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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8학군' 대치동 월세 60만원 반지하…'밥솥' 같은 방서 '명문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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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폭염]⑥서울 상경해 최저 '120만 원' 방 못 가면 반지하行

"좁고 습한 방 '밥솥' 같아…'대치동 산다' 생각으로 버텨" 한숨

[편집자주] 최고 기온 기록이 연일 경신되고 있다. '가마솥더위' '불볕더위'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말 그대로 무더위 기세가 '괴물'에 가깝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괴물폭염'이 바꿔놓은 일상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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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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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6개월 잘 달려왔는데 너무 더워서 밤에 잠을 설치네요.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대학 가야죠."

서울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2일 오후 2시쯤 서울 강남구 대치2동 골목길 한 다세대주택 앞. A 씨(19)는 이제 막 집에서 나왔지만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폭염경보는 최고 체감온도 35도를 넘는 상태가 이틀 이상 계속되거나 더위로 큰 피해가 예상될 때 내려진다.

재수생인 A 씨는 올해 11월 치러질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충남 서산에서 서울로 상경했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5평 남짓 반지하 방을 구했다.

A 씨의 집은 창문을 열어 놓아도 여름엔 바람이 전혀 들지 않는다. A 씨는 좁고 푹푹 찌는 반지하 방이 마치 '밥솥' 같다고 했다.

재수생 대부분은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하는 고시원 형태 숙소인 '학사'를 선택하지만, 최저 월 120만 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한 반지하 방을 얻는다.

스무살이 되자마자 홀로 서울 반지하에서 여름의 혹독한 더위를 온몸으로 느낄 때면 더 서럽다. 올해 '역대급 폭염'으로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A 씨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이 많았다. 잠을 설치면 다음 날 수업에서 졸기 일쑤였다.

A 씨는 "장마가 지나 침수와 곰팡이 걱정은 덜었지만 여전히 집에 있는 건 너무 답답하다"며 "전날 잠을 설치면 내가 서울로 올라올 수 있는 길은 오직 인서울, 명문대에 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틴다"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명문대' 진학 열망의 끝이라는 대치동 학원가 뒤편 골목에는 재수생들이 살고 있다. 월 200만 원 학원비를 감당하면서도 '수능 만점자'를 배출한 유명 재수학원에 다니기 위해, 맨눈으로는 판서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단과 멀리 떨어져 앉더라도 '일타 강사'('일등 스타강사'의 줄임말)의 현장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의 학생들이 이곳을 찾는다.

대치동 반지하 방 학생들은 이 경주 대열 끝자락을 붙잡고 본격적인 입시가 치러지는 11월만을 바라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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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2동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 방 모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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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방은 대부분 구축 다세대주택에 있어 시설이 열악하고 더위에 취약하지만, 식지 않는 학원가 열기 탓에 월세는 웬만한 대학가 다세대주택 지상층 방과 맞먹는다.

유명 재수학원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 뒤편인 대치2동 골목길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 B 씨(60대)는 "올해 반지하 시세는 보증금 500만~1000만 원에 월세 50만~60만 원"이라며 "돈이 없는 학생들은 별수 없으니 반지하로 많이 온다"고 설명했다.

다른 공인중개사 C 씨는 "반지하는 보증금 550만 원에 월세 60만 원이 주로 나가는데 학생이 못 버틸까 봐 3개월 단위로 단기 계약하기도 한다"며 "대부분 학사로 많이 가지만, 학사를 못 가면 반지하에 온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반지하 방에 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며 '나는 대치동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위안으로 삼는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에서 상경해 대치동의 다세대주택 6평 규모 반지하에서 재수 생활을 하고 있는 김 모 씨(19)는 "방값이라도 아껴서 이곳에 있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며 "재수학원 정규 학원비와 교재비, 특강비를 합하면 이미 한 달에 200만 원은 들어서 학원에서 급식 도우미 알바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편히 쉴 수 있어야 하는 집이 가장 덥고 불편한 공간이 된 현실이 원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김 씨는 "나는 이미 나올 때부터 지쳐 있는데 부모님이 시원한 차량으로 데려다주는 친구들 모습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되려면…"하며 말끝을 흐렸다.

4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서울은 낮 최고 체감 온도가 35도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이어진다. 열흘 이상 열대야가 계속되는 등 밤사이에도 더위가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열대야는 오후 6시 1분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최저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현상이다.

hi_na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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