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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 (일)

[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한의 오판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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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윤희 전 합참의장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북한이 지난 24일 올해 들어 10번째로 오물 풍선을 날렸다. 오물 풍선에 유해 물질이 담기진 않았지만 이번 풍선은 용산 대통령실과 여의도 국회 인근에도 떨어졌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풍선을 이용해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화생방으로 공격할 수 있는 풍속과 풍향 데이터를 수집했을 것이다. 여기에 지난 16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새로운 대응을 언급했다. 한국을 향한 대응 수위를 한층 높이겠다는 뜻이어서 우려된다. 풍선 전쟁을 도발과 확전의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한국의 대북 풍선 살포 원점을 북한이 총격이나 포격할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북 오물풍선 한국 심장부 낙하

화생방 공격 정보 획득 가능성

도발 억제 위한 의지와 힘 절실

한미 미래 연합전력 확보 나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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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전 북한이 살포한 오물풍선이 서울 상공에서 포착됐다. 이중 일부는 용산 대통령실 경내에도 낙하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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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물풍선에 한국은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필자가 합동참모본부 의장으로 재임 중이던 2015년 8월 ‘목함 지뢰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확성기 방송을 하자 북한은 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북 방송 재개는 그만큼 북한에는 아킬레스건이라는 얘기다. 2022년 9월 “선제 핵 공격”을 헌법에 명문화했고, 지난 1월에는 통일정책 폐지를 선언한 북한이다. 정상 국가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오물 풍선을 이용해 남남갈등을 부추기며 도발의 명분을 쌓겠다는 게 북한의 속내일 수 있다. 북한의 비정상적 행태는 도발이 임박했다는 암시일 수 있다.

내일은 한국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긴 세월을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전전긍긍하며 살아 왔다. 북한과 그 뒷배인 중국, 러시아는 모두 핵보유국인데 한·미·일은 오직 미국에만 의존한다. 불안정한 국내외 정세 속에 북한이 오판할 요소가 다분하다.

불안정한 역내 힘의 균형

재래식 무기만 놓고 보면 힘의 균형은 한·미 연합세력이 우세하다. 그러나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며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 한·미가 미국의 핵을 적극 활용하는 확장 억제 정책을 마련한 이유다. 한·미는 지난해부터 핵억제 능력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와 ‘핵협의그룹(NCG)’을 구성했다. 지난 11일에는 최초로 문서화된 ‘핵 공동지침’까지 마련했다. 이를 통해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빈도를 높이고 핵과 재래식 무기를 통합 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효용성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수해 온 ‘단일 권한’ 원칙 때문이다. 이 원칙에 의하면 미 핵무기 사용 승인 권한은 오직 미 대통령에게 있다. 미 전략자산과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해도 신속하고, 단호한 응징이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은 이런 현실을 꿰뚫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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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서울에서 3차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공동주재한 조창래 대한민국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왼쪽)과 비핀 나랑 미 국방부 우주정책차관보 대행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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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 홍해 사태로 미국의 군사력은 여력이 없다. 여기에 중국과 대만이 무력충돌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면 최악이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기고에서 대만사태 시 북한의 도발로 역내에 두 개의 전선이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군사력으로 두 개의 전쟁을 치르기엔 벅차다는 사실을 북한이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와 서해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며 우리의 해양 활동을 옥죄고 있다. 유사시 우리 해군 작전에 엄청난 장애다. 여기에 북한이 러시아의 도움으로 핵 추진 잠수함(핵잠)을 개발하면 역내 해양 안보 패러다임이 바뀐다. 북한이 한반도 해역에서 벗어나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이미 개발한 핵무기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능력을 이용하면 미 본토에 대한 은밀한 핵 공격도 가능하다. 또 한반도 유사시 전개하는 미 증원 전력을 발진 기지부터 차단할 수 있다. 이런 현실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역내 힘의 균형에서 한·미가 절대 우세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내 정책만으로는 한계

문제는 물리적인 힘의 균형 파괴뿐 아니라 이를 구사할 의지가 있느냐다. 미국은 정전 이후 ‘한반도의 현상 유지 정책’을 추구했다. 경찰국가인 미국이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자행한 3000번이 넘는 도발에 단 한 번도 단호한 대응이 없었다. 심지어 1·21사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과 같은 전쟁 수준의 도발에도 ‘참고’ 넘어갔다. 이는 북한에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줬고, 동맹의 막강한 힘에도 도발을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 온갖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개발했다. 이런 ‘인내’ 정책만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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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군사합의문서명식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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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18년 9·19 군사합의는 우리의 대응 의지를 의심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세계 많은 나라가 부러워하는 명품 한·미연합훈련마저 대폭 축소 또는 중단됐다. 훈련 부족으로 인한 총체적인 방위태세 약화는 물론이고, 정신교육이 중단되며 장병들의 대적관과 정신상태가 흐트러지는 결과를 낳았다. 평화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안타깝다. 안보 이슈의 정쟁화, 국론 분열 역시 북한이 바랐던 게 아닐지 모르겠다.

북 위협에 실전적 대비 태세 갖춰야

북한의 비정상적인 오판에 따른 전쟁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도발하면 기필코 정권을 말살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는 물론, 그에 걸맞은 힘을 키워야 한다. 당장 장병들의 정신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작전계획과 연합훈련에 반영해 실전적인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여차하면 핵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확보해야 한다. 당장 핵무기 보유가 어렵다면 우라늄 재처리 등 잠재적인 핵보유 역량이라도 보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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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파파로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11일(현지시간) 한국의 핵(원자력)추진 잠수함이 작전적 가능성을 보인다면 도입을 추진해볼 수 있다고 말하며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가 "모두에게 우려되는 상황"이라 언급한 바 있다. 이유정 기자·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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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80%, 미 조야의 25% 이상이 이에 동의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11일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을 필요할 경우 추진할 수 있다”는 새뮤얼 파파로 미 인태사령관의 발언을 새겨 들어야 한다. 2030년이 되면 미국의 전투함은 290척인 반면, 중국은 425척의 함정을 보유할 계획이다. 135척의 격차다. 현실적으로 한반도에서 미국 해군의 열세가 불가피하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미 해군은 한국의 조선소에서 함정을 건조하거나 정비(MRO: Maintenance, Repair, Overhaul)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2월 카를로스 토로(Carlos D Toro) 미 해군성 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문제도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래의 한·미연합전력을 위한 적극적인 협력에 나서길 바란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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