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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 (금)

영화판 흔드는 AI…‘예술의 민주화’냐 ‘하향 평준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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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권한슬 감독 영화 ‘원 모어 펌킨’.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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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영화산업을 뒤흔드는 게임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 전 폐막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는 인공지능을 화두로 내세워 국내 최초로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신설했고 국제콘퍼런스와 워크숍도 개최했다. 카메라·배우 없는 영화가 현실로 다가온 가운데, 영화산업의 지각 변동이 거대 자본에 구속되지 않고 상상력과 재능만 지니면 누구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예술의 민주화로 이어질지,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물리법칙 무시한 카메라 ‘생성형 AI’





지난 2월 오픈에이아이(AI)는 문장으로 명령어를 입력하면 최대 1분 길이의 고품질 동영상을 생성하는 인공지능 ‘소라’를 공개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세상의 물리 법칙을 이해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소라의 등장 이후, 미국 스타트업 런웨이 ‘젠-3 알파’, 구글의 ‘베오’ 등 동영상 생성 인공지능이 앞다투어 공개되면서 영화산업의 대격변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카메라나 배우, 스튜디오 없이도 프로그램에 특정 입력값을 넣어 원하는 장면·음악 등을 담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자유롭고 독창적 소재를 표현하거나 실사 촬영이 어려운 공간 등에 대한 상상력을 펼치는 데도 용이하다. 디에이징·딥페이크 기술처럼 시간을 되돌리거나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술은 이미 여러 작품에 활용되고 있다. 할리우드의 거장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아이리시맨’(2019년)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등 70대 배우의 젊은 시절 모습을 생성했다. 넷플릭스 화제작 ‘살인자 o 난감’의 손석구 배우의 아역, 최근 개봉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퓨리오사 : 매드맥스 사가’의 주인공 애니아 테일러조이의 아역배우 등도 생성형 인공지능에 기반해 구현되었다. 올해 방영된 인기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고 송해의 60대 시절을 담아내기위해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했다.



인공지능이 바꿀 영화산업의 지각변동은 영화계 거장들도 거부할 수 없는 미래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스타워즈’의 창조자 조지 루카스 감독은 영화에서 인공지능 사용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 유명 영화 제작자 타일러 페리는 동영상 생성 인공지능 ‘소라’의 충격으로 8억 달러 규모의 스튜디오 확장 계획을 백지화했다고 전해진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미 영화촬영지 추천, 편집, 색 보정, 특수효과 등 영화 제작의 각 부분에서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 긴밀히 활용되고 있다. 챗지피티가 등장한 이후에는 시나리오 등 스토리텔링에서도 생성형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커지고, 자료조사, 참고자료 점검, 표절 관련 정보 수집 등 사실상 보조작가의 역할까지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인간 창작자가 하던 역할을 생성형 인공지능이 대신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공포와 저항이 커지고 있음에도 인공지능의 확산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막대한 제작비가 요구되는 영화산업에서 시간과 비용, 인력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두바이 국제인공지능영화제에서 ‘원 모어 펌킨’으로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권한슬 감독은 “3분짜리 단편영화를 제작하는데 단지 5일의 시간과 전기료 수준의 비용이 들었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아직은 일관된 영상의 유지가 어려워 뒤로 갈수록 형체가 무너지고 동작이 어색해지는 등 한계도 명확하지만, 지금의 발전속도로 미루어볼 때 1년 내 장편영화가 출현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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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딥페이크를 사용해 젊은 송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제이티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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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진 영화 제작 문턱





생성형 인공지능은 영화 제작의 문턱을 낮추어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부풀리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가난한 창작자도 영화를 직접 제작할 수 있고, 시나리오 집필과 동시에 시각화 등의 과정을 저렴한 비용으로 실험할 수 있어 더 많은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영국 에든버러대학 미래연구소 교수이자 아티스트로 2023년 한겨레 사람과디지털포럼에 기조연사로 참여한 드루 헤먼트는 “인쇄기는 문자에 대한 접근을 민주화했고, 개인용 컴퓨터는 데이터 처리에 대한 접근을 민주화했듯이, 인공지능 도구는 더 많은 사람이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인공지능을 통해 예술의 민주화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인공지능 영화계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의 데이브 클라크 감독도 “인공지능 덕분에 누구나 ‘인사이드 아웃’을 만든 ‘픽사’같은 제작자가 될 수 있다”면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영화 제작의 민주화를 이끌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프롬프트에 고도의 복잡성을 투입해도 결국 기존 데이터의 평균에 수렴하는 무난한 결과를 생성하기 때문에, 창작의 도구가 아니라 소비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있다. 예술은 인간의 예측 가능한 욕망을 넘어서는 예측불허의 ‘위험한’ 것에서 탄생하는데, 결국 기존 데이터의 모방에 불과한 결과물의 양산은 영화산업 전반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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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리시맨’에서 디에이징 기술을 활용해 청년, 중년, 노년을 모두 재현한 로버트 드니로.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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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영화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인간과 영화가 맺어왔던 관계가 흔들리고 인공지능과 영화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영화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예술은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의미를 체현하는 활동으로 간주되어왔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024 사람과디지털포럼에서 ‘인공지능, 인공물, 예술’을 주제로 발표한 과학소설 작가 테드 창은 “합성 텍스트, 합성 이미지는 예술이 되기 어렵다”면서 “예술은 표현의 한 형태인데, 챗지피티는 스스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나 의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거대언어모델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이 하는 일은 결국 모방이며 학습한 데이터의 평균에 불과한 데 반해, 예술은 무수히 많은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테드 창은 “스튜디오, 배우, 카메라, 스태프 없이 좋은 영화는 나올 수 없다”고 말하면서 “종합예술로서 영화는 작가, 감독 외에도 카메라맨, 의상디자이너 등 수많은 사람의 선택이 빚어낸 결과물로 좋은 영화의 흡인력은 무수한 선택의 층위 속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테드 창은 사진·포토샵과 생성형 인공지능을 비교하면서, 사진·포토샵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예술적인 매체로 간주되지 않았지만, 예술가들이 수천개의 정교한 설정을 통해 자신만의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생성형 인공지능의 프롬프트도 복잡하고 교활한 입력을 통해 창작자만의 고유한 것을 선택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세한 입력을 거쳐 생성된 결과물조차 “기존 데이터의 평균치일 뿐”이며, “생성형 인공지능은 저차원적인 공간으로, 빅테크에서 개발할 때 미세한 조정을 하지 못하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인간의 창의성·고유성이 발현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말했다. 예술은 뛰어난 기예나 퍼포먼스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삶의 경험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이며, 이처럼 인간의 고유한 관점이 담긴 스토리야말로 인공지능이 인간 예술을 모방할 수 없는 지점이라는 의미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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