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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파스타 마린보이, 컵밥 인어공주, 빨간 팬티 삼손...선수들 독특한 루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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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마다 독특한 습관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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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올림픽 한국 선수단 최연소 선수인 사격 반효진(17)은 경기를 앞두고 남다른 루틴이 있다. 그는 “항상 시합 당일 오늘의 운세를 본다. 오늘의 운세를 보고 운세가 좋게 나오면 기운을 얻고, 안 좋게 나오면 신경을 안 쓰려고 한다. 또 시합을 앞두고 손톱이 부러져서 이제는 손톱이 안 부러지면 불안하다. 일부러 부러지도록 시합 전주부터 손톱을 깎지 않는다”고 밝혔다. 27일 오후 4시(한국 시각) 10m 공기소총 혼성 종목에 최대한(20)과 함께 출격하는 반효진 당일 운세는 ‘어부지리’다. 뭔가 조짐이 좋다. 탁구 장우진(29)은 경기 전 모든 것을 왼쪽으로부터 시작하고 경기에 들어가서는 수건을 많이 접는다.

반효진이나 장우진처럼 스포츠 선수들은 경기 전 루틴(routine)이나 미신, 색다른 행동 습관을 가진 경우가 많다.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정해진 순서대로 몸을 푸는 셈이다. 특정 행동·동작을 반복하는 루틴을 해야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 경기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조금 과한 경우에는 징크스(jinx)로 이어지면서 역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38·스페인)은 서브를 넣기 전 항상 발로 땅을 고르고, 라켓으로 두 발의 흙을 턴 뒤 엉덩이에 낀 바지를 빼고, 양어깨와 귀, 코를 번갈아 만진다. 그에게 지켜야 하는 루틴만 12개가 넘는다고 한다. 마시는 물병은 상표가 코트를 향하도록 두는 등 강박에 가깝다. 육상 높이뛰기 우상혁(28) 경쟁자 장마르코 탬베리(32·이탈리아)는 지난 도쿄 대회에서 예선 때까지 수염을 기르다 결선에서 면도를 절반만 하고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루틴과 습관, 또는 버릇, 미신, 징크스 경계는 사실 모호하다. 나달처럼 꼭 그렇게 해야 경기가 잘 풀린다는 맹신을 가진 선수가 있는가 하면 단지 마음을 좀 더 편하게 하려는 루틴도 많다.

적잖은 선수들은 음식에 집착한다.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에 출전하는 오예진(19)은 경기 입장 5분 전 새콤달콤 캐러멜 레몬맛을 먹는다. 유도 남자 81kg급에 출전하는 이준환(22)은 시합 당일 복숭아 아이스티를 챙겨가서 시합 전에 마시고, 태권도 여자 57kg 이하급에 나가는 김유진(24)은 비타민 워터를 항상 마신다.

테니스 권순우는 만약 첫 경기에서 이기면 첫 경기 전 먹었던 음식들을 경기 기간 내내 똑같이 먹는다고 한다. 요즘은 시합 전 흰쌀밥과 연어를 먹는 습성이 새로 생겼다. 수영 접영 100m 김지훈(23)은 시합 동안 점심과 저녁으로 파스타와 피자만 먹는다. 아티스틱스위밍에 나서는 이리영(24)은 시합 전 아침으로 ‘컵밥’을 먹고 렌즈를 왼쪽부터 끼는 게 루틴이라고 전했다.

한국적 미신을 피하기 위한 징크스도 있다. 한국은 밥을 국에 말아 먹으면 일을 그르친다는 ‘말아먹는다’와 발음이 같아 시험이나 시합 전에는 피하는 경우가 많다. 26일 여자핸드볼 독일전에서 활약한 우빛나(23)도 “밥을 국에 절대 말아 먹지 않는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양궁 리커브 김우진(32)도 국에 밥을 말아 먹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김우진은 과거 시합 전에 빵을 먹었다가 빵(0)점을 쏜 기억이 있어 시합 전에 빵도 먹지 않고 ‘경기에 가서 죽 쑬까 봐’ 죽도 먹지 않는다.

‘행운의 옷’과 관련된 징크스도 흔하다. 과거 배드민턴 남자 국가대표 이용대(35)처럼 주로 속옷(전날 이긴 경기에서 입었던 속옷을 빨아 또 입는다)과 관련된 징크스가 많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130kg급 이승찬(29)은 빨간 팬티를 입고, 사격 10m 공기권총에 출전하는 이원호(25)는 시합할 때만 입는 속옷이 있다고 한다. 수영 평영 200m에 나서는 조성재(23)는 시합 전에는 꼭 새 팬티를 입는다.

‘마린보이’ 박태환(35)처럼 경기 직전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감상하는 등 마음을 다스리는 선수들은 흔하다. 대신 특정 곡을 고르기도 한다. 기계체조 이윤서(21)는 꼭 아이유 노래를 듣고, 새 양말을 신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이번 대회 대표팀 선수들 심리 상담을 진행한 한덕현 중앙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선수들에겐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외적 요인이 많다. 이 때문에 루틴이 있으면 스스로를 통제하고 집중할 수 있어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면서 “출전 선수들 중 마음의 안정과 기량 향상을 위해 경기 전 루틴을 (아예 새로) 만들어달라는 의뢰도 많았다”고 말했다.

[양승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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