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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 (금)

韓·日 국민 배우… 서울에서 만난 칸의 두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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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쇼 고지, 송강호와 대담

조선일보

21일 서울 광화문 영화관 씨네큐브에서 15년 만에 방한한 일본 배우 야쿠쇼 고지(왼쪽)와 송강호가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배우는 작년과 재작년 주고받듯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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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이 사랑한 두 남자의 대담은 시작부터 유쾌했다. 작년 제76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야쿠쇼 고지(68)는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송강호데쓰(송강호입니다)”라며 먼저 인사했다. 곧바로 300석 상영관을 메운 관객들의 폭소가 터졌다. 옆에 앉은 재작년 제75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 송강호(57)는 “곤니치와(안녕하세요), 야쿠쇼 고지입니다”라고 인사를 받았다. 칸 주연상을 주고받았듯,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주거니 받거니 자신을 상대방으로 소개하는 두 배우에게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21일 오후 진행된 두 배우의 대담은 야쿠쇼가 주연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감독 빔 벤더스)의 한국 개봉을 계기로 성사됐다. 일본 도쿄 시부야의 화장실 청소부가 주인공인 ‘퍼펙트 데이즈’는 지난 3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 4만6000여 명을 모으며 독립·예술 영화 차트 1위를 지키고 있다. 야쿠쇼의 방한은 2009년 자신의 연출작인 ‘두꺼비 기름’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이후 15년 만이다. 이날 객석 예매는 오픈하자마자 전석 매진됐다.

두 배우의 대담은 수십 년 연륜의 깊이만큼이나 유머와 여유가 넘쳤다. 야쿠쇼는 “한 편의 영화 촬영은 여행과도 같은데,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순서로 송강호 배우와 이렇게 대담을 하게 되다니 꿈만 같다”고 했다. 이어 “만약 ‘퍼펙트 데이즈’를 빔 벤더스 감독이 아니라 봉준호 감독이 찍었다면 송강호씨가 주연이 되지 않았겠느냐”며 짐짓 안도한 듯 “역시 빠른 사람이 이긴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송강호는 “‘퍼펙트 데이즈’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으로 출품됐을 때 봤다”며 “야쿠쇼 고지의 미소를 보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위대한 장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모든 것이 빠르고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시대에 야쿠쇼 배우가 겸손한 말씀과 연기로 ‘인생은 완성이 아니다’라는 진리를 전해주신 것 같다”고 평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야쿠쇼는 이 말을 듣고 송강호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으며 감사와 애정을 드러냈다. 야쿠쇼는 “송강호씨의 영화를 10편 넘게 봤는데, 특히 ‘살인의 추억’을 보고 감탄했다”며 “유머와 진지함의 진폭이 매우 넓은 매력적인 배우”라고 말했다.

명배우의 반열에 오른 두 사람은 완벽한 연기란 없다는 점에서 의견을 같이했다. 야쿠쇼는 “머릿속에 그려뒀던 연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땐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며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더 나은 연기를 위해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었고, 40여 년간 반성을 계속하며 배우로 살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송강호 역시 “영화와 연기에 오케이란 있을 수 없다”며 “오케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과정이 배우라는 직업인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언젠가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고 의기투합했다. 야쿠쇼는 “봉준호 감독이 저를 잘나가는 만화가의 나이 많은 문하생 역할로 캐스팅하고 싶다고 하셨다는데, 정말 그 영화를 찍게 되면 송강호씨가 저를 구박하는 만화가 역할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말을 하고 보니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처럼 송강호씨가 문하생인 제 머리를 두 발로 날려차기 하는 모습이 떠올라 아찔하다”고 말해 또 웃음과 박수가 나왔다. 야쿠쇼는 “송강호씨와 대담을 해보니 한국과 일본은 역시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며 “영화를 통해 양국이 교류를 이어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송강호(57)

2022년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로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991년 연극 ‘동승’으로 배우를 시작해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로 영화에 데뷔했다. 2000년 ‘반칙왕’에서 첫 주연을 맡은 이후 20년 넘게 한국 대표 배우 자리를 지켜왔다.

☞야쿠쇼 고지(68)

2023년 영화 ‘퍼펙트 데이즈’로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데뷔 이후 40여 년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명연기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는 ‘쉘 위 댄스’(1996),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우나기’(1997),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2001)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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