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09 (월)

서방·러 24명 수감자 맞교환…"수감돼 있던 美기자 모친 노력 컸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냉전 이후 최대 규모…8 대 16 맞교환

6∼7월에 걸쳐 여러 차례 협상 벌여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러시아가 1일(현지시간) 각각 수감 중이던 24명을 동시에 석방하는 방식으로 수감자를 맞교환했다.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수감자 맞교환이다.

백악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가 간첩 혐의를 받고 러시아에 수감 중인 월스트리트저널(WS)의 에반 게르시코비치 기자 등 3명의 미국인을 포함해 모두 16명을 석방했고, 이에 대응해 서방에서는 8명의 러시아 국적 수감자를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에반 게르시코비치를 포함해 미국 해병대 출신 폴 휠런, 자유유럽방송(RFE) 기자 알수 쿠르마셰바 등 3명의 미국인과 1명의 영주권자와 함께 5명의 독일인, 7명의 러시아인 등 그동안 러시아에 수감돼 있던 16명이 석방됐다. 러시아에서 풀려난 러시아인 중 대부분은 수감 중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알렉세이 나발니와 함께 했던 인사들이다.

세계일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러시아와의 수감자 맞교환 협상으로 풀려난 자유유럽방송(RFE) 기자 알수 쿠르마셰바의 딸을 끌어안고 위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반면 서방에서 석방된 8명의 러시아 국적자 중에는 독일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암살자 바딤 크라시코프가 포함됐다. 크라시코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교환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번 수감자 교환 협상에는 미국과 독일, 러시아 뿐 아니라 터키, 폴란드, 슬로베니아, 노르웨이, 벨라루스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을 통해 “러시아 당국은 어떤 합법적이유도 없이 이들을 오랜 시간 구금해 왔다”며 “3명의 미국인들은 모두 부당하게 간첩 혐의를 적용받았다”고 규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석방은 외교와 우정의 개가”라며 “동맹들의 도움 없이 이번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브누코보 공항에서 서방이 석방한 자국 수감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AP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별도 브리핑을 통해 “푸틴과 직접적 관여는 없었다”고 부인한 뒤 “러시아 공직자들과 광범위한 접촉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러시아 측 협상 대상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저녁 미국으로 돌아오는 석방자들을 직접 맞이할 계획이다.

◆수감자 교환 어떻게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인 이번 수감자 교환 이면에는 미국과 러시아, 유럽 여러 나라의 최고 권력자와 외교관, 정보기관의 치열한 외교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여러 관계국 정부의 역할 못지 않게 러시아에 수감돼 있던 WSJ의 게르시코비치 기자 모친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협상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불씨가 됐다.

보도에 따르면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모친 엘라 게르시코비치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백악관에 도착했다. 비슷한 시간 에반 게르시코비치 기자는 러시아의 구금 시설에서 풀려나 러시아 관용기를 타고 튀르키예로 향하고 있었다. 서방과 러시아 간 수감자 교환이 이뤄지는 제3국으로 채택된 곳이었다.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풀려날 무렵 독일에서 수감 중이던 러시아 정보기관 출신 바딤 크라시코프가 튀르키예의 VIP 공항 터미널로 향하고 있었다.

크라시코프는 2019년 독일 베를린에서 조지아 출신인 전 체첸 반군 지도자 젤림칸 칸고슈빌리를 살해한 혐의로 2021년 독일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크라시코프는 푸틴 대통령이 특별히 석방을 원했던 인물로 게르시코비치 기자와 더불어 이번 수감자 교환의 핵심 인물이었다. 크라시코프는 수감 시절 교도관에게 “러시아는 나를 감옥에서 썩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세계일보

간첩 혐의를 받고 러시아에 수감 중이던 에반 게르시코비치 월스트리트저널(WS) 기자가 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해 이륙을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크라시코프가 미국이 아닌 독일에 수감 중이었다는 점이었다. 독일 외교당국은 난색을 표했다. 유럽 최대 안보 분야 국제행사인 뮌헨안보회의(MSC)가 개막하던 올해 2월 16일 나발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수감자 교환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나발니의 사망으로 교환 협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이 때 엘라가 나섰다. 그는 지난 4월 백악관 출입 기자 만찬에 초청된 뒤 독일 숄츠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협상을 진전시켜 달라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간청했다. 엘라의 간곡한 부탁에 이틀 뒤 바이든 대통령은 숄츠 총리에게 서한을 보냈고, 미국 대통령의 공식 서한은 협상 논의가 다시 힘을 받는 원동력이 됐다.

미국과 러시아의 정보 당국자들은 6∼7월에 걸쳐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다. 마침내 타결된 협상에서 러시아에서 풀려난 서방 수감자는 게르시코비치를 포함한 16명이었고, 동시에 서방에 붙잡혀 있던 8명이 러시아로 풀려났다. 그중에는 푸틴 대통령이 석방을 원했던 크라시코프도 포함됐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