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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 (토)

긴 밤 지새우고… 하늘무대로 떠난 ‘아침이슬’ [고인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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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前 학전 대표 별세

위암 진단 후 투병… 향년 73세

‘아침이슬’ 담긴 첫 음반 큰 반향

군부독재 시절 잇단 금지곡 딱지

1991년부터 소극장 학전 이끌어

김광석·황정민·조승우 등 배출도

尹대통령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

“그가 이룩한 것들 문화유산 돼”

유홍준 교수 등 추모 발길 이어져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100만명에 가까운 시민이 운집한 서울 도심에서 ‘아침이슬’이 울려 퍼졌다. 군중 모두가 아는 노래는 ‘애국가’ 외에 이 곡이 유일하다고 할 만큼 대중적인 민중가요였다.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 대표적 저항 가요이자 듣거나 부를 때마다 가슴 찡하게 하는 ‘아침이슬’을 지은 김민기가 21일 무거운 짐 모두 버리고 하늘로 갔다. 향년 73세.

세계일보

21일 지병 악화로 별세한 김민기는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 대표적 저항가요였던 ‘아침이슬’을 만들고 1991년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인 학전을 설립해 숱한 문화예술계 인재를 길러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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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위암 4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경기 고양시 일산 집에서 요양 중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한다. 김민기가 1991년 세운 후 서울 대학로 소극장 문화의 상징이었던 ‘학전’의 김성민 총무팀장은 22일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일 오전 병원 응급실로 옮겨 다음 날 오후 8시26분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고인 조카로 2009년부터 학전 살림을 맡아온 김 팀장은 “별다른 유언은 없었지만 몇 달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고, 학전과 관련해선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했다’고 하셨다”며 “(추모 행사·공연 등) 김민기 이름을 앞세운 어떤 것도 하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고 전했다.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상록수’ 중)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민기는 이 노랫말처럼 염원하며 살았다. 경기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미술에 빠졌지만 1969년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한 뒤 그림물감 살 돈이 없어 붓을 놓았다.

대신 노래를 짓고 불렀다. 친구 김영세와 포크송 듀오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란 뜻)로 명동 YMCA ‘청개구리’ 무대에서 노래했다. 이듬해 만든 ‘아침이슬’을 비롯해 ‘친구’, ‘아하 누가 그렇게…’, ‘꽃피우는 아이’ 등 10곡이 수록된 첫 음반 ‘김민기’를 1971년 발표했다.

민중의 고단한 현실이나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긴 이 음반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대중음악사의 기념비적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불온하다는 이유로 음반이 압수당하고 이후 ‘아침이슬’, ‘상록수’, ‘늙은 군인의 노래’ 등 김민기의 곡들은 줄줄이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정치적 탄압으로 가수 생활을 못 하자 농사와 봉제 공장, 탄광 일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극예술에도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1973년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와 이듬해 창작마당극 ‘아구’ 제작에 참여했다. 1978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시작으로 1983년 연극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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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소극장의 상징인 ‘학전’의 김민기 대표가 지병으로 지난 21일 별세했다. 왼쪽 사진부터 2018년 신년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김민기 대표와 22일 서울 종로구 학림다방에서 열린 별세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학전의 대표작인 뮤지컬 ‘지하철1호선’의 포스터가 걸려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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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인재 산실, 학전

1991년 3월15일, 학전을 설립해 라이브 콘서트와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올렸다. ‘배울 학(學), 밭 전(田)’이란 뜻처럼 문화예술계 인재를 키우는 못자리 역할에 충실했다. 학전이 낳은 최고 스타인 고 김광석을 비롯해 동물원, 들국화, 강산에, 박학기, 장필순, 유리상자 등 실력파 가수들이 학전 무대에 섰다.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린 김윤석,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조승우를 비롯해 방은진, 이정은, 김무열, 최덕문, 안내상 등 많은 배우에게도 성장 발판이 됐다. 특히 김민기가 독일 원작을 한국 정서에 맞게 번안해 1994년 초연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배우 등용문이었다. 지난해까지 4500회가량 공연하며 관객 70여만명을 모은 소극장 뮤지컬의 전설이다. 김민기와 학전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작품에도 공들여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을 선보였다.

하지만 만성적인 재정난에다 김민기의 건강 문제가 겹쳐 학전은 33년 만인 지난 3월 폐관했다. 학전 건물은 고인의 뜻을 존중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새단장했다.

◆“진주보다 고운 아침이슬 김민기”

이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는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지인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배우 장현성은 “선생님 덕분에 저희가 건강히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고 애도했다. 배우 박원상은 “선생님과 또래인 분들은 강단으로 가셨지만, 김민기 선생님은 끝까지 학전을, 대학로를 지켜주셨다”며 “옛날에 (단골 카페인) 학림에 가면 늘 맥주를 마시고 계셨는데, (하늘에) 가셔서 좋아하시는 맥주 많이 드시고 쉬시면 좋겠다”고 추모했다.

김민기와 대학 시절부터 친분을 나눈 오십년지기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도 빈소를 찾았다. 유 교수는 고인에 대해 “겸손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밖으로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다”며 “하지만 그가 문화예술을 고집하며 이룩한 것들은 우리의 어마어마한 문화유산이 됐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가수 윤도현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저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이자 존경하는 음악가 김민기”라며 “학전도, 선생님도, 대학로도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추모했다. 가수 이적은 생전 고인과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형님, 하늘나라에서 맥주 한잔하시며 평안하시리라 믿는다”며 “나의 영웅이여,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적었다.

가수 알리는 “선배님 예술 인생의 발자취를 알게 되고, 느끼고, 노래로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했다. 알리는 올해 3월 학전 폐관 전 마지막 공연인 ‘학전 어게인 콘서트’에 출연한 인연이 있다. 가수 김광진은 “대학 시절 저희의 많은 부분을 이끌어 주신 음악들 감사드린다”며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분이었다. 음악도, 삶도, 저희한테 주셨던 따뜻한 격려도 기억한다”고 남겼다.

시인 류근은 “갖은 고난을 이기고 상류에 이르러 그 육신마저 마침내 내어주고 스러지는 연어처럼, 온 생애가 저절로 타인과 나누고 베푸는 삶이었다”며 “우리 시련의 동산 위에 영원히 진주보다 고운 아침이슬 김민기”라고 애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SNS에 고인에 대해 “당연한 것을 새롭게 보려는 순수한 열정으로 세상을 더 밝게 만드셨다”고 적었다. 윤 대통령은 “학림다방에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열정이 마음에 울림을 줬다”며 “역사는 선생님을 예술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지닌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할 것이다. 편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고 애도한 뒤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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