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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목)

“오늘 한 벌도 못 팔았어요”…동대문이 무너진다, 대체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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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남대문시장 가보니
‘알테쉬’ 소매 시장 직격탄에
값싼 중국산이 원자재도 대체
온라인 소비 트렌드 못 쫓아가
시설 낡아 젊은 고객 발길 뚝


매일경제

남대문시장의 상가인 ‘대도아케이드’의 비어있는 점포 모습. [이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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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오후 시간에 찾은 남대문시장. 비 오는 날임을 고려해도 시장 안은 한산했다. 특히 한 상가 건물로 들어가니 1층부터 곳곳에 공점포가 보였다. 곳곳에 ‘임대 문의’란 종이가 을씨년스럽게 붙어있었다. 몇몇 상점은 비어있는 점포로 두기가 뭐해 옆 공점포에 자신의 물건을 일부러 진열해놓기도 했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해 24년째 남대문시장에서 일하며, 지금은 상점 ‘호산나’를 운영 중인 유윤순씨(72)는 평소 폐점 시간보다 1시간 전에 미리 퇴근할 거라며 짐을 싸고 있었다. 오늘도 소위 옷 한 번을 팔지 못한 ‘공친 날’이 됐다. 어차피 손님이 없어 최근엔 이렇게 1시간 먼저 집에 들어가고 있다. 옷 한 벌도 못 파는 날이 한 달에 10번 이상이라고 했다. 그는 “매출이 아니라 대출로 살아가는 실정”이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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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시장의 상가인 ‘대도아케이드’의 비어있는 점포 모습. [이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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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평일 저녁에 찾은 동대문패션타운의 ‘굿모닝시티’ 쇼핑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저녁 시간이 지나 외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위해 몰려들어야 하는 시간대였지만 상가 1층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여성복을 10년 넘게 팔고 있는 이 모씨(59)는 “옷 장사 30년간 이렇게 힘든 적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이 많이 찾아 매출이 괜찮았는데, 지금은 그때의 20~30% 수준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K패션의 성지였던 동대문패션타운과 남대문시장이 긴 불황을 겪고 있다. 의류 쇼핑 트렌드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빠르게 바뀌며 발길이 끊긴데다, 최근엔 중국산 값싼 원단과 쉬인 등 의류쇼핑몰에 밀려 가격경쟁력도 뒤처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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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패션타운의 ‘굿모닝시티’ 쇼핑몰의 1층 매장이 비어있다. 굿모닝시티의 공실률은 70%에 달한다.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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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동대문·남대문시장이 포함된 ‘중구 관광특구’의 일반의류 소매점은 올해 1분기 1만30곳으로, 2020년 1만2711곳에 비해 21.1% 줄었다.

상가 공실률도 높게는 90% 가까이 치솟았다. 업계에 따르면 동대문의 패션 소매점포가 몰려있는 맥스타일 건물의 공실률을 86%에 달하고, 굿모팅시티(70%)와 헬로에이피엠(37%), 밀리오레(33%) 등도 공실률이 높게 나타났다. 도매상권도 대규모 주문 감소에 허덕이며 공실률이 높게는 77%에 달하는 건물도 나왔다.

동대문 상권은 원단부터 봉제, 도소매, 유통상인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국내 최대규모 패션산업단지로 꼽힌다. 하지만 가격경쟁력에선 중국에 밀리고 젊은 내외국인을 유인할 콘텐츠의 부재로 아직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한국산 원단을 찾는 도매시장 큰손인 중국 바이어들의 발길이 끊기고, 쇼핑을 하려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놀거리가 많은 홍대·명동·성수 등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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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패션타운의 ‘굿모닝시티’ 쇼핑몰의 지하 1층 통로가 막혀있다. 굿모닝시티의 공실률은 70%에 달한다.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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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대의 재래시장이자 의류를 포함해 주방·가전·수입 상품 등 없는 게 없다고 일컬어지는 남대문시장도 좀처럼 코로나19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상인회에 따르면 2019년 3.8%에 불과하던 공실률은 팬데믹 간 2021년 24.7%, 2022년 24.2%, 2023년 25.5%로 급속도로 치솟았다. 지난 2월 기준 공실률은 18.2%로 여전히 두 자릿 수를 기록하고 있다. 총점포 5054곳 중 920곳이 텅텅 비어, 5곳 중 1곳이 공점포인 셈이다. 엔데믹 이후 관광객 수요가 점차 회복되고 있음에도 남대문 상권 침체는 만성화되는 모양새다.

새벽과 야간에도 국내외 관광객들과 도매상으로 떠들썩했던 상권이지만, 이제는 저녁 8시만 지나도 조용해질 정도로 침체한 데엔 중국산 공습의 영향이 컸다. 특히 최근 전통시장 소매 영역은 이른바 알리·테무로 대변되는 중국 플랫폼 침투의 타격을 그대로 받고 있다. 자라와 H&M을 제치고 패스트 패션업계 글로벌 1위에 오른 중국 패션업체 쉬인이 한국 패션·유통시장 본격 진출을 준비 중이라 우려감은 커지고 있다.

동대문패션타운 관계자는 “중국산 ‘알테쉬’의 공습으로 온라인 초저가 패션에 고객을 뺏기며 동대문 소매 장사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며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매상권도 중국에 원단기술을 거의 따라잡힌데다 가격경쟁력에서도 밀려 강점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중국산 의류 수입중량은 지난 2020년 5593톤에서 지난해 6436톤으로 15.1%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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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패션타운 평화시장 1층 매장 곳곳의 문이 닫혀있다.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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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의류 점포 침체의 결정적인 원인은 온라인 소비 확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수십 년을 거쳐 의류 쇼핑몰들이 대부분 온라인화 돼 동대문과 같은 오프라인 매장들은 매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대문 의류 쇼핑몰 인근은 의류 외에 소비할 수 있는 상권이 부족하다 보니 유동 인구가 부족해지면서 상권이 발달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권 노후화 인한 젊은 관광객 이탈은 전통시장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남대문시장 앞을 지나던 한 청년은 “전통시장 같은 곳에서 옷을 사본 것이 10년도 넘었다”고 평했다. 특히 동대문·남대문 시장 상인들은 최근 광장시장의 부활을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다. 노후화된 상권 이미지를 극복하고 관광객들에게 맛집으로 이름을 날리며 재기에 성공한 모습에 부러움을 느껴서다.

문남엽 남대문시장상인회장은 “최근 먹거리로 젊은 관광객들과 외국인들을 붙잡고 있는 광장시장에서 배우고 싶다”며 “만두·갈치 조림·호떡 같은 남대문시장의 인기 상품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노후화된 이미지에 머물러 있는 게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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