 면 음식은 한국 냉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에서도 국물을 마시는 차가운 냉라면류가 있긴 한데, 비교적 최근인 2000년대에 들어 일본 전역에 확산되기 시작한 문화다. 그리고 중국식 냉면이라고 알려진 음식은 원래 중국에는 없는 음식이다.

의외로 차가운 국물 음식은 지구 반대편 스페인의 밥상 위에서 찾을 수 있다. 스페인 남부에서 기원한 가스파쵸(Gazpacho·오른쪽 사진)는 대표적인 차가운 국물 요리다. 토마토를 주 식재료로 마늘, 피망, 오이 등을 함께 넣어 갈고, 식초, 소금, 올리브유로 간을 한다. 여기에 물에 적신 빵을 함께 넣고 갈아 되직한 식감을 만들면 살모레호(Salmorejo)가 된다. 이 국물 위에 다양한 고명을 올린다. 삶은 계란을 올리기도 하고, 짭조름한 하몬이나 바삭하게 구운 빵 조각이나 치즈를 얹기도 한다. 먹어 보면 그 새콤한 맛이 우리가 먹는 냉국과 꽤 유사하다. 또 다른 차가운 국물 음식인 아호 블랑코(Ajo blanco)는 주재료가 아몬드와 마늘이다. 아몬드와 마늘을 갈아 만든 냉국인데, 얼핏 보면 우리의 콩국과 비슷하다. 그 고소한 맛도 콩국과 비견할 만하다.

흔히 스페인이라고 하면 뜨거운 햇볕의 나라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스페인의 북부는 높은 산맥과 혹독한 기후로 유명하다. 북쪽의 갈리시아(Galicia)와 아스투리아스(Asturias) 주(州)는 겨울은 춥고, 여름은 최고 온도가 섭씨 20도대 중반을 넘지 않는다. 거친 산악 지형의 아스투리아스의 전통음식으로 파바다(Fabada)라는 음식이 있는데, 콩을 주재료로 염장 삼겹살, 피순대, 스페인식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소시지를 함께 푹 끓인 뜨끈한 찌개다.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우리가 극단의 차가운 국물 음식과 뜨거운 국물 음식이 함께 공존하는 독특한 식문화를 가진 것처럼,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국물 음식 문화를 갖고 있다. 스페인도 우리와 같은 극단적인 더위와 추위가 존재하는 기후 및 지리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와 스페인은 근현대사에서도 닮은 점이 많다. 각각 6·25전쟁과 스페인 내전이 있었고, 이후 독재자와 싸워온 민주화의 역사도 닮았다. 또한 음식에 진심인 것도 비슷하고, 자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것도 비슷하다.

음식에 있어서 스페인은 진작에 그들의 전통 쌀 요리인 파에야(Paella)를 세계화하는데 성공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제대로 된 파에야 맛, 진짜 파에야를 만들려면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에서 재배한 자기네 고유 쌀 품종을 써야 하고, 역시 스페인 자국산 샤프란을 써야 한다는 것까지 알리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요즘 K푸드가 전 세계로 나가고 있다지만, 예컨대 진짜 비빔밥, 진짜 떡볶이에 어떤 쌀, 어떤 고추로 만든 고추장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해외 시장에 침투할 수 있는 맛과 가격만 고민이다.

차가운 국물이든 뜨거운 국물이든 한식에서 국물 음식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냉면 육수에도 갈비탕에도 한우를 써야 진짜 냉면, 진짜 갈비탕이지 않을까? 전 세계로 나아가는 K푸드 붐에 식품 제조업만 보이고 농업, 축산업은 눈에 띄지 않아 아쉽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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