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 된 티몬 환불 현장…인파 몸싸움·고성 오가
티몬·위메프 보유 현금 600억, 미정산금 3분의 1 불과
영업 마비된 티몬·위메프…유동성 확보가 관건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티몬 사옥 앞을 방문한 피해자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김한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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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4번까지 우선 처리할 텐데, 현장 번호 안 받으신 분들은 OR코드 찍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26일 오전 10시 45분께 강남구 티몬 신사옥 건물 앞. 티몬 관계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피해자들의 고성이 이어졌다. 수기로 받던 환불 신청을 OR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말이었다. 이에 곳곳에선 대기 순번이 밀릴까 우려하는 항의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이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 티몬 사옥 앞에는 환불을 받으려는 피해자 수천명이 몰리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 올라온 피해자들로 혼잡을 빚었다. 사옥 입구부터 외부까지 시민들이 에워싸면서 현장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찜통 같은 무더운 날씨에도 분노에 찬 피해자들은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피해자들끼리 무리를 지어 환불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도 보였다.
40대 이 모씨(여)는 “카드사에 이의 신청을 하면 환불을 해준다 해서 일단 신청을 해놨는데 입금이 안되고 있어 불안하다”면서 “여행 상품을 결제할 당시 티몬에서 토스로 결제하면 10% 할인해준다고 엄청 광고를 했었는데 그때 덜컥 사버린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강 모씨(여·34)는 “티몬에서 여행 상품을 결제한 아는 동생은 지금 강원도 여행 중인데, 해당 숙박에서 이용이 안된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다시 80만원을 재결제했다더라”며 “이중으로 피해를 입은 셈”이라고 분노했다.
하루 연차를 내고 현장을 찾았다는 김 모씨(남·43)는 “베트남 여행권 350만원에 대한 환불을 신청했는데 카톡 상으론 31일까지 입금해준다고 했지만 오늘 여기 안 오면 돈을 못 받을 거 같아 급하게 휴가를 쓰고 오게 됐다”고 말했다. 30대 박 모씨도 “어제 12시부터 이곳에 도착해 뜬눈으로 밤을 샜는데 700번대라 아직 환불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토로했다.
새벽 2시께 시작된 환불 인원은 이날 오전 9시 기준 150명에 그쳤다. 오전 중 환불 대기 인원은 2000명을 넘겼다. 이날 실제 환불을 받은 인원은 300여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티몬 사옥 앞에 피해자들이 환불 신청을 하기 위해 몰려 있다. 사진=김한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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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환불 접수 방식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현장에선 몸싸움도 빚어졌다. 티몬 관계자가 환불 신청을 위한 종이를 나눠주자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며 밀치는가 하면 격앙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경찰은 만일의 돌발 사태에 대비해 인력을 배치했다. 본사 앞 도로를 순찰차로 막고 도로를 통제했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티몬에서 환불받았다는 ‘인증샷’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피해자들이 개설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도 실시한 환불을 받았다는 내용과 피해 관련 대응 방안들이 공유되고 있다. 환불 상황이 처리가 더딘 만큼 환불 지연 사태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티몬이 현장에서 수기 작성을 위해 나눠준 환불 양식. 사진=김한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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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완 티몬 운영사업본부장은 이날 오전 0시 40분쯤 티몬 신사옥 지하 1층을 찾아 “위메프 대응보다 많이 지연돼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권 본부장은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순차적으로 해결해드리려 계획을 잡고 있다”며 “성수기이기도 하고 많은 분이 피해를 볼 수 있어 일단 여행 상품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단 부분만 알아달라”고 설명했다.
이번 환불 대란 사태는 ‘제2의 머지포인트‘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티몬이 현장 환불 접수를 받는 한편, 위메프 측도 지금까지 2000여명의 고객에 대해 환불 조치를 완료했다.
사실상 티몬과 위메프가 지급 불능 상황에 빠지면서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지는 상황이다. 정부에서도 뒤늦게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지만, 결국 사태 해결의 답은 모기업 큐텐의 충분한 유동성 확보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 두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600억원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티몬이 지난해 4월 공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2022년 기준 티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80억원에 불과하다. 현금화가 가능한 매출채권 및 기타 채권액은 197억원대다. 당장 고객 구매 대금 환불은 가능할 수 있으나 판매자 정산 금액까지는 쉽지 않다.
위메프도 비슷한 처지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1억원, 매출채권 및 기타 채권액은 245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티몬·위메프 두 기업의 동원 가능한 현금을 합치면 최대 593억원이다. 두 회사가 금감원에 보고한 미정산 판매금 총액의 3분의 1가량이다.
결제 대행(PG)사도 모두 철수하면서 티몬·위메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결국 생존을 위해선 외부에서의 자금 수혈밖에 없다는 평가다. 티몬·위메프 관계자는 “회사 유동성을 확보하고자 큐텐그룹사 전체가 외부 펀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25일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가 상품을 환불받기 위해 모여든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유희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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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의 원인은 사실상 ‘큐텐’의 무리한 몸집 불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본력이 없는 큐텐이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위해 실적이 부진한 플랫폼을 무리하게 인수한 것이 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큐텐은 자금 사정이 좋지 못했지만 구영배 대표는 티몬에 이어 인터파크커머스, 위메프, 위시, 에이케이(AK)몰 등 다른 업체들을 계속 인수했다.
티몬은 이미 2017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놓여 있다. 2022년 재무제표 기준 티몬의 유동자산은 1309억원인데, 유동부채가 7193억원에 이른다. 위메프의 2023년 말 기준 유동부채는 3098억원으로 유동자산(617억원)의 5배다.
업계에선 자력으로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셀러들의 대금 정산이다. 티몬과 위메프가 보통 정산 주기가 1달 반~2달 정도가 걸린다”면서 “지금 버틸 수 있는 현금 판매가 이뤄져야 하는데 모든 셀러가 다 빠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기업을 비롯한 다른 기업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사태가 진정되긴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티몬과 위메프를 향한 신뢰도 하락은 향후 업계 전반에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신생회사나 모기업이 탄탄하지 않은 기업은 소비자 이탈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안정이 보장된 플랫폼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 신뢰를 잃은 기업들의 거래량이 줄어드는 건 한순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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