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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 (일)

내란과 빈곤의 나라 ‘아름다워서 더 슬픈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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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 기자의 스타일&스토리]

조선일보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카리브해 국가 아이티의 국가대표 7명의 선수들이 입고 나올 단복./스텔라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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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패션’이다. 개최지부터가 세계 패션 중심지이고, 실제로 수많은 패션 브랜드와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단복과 경기복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패션 레이스’에서 뜻밖에 선전하는 ‘언더 독’ 두 나라가 있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와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개막을 앞두고 선정한 ‘최고의 유니폼 10선’에 두 나라 유니폼을 포함했다. 정치 혼란과 빈곤으로 점철된 고난의 역사를 이어온 나라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아이티 단복은 화려한 무늬의 하의가 우선 눈길을 잡아끈다. 아이티 출신의 화가 필립 도다르의 작품을 새겨 민족적 정체성을 담았다. 하의에 비해 상의는 비교적 단순한 색과 형태이지만, 스카프(남자 단복)와 허리띠(여자 단복)로 포인트를 줬다. 깔끔하고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한 다른 국가들의 단복과는 확실히 구별된다는 평가다. 이탈리아 아버지와 아이티 어머니를 둔 디자이너 스텔라 장의 작품이다. 스텔라 장은 색상과 독특한 패턴 등 자신의 뿌리를 반영하는 이국적인 디자인으로 이탈리아 패션계에서 주목받는 여성 디자이너다.

아이티 단복의 디자인에는 흑인들이 세운 최초의 독립국이라는 찬란한 역사를 가진 어머니의 나라가 시련을 딛고 다시 날아오르길 바라는 디자이너의 마음이 반영돼 있다. 아이티는 호된 시기를 겪고 있다. 2010년 대지진으로 10만명이 넘게 목숨을 잃은 뒤에도 혼란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조직폭력배가 나라를 장악하면서 국가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집에서 괴한들에게 피살된 뒤 국정은 마비 상태로 빠져들었고, 의회 역시 지난해 1월 의원들의 임기가 종료되면서 해산됐다. 대통령을 대신해 지도자 역할을 해 오던 아리엘 앙리 총리는 올해 3월 조폭들의 협박에 못 이겨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폭들의 소요 사태로 2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58만명이 난민이 됐다. 케냐를 비롯해 바하마와 방글라데시, 바베이도스, 베냉, 차드, 자메이카 등에서 왔거나 올 예정인 외국 경찰에게 치안을 의탁한다.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정부 재건 절차를 밟고 있다. 스텔라 장은 아이티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시련을 겪는 조국을 어떻게 변모시킬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고 여기서 받은 인상을 디자인에 반영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 나가는 7명의 선수들은 메달 수상자로서 시상대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평화의 수호자’라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이들은 보여지는 성적으로 평가될 수 없는 부활과 갱생의 살아있는 상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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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 올림픽에서 시에라리온 국가대표 선수들이 입고 나올 유니폼./라브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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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못지않은 시련의 역사를 가진 시에라리온의 경기복도 ‘패션 올림픽’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에라리온은 1961년 독립 직후부터 군부 쿠데타와 권위주의 통치를 겪었다. 특히 1991년부터 2002년까지 벌어졌던 내전으로 5만명이 숨지고, 50만명이 난민이 되고, 어린이 1만명이 소년병으로 동원되는 비극을 겪었다. 시에라리온 출신 디자이너 포데이 둠부야가 설립한 영국 흑인 패션 브랜드 라브룸이 아디다스와 협업해 고국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경기복을 만들었다. 시에라리온 경기복은 푸른색과 흰색을 조합한 세로 줄무늬 디자인을 선보여 그 어떤 나라보다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흰색 세로줄은 고대 아프리카에서 화폐로 사용되던 ‘카우리 조개’의 입 부분을 그려넣은 것이다. 부와 명성의 상징이었던 조개를 유니폼 디자인에 형상화함으로써 힘과 회복의 메시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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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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