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8 (금)

관습 거부한 혁명의 도시, 통합·성평등·친환경 깃발 들고 ‘축제의 시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이자 올림픽 성화가 파리 시내에 들어온 지난 14일(현지시각), 에펠탑 근처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신화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혁명의 도시 파리에서 27일(한국시각)부터 17일간의 스포츠 열전이 펼쳐진다. 프랑스는 1924년 이후 100년 만에 파리에서 다시 열리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문화·예술 대국으로서의 위용을 과시하는 한편, 사회통합·성평등·친환경 등 인류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하려 한다. 왕정에 대항한 시민들의 혁명으로 탄생한 나라답게 프랑스는 그간 올림픽 개최국이 답습해온 관습을 거부했다. 그 대신, 혁신적인 방법으로 파리를 열광의 도가니로 물들일 예정이다.







배 타고 이동해 사상 최초 야외 개막식





올림픽 개회식부터 파격적이다. 근대 올림픽 128년 역사상 최초로 주경기장(스타디움)이 아닌 야외에서 개막식이 열렸다. 1만1215명의 선수단이 파리의 상징이자 동맥인 센강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파리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입장했다. 선수단을 태운 95척의 배가 트로카데로 광장까지 6㎞ 이동하는 장면은 센강을 찾은 이들에게 공개됐다. 그동안 올림픽 개회식은 비싼 유료 티켓을 구매한 소수의 전유물과도 같았다. 하지만 프랑스는 파리를 방문한 모두에게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방법을 택했다.



‘완전히 개방된 대회’라는 슬로건에 맞게 센강이 개회식과 폐회식의 무대가 됐다면, 프랑스가 지닌 세계 문화유산은 경기장으로 탈바꿈했다. 파리 심장부에 있는 콩코르드 광장은 올림픽 기간 브레이킹(댄스), 사이클, 스케이트보드, 3×3 농구 경기 등이 치러져 청춘들의 놀이터가 된다. 콩코르드 광장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된 ‘혁명의 광장’이기도 하다.



한겨레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가 처형된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는 스케이트보드 경기장이 설치됐다. 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자, ‘태양왕’ 루이 14세가 거주했던 베르사유 궁전의 에투알 로얄 광장에서는 승마, 근대 5종 경기가 열린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그랑팔레에서는 펜싱과 태권도, 에펠탑 앞 샹드마르스 광장에서는 비치발리볼 경기가 열린다. 문화 유적과 스포츠가 한데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의도가 엿보인다.



한겨레

파리올림픽 개막을 사흘 앞둔 지난 23일(현지시각) 그랑팔레 내부에 설치된 태권도·펜싱 경기장에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올림픽은 역사상 가장 성평등에 가까워졌다. 1만1215명의 선수단 중 여성이 5503명으로 49%를 차지해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의 48.5%에 견줘 더 늘어났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대회에서는 여성 선수가 단 한명도 없었고, 1900년 파리 대회에선 4.4%에 불과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여성 선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미국(338명)인데, 전체 선수단 638명 가운데 53%에 이른다. 여자 마라톤이 사상 처음으로 남자 마라톤보다 하루 늦게 열리며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아이를 동반한 선수들을 위해 선수촌에 어린이집을 마련했는데, 이 또한 올림픽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겨레

파리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선수촌에 설치된 탁아소 모습.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림픽의 마스코트 ‘프리주’(Phryge)가 담고 있는 의미도 눈길을 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시민군들이 쓰던 빨간 모자인 ‘프리기아’를 의인화한 프리주는 자유와 해방이라는 혁명 이념을 드러내고 있다. 토니 에스탕게 조직위원장은 프리주 공개 당시 “우리는 동물보다는 오히려 이상을 택했다”며 “프리기아 모자를 택한 이유는 프랑스 공화국의 강력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에게는 자유의 상징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패럴림픽 마스코트도 프리주이지만, 한쪽 다리에 경주용 의족을 착용하고 있다. 의족을 찬 마스코트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애인이 최대한 많이 활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한겨레

파리올림픽 마스코트 프리주






폭우 쏟아지면…조마조마한 센강





성평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올림픽을 표방하는 데는 성공한 듯 보이나 “역사상 가장 친환경적인 대회를 열겠다”는 포부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려 있다.



파리올림픽 조직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설정한 탄소 제로를 목표로 △전 경기장 재생에너지 사용 △친환경 차량 이용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제한 △선수촌 내 노(No) 에어컨 등의 정책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질 수 있다는 예보에 참가국들이 노 에어컨 정책을 놓고 반발하기 시작했다.



청정에너지로 작동하는 선풍기를 설치하겠다는 조직위 설명에도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자국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과 숙면을 이유로 에어컨 설치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국가별 빈부 논란까지 빚어졌다. 결국 조직위가 “일생일대의 경기를 앞둔 선수들에게 쾌적함과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겠다”며 ‘노 에어컨’ 정책을 뒤집으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조직위는 각국이 자체 비용으로 휴대용 에어컨을 주문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특정 도시를 정해 전세계인이 몰려들게 만드는 대회 운영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근본적인 회의도 고개를 들고 있다. 현지에서 아무리 저탄소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세계에서 몰려드는 비행기에서 내뿜는 탄소조차 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철인 3종 수영 경기와 수영 마라톤인 오픈워터가 열리는 센강의 수질은 개선됐다고 하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지난 17일 안 이달고 파리시장과 에스탕게 조직위원장은 센강에 뛰어들어 5분간 수영을 하며 논란을 잠재우려 했다. 프랑스 정부와 파리시 등은 경기를 치를 수 있을 만큼 센강의 수질이 개선됐다고 홍보하지만, 예상치 못한 폭우가 쏟아지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간다. 파리시는 올림픽을 대비해 거대한 오염수 저장고를 설치해뒀으나 저장고의 허용치를 넘어서는 폭우가 이어지면 생활 하수가 센강으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월 올림픽 선수촌 개장식에서 ‘센강 입수’를 공언했지만 지난 19일 엘리제궁은 “대통령이 (센강에서) 수영을 하겠다는 입장은 그대로지만, 올림픽 전에 수영할 기회가 반드시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올림픽 경기를 무사히 치른 뒤 대통령이 센강에 뛰어드는 ‘안전한 세리머니’를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범죄 위협 또한 여전히 상존한다. 파리시는 번화가 길목마다 경찰을 배치해 치안에 신경 쓰고 있지만, 올림픽 기간 몰려들 인파를 생각하면 위험 방지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개막식을 14시간 앞둔 26일(한국시각)엔 파리에서 남서쪽과 북쪽으로 각각 144~160㎞ 떨어진 곳에서 고속철도 방화 사건이 발생해 프랑스 당국을 바짝 긴장시켰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낳는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선 팔레스타인 테러단체가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아 11명이 사망한 참극이 있었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바일스·킵초게도 고별 무대





전세계 스포츠 축제에 대한 희망과 우려가 공존하지만 파리올림픽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는 ‘라이징 스타’에겐 기회의 장, 노장에겐 마지막 무대가 될 예정이다.



육상·수영 등 기초 종목에서는 2000년대생 선수들의 활약이 예고돼 있다. 미국의 에리욘 나이턴(20)은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의 기록을 깰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전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미 도쿄올림픽 때 17살의 나이로 남자 200m에 출전해 19초91로 볼트의 20살 이하 기록(19초93)을 넘어선 바 있다. 볼트가 가지고 있는 200m 세계기록은 19초19(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인데, 비공식 기록으로 19초49를 찍은 나이턴은 파리에서 신기록에 도전한다.



수영에서는 캐나다 국가대표 서머 매킨토시(17)가 수영 천재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예정이다. 도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올림픽 출전인 그는 올해 5월 자국 대표 선발전 여자 개인혼영 400m 결승에서 4분24초38을 기록해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자유형 400m와 접영 200m, 개인혼영 400·200m에서 출사표를 던진 그는 최소 2개 이상의 종목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아시아권에서는 중국 다이빙 국가대표 취안훙찬(17)이 올림픽 2연패를 겨냥하고 있다. 어머니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이빙에 입문했던 그는 14살 나이에 출전한 도쿄올림픽 여자 10m 플랫폼에서 정상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다. 3년의 시간 동안 한층 더 갈고 닦은 실력으로 다이빙 기계다운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한겨레

에펠탑 앞 샹드마르스 광장에서는 비치발리볼 경기가 치러진다. 지난 24일 연습경기가 진행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반면, 파리올림픽을 끝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작별 인사를 고하는 선수들도 있다. ‘지구 방위대’라고 불리는 미국 농구대표팀에서 르브론 제임스는 국가대표로 마지막 여정을 한다. 올해 12월이면 만 40살이 되는 제임스는 2028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때는 40대 중반이 되기에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된다. 제임스는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에 이어 12년 만에 다시 올림픽 무대에 나섰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체조 선수로 꼽히는 시몬 바일스(미국) 또한 이번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에 작별을 고한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4관왕(단체전·개인종합·도마·마루운동)을 차지하는 등 올림픽 메달만 7개를 거머쥔 그는 그간 자신을 괴롭혀온 정신적 스트레스를 말끔히 극복하고 파리에서 마지막 비상을 꿈꾼다. 1997년생으로 미국 여자 체조 대표팀에서 최고령인 그는 “더 나은 운동선수이고, 더 성숙하고 더 똑똑하며 더 꾸준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는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다.



이밖에 육상 단거리 스프린터 셸리앤 프레이저프라이스(자메이카),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초게(케냐)도 30대 후반 나이라 파리올림픽이 고별 무대가 될 전망이다. 홈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유도의 테디 리네르와 클라리스 아그베녜누(이상 프랑스), 브라질 여자 축구의 살아 있는 전설 마르타도 마지막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은 한국시각으로 주요 경기가 늦은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열린다. 한여름 밤 잠 못 들 열전이 기다리고 있다.



파리/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에 힘을 더해주세요 [한겨레후원]
▶▶무료 구독하면 선물이 한가득!▶▶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