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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 (일)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2명이 1000인분’ 학교 여사님이 일하는 환경은 더 나아졌을까?[뉴스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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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육아카페에 올라온 지난 4월26일자 서울 서초구의 한 중학교 급식. 육아카페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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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온라인 육아카페에 올라와 부실 급식 논란이 일었던 사진입니다. 식판에 밥과 국, 반찬 한 종류만 있습니다. 일반적인 식단이라면 밥과 국, 반찬 네 종류일 겁니다. 당시 언론 보도와 서울시교육청의 설명을 종합하면 서울 서초구의 A중학교에 급식을 조리할 인력이 부족해 벌어진 문제였습니다. 이 학교 조리실무사 정원은 9명이지만 구인난으로 2명이 전교생 1040명의 밥을 조리했던 것입니다.

A중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급식 사진을 보면 4월 말부터 반찬이 네 종류로 개선됐습니다. 이 중학교는 지난 23일로 여름방학에 들어갔습니다. 한 학기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학교 급식, 겉보기엔 나아졌지만 정작 급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환경은 얼마나 나아졌을까요?

26일 취재를 종합하면 조리 인력 부족 문제는 일부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학교 측이 조리실무사 5명을 기간제로 충원해 현재 7명이 급식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조리실무사는 교육공무직이라 시교육청이 채용해 교육지원청으로 배정하고 각 교육지원청이 학교로 배치합니다. 정기 채용 전까지는 기간제 등으로 대체인력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A중학교 교장은 통화에서 “나머지 결원은 지속적으로 공고를 올리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기간제 충원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기간제 조리실무사들의 계약기간은 다음달 말까지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은 9월1일자로 관내 유·초·중·고·특수학교에 교육공무직인 조리실무사를 발령 내기로 했습니다. 교육청은 지난 23일 교육공무직 공개경쟁채용 최종합격자를 발표했는데 조리실무사는 모집인원 547명 중 251명이 합격했습니다. 모집인원의 50%도 채우지 못한 겁니다. 조리실무사 지원자가 적어 교육청이 채용 접수 기간을 연장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도 조리실무사 지원율이 턱없이 낮아 A중학교에 정원만큼 조리실무사를 배치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교육청 관계자는 “결원율보다 많이 뽑지 못해 인력을 어떻게 배치할지 교육청 급식 담당 부서,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등과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A중학교에 정원 9명보다 적게 배치될 경우 학교 측이 대체인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또 반복됩니다. 이 학교 교장은 “9명 전부가 배치될 것이라는 확신이 그렇게 크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학생 수가 많고 민원이 잦은 터라 조리실무사들이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소속 학교에 지원하는 걸 꺼리기도 합니다.

조리실무사는 노동 강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용량을 조리하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됩니다. 뜨거운 물과 기름 등 위험 요소 투성이인 환경에서 일합니다. 민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지난 4월 공개한 ‘학교 급식종사자 폐질환 외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보면 2021년 1126건, 2022년 1388건, 2023년 1701건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A중학교는 조리실무사의 노동 강도를 덜기 위해 식기류 렌탈 세척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식사 후 업체가 식판을 가져가고 세척된 식판을 학교 측에 주는 식의 서비스입니다. 위생 점검차 매주 식판 세균 검사도 합니다. 급식실에서 대형 식기세척기를 쓸 때는 온수를 사용하다 보니 조리실 안이 늘 뜨거운 증기로 후텁지근했습니다. A학교 교장은 “식기세척기를 직접 안 돌리니까 노동력도 줄었지만 환경도 괜찮아졌다고 하신다”고 전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학교에 렌탈 세척 서비스에 쓰일 예산 2000만원을 추가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환기시설 부족도 학교 급식실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힙니다. 급식노동자들이 튀김, 볶음, 구이를 할 때 발생하는 발암물질인 ‘조리흄’에 노출돼 폐암 발병률이 높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A중학교도 급식실 배기 후드가 작아 서울시교육청은 내년 1~2월 환기시설 공사에 들어갑니다. 대량 조리를 도울 로봇팔도 내년 2월에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시설 환경 개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최저임금(올해 월 206만740원)보다 낮은 급식노동자들의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게 시급합니다. 조리실무사는 교육부 및 교육청 공통 임금체계 2유형에 속해 올해 기본급이 월 198만6000원입니다. 근속수당, 가족수당, 명절휴가비, 정기상여금, 위험근무수당을 받지만 기본급이 턱없이 낮습니다. 방학에는 급식실이 닫으면서 근속수당, 가족수당 등 일부 수당만 전액 보전받고 기본급은 교육청별 방학 중 근무일수대로 일할 계산됩니다. 학기 중 임금만큼 보전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육공무직의 임금은 교육부 및 17개 시·도교육청과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진행하는 집단 임금교섭에 의해 결정됩니다. 지난 24일 개시한 집단 임금교섭은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급식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학생들이 먹는 급식의 질과도 직결됩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지난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말이 있듯이 급식실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이 즐겁게 일해야 아이들에게 질 좋은 급식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 의원은 지난달 17일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는데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급식실 종사자의 건강 보장을 위한 책임을 지도록 하고 학교급식위원회에서 급식노동자 1인당 식수인원과 노동 환경 및 처우 개선을 심의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이 법안은 22대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요?


☞ ‘열악한 노동 환경’이 ‘부실 급식’으로…학생 건강권도 흔들었다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405091111001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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