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08 (일)

[청계광장]노화와 아름다운 인생 마침표 고종명(考終命)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오는 백발 지는 주름/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을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드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고려 문신 우탁 선생의 탄로가(歎老歌)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를 뉘라서 피할쏜가. 한편 이른바 '노인사고'는 병고(病苦)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라는데 막상 부딪쳐보니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불로장생할 것처럼 산다. 목숨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고 문지방만 넘으면 저승인 것도 모르고 그런다. 정말이지 100년을 살아도 고작 3만6500일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 건강하게 살다 느닷없이 덜컥 자는 잠에 죽는 것이 백번 옳다. 비움과 놓음, 썩힘과 하심(下心)이여 영구히 늙지 않는 몸(ageless body)에 영원히 지칠 줄 모르는 정신(timeless mind)으로 살다 갈 수는 없는가. 늙다리의 넋두리가 길었다.

노화(老化·aging)를 꼭 꼬집어서 이야기하기 어려우나 일반적으로 유전자시계가설(遺傳子時計假說·genetic-clock hypothesis)과 핵산마멸가설(核酸磨滅假說·DNA wear-and-tear hypothesis), 활성산소의 세포산화 등으로 설명한다. 첫째로 유전자시계가설은 말 그대로 노화와 죽음은 유전적으로 정해진 것으로 세포 안에 모래시계(hourglass)를 가지고 있어 세포의 분열횟수가 정해져 있다는 주장이다. 태아의 세포를 조직배양했을 때는 70여번 세포분열을 하는데 70세 노인의 세포들은 같은 조건에서 20~30번 분열하고 만단다. 그러니 세포 속에 뭔가 정해진 프로그래밍이 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유전자(DNA)가 노화를 결정하고 사람마다 그 유전자가 달라 수명은 선천적이라는 것. 결국 오래 살고 싶으면 장수 집안에서 태어나야 한다. 어쨌거나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고 죽음은 하늘에 매였음을 알자!

둘째로 핵산마멸가설이다. 세포가 분열하면 염색체가 늘어나면서 그 염색체를 구성하는 DNA도 따라서 복제한다. DNA 복제가 여러 번 연이어 일어나면 염색체 DNA 가닥 끝자락(telomere·텔로미어)이 구두끈이 조금씩 달아빠지듯이 줄어들어 결국 복제를 멈추고 세포가 생명력을 잃어 노화의 까닭이 된다는 설이다.

끝으로 세포 호흡과정에서 생기면서 잠시 존재하는 산소유리기(酸素遊離基·oxygen free-radical)가 세포를 상하게 한다는 것. 과유불급이라고 산소도 넘쳐도 탈, 모자라도 탈이다. 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산소유리기, 즉 활성산소(活性酸素·Reactive Oxygen Species·ROS)는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 대사과정에서 생성된 것으로 매우 산화력이 강한 산소이기에 어처구니없게도 제 세포를 산화시켜 다치게 한다.

조금 더 보태면 활성산소는 여러 아미노산을 산화시켜 단백질을 변성시키고 핵산(DNA) 염기를 변형시킨다. 그래서 세포가 제 기능을 잃거나 변질하면서 암(돌연변이)이 생기고 각종 질병과 노화를 촉진한다. 이렇게 무서운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항산화물질(抗酸化物質·antioxidant)에는 녹차에 든 폴리페놀, 채소나 과일에 많이 든 안토시아닌, 비타민C, 비타민E, 베타카로틴(β-카로틴)이 있으며 그것들이 노화예방효과(anti-aging effect)가 있다고 한다.

굳이 말한다면 젊어서는 환경, 영양섭식, 생활습관들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늙으면 '유전자'의 손에 목숨이 매였다. 사람들아 두 주먹 꽉 거머쥐고 태어나 양손 쫙 펴고 가는 인생인 걸, 인간 한살이가 턱없이 부질없고 덧없더라! 탈 없이 살다가 스르르 짚불 꺼지듯 고종명(考終命)이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암튼 자연식품을 골라먹으며 운동하고 유독성 물질을 피하고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며 사랑하는 마음들로 질병을 멀리하면 노화를 조금이나마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