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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 (금)

'고금리·내수부진'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정부 대책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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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책방을 열어 동네의 사랑방 역할도 하고, 숨은 보석 같은 책도 소개해주겠다는 A씨 열망은 지난해 사라졌다. 약 10년의 여정이었다. 지난 2010년 서울 연남동에서 첫발을 뗄 때만 해도 책방은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연남동이 개발되자 집주인은 월세를 올렸고, A씨는 막대한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말로만 듣던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이었다. 이후 지방을 전전했던 A씨는 2020년 이태원에 책방을 열어 다시 한 번 재기에 도전했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사태인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또 둥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엔데믹(일상적 유행) 이후 서울역 인근에서 마지막 도전에 나섰지만 결국 A씨는 지난해 폐업을 결정했다. A씨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그 기간에 대출을 계속 받았고, 연장했지만 결국 한계에 이르렀다. 코로나19 충격을 털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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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의 한 대로변 건물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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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소상공인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충격 이후 기지개를 켰던 소비가 장기화한 고금리에 최근 좀처럼 살아나지 않으면서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한 가운데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9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정부가 이달 초 소상공인 대책을 통해 정책자금 상환기간 연장 등 금융 지원 방안을 중심으로 대책을 내놨지만, 매출 기반 구축 방안과 거리가 먼데다 지원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영세 소상공인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25만3000명으로 집계돼 전년 동월 대비 13만5000명 줄었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감소폭은 지난 3월 기점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3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15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5000명 감소했다. 4월(420만4000명)에는 전년 동월 대비 9만4000명 줄었고, 5월(424만2000명)에는 감소폭이 11만4000명에 달해 10만명을 넘어섰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지난해 6월(438만7000명)만 해도 전년 대비 8만1000명 증가한 바 있다.

이처럼 ‘나홀로 사장님’이 줄고 있는 건 고금리가 장기화에 금융비용이 늘고 있는 데다 소비, 투자 등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인 배달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B씨는 “가게 운영비만 가까스로 나오는 정도이고, 석 달 째 순수익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창업할 때는 이렇게 장사가 안 될지 몰랐다. 대출금과 이자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정부는 하반기 들어 내수가 살아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아직까지 수출 회복세의 온기는 퍼지지 않는 모양새다. 실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월 경제동향에서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내수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못하면서 경기 개선세가 다소 미약한 모습”이라면서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소매판매, 설비투자, 건설투자 모두 감소세”라고 진단했다. 소비 외에 내수의 한 축인 투자도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12일 ‘최근 국내외 경제 이슈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고금리 장기화, 인건비 및 원자재가격 상승,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기업 심리 위축 등으로 인해 설비투자 및 건설투자의 반등은 단기간에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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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전통시장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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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에 국민들의 지갑이 얇아진 점도 자영업자 매출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실질임금은 올해 1월 전년 동월 대비 11.1% 감소한 뒤 2월 8.2% 상승 전환했다. 3월 다시 0.2% 감소한 뒤 4월 1.4% 오르는 등 울퉁불퉁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소상공인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소상공인들이 공익을 위해 희생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 데도 이달 초 발표한 정부 대책은 비용부담 완화, 채무 조정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다.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자영업계의 구조조정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2024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전문가 간담회’에서 “배달료 임대료 전기료 등 비용부담 완화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기금운영계획 변경으로 확보할 6800억원(필수비용 경감), 2800억원의 체불근로자 생활안정자금 지원규모가 충분한지 의문이다”면서 “특히 배달료의 경우 플랫폼과 소상공인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감안하면 플랫폼이 여러 명목 부담을 높여 지원 효과를 줄일 수 있으므로 소상공인에게 실질적 혜택이 얼마나 돌아갈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이어 “채무조정 대상 확대와 새출발기금 규모 확대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실적이 크지 않고, IMF 외환윅이 이후 기업 구조조정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조치에는 미치지 못한다”면서 “코로나19 시기 공익을 위해 희생한 자영업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책임이 불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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