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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벌레 잘 잡아” “샤워 20분”…대학 기숙사 내 룸메는 내가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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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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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를 꽤 잘 잡습니다”, “자고 있더라도 드라이기 상관없습니다.”



올해 첫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지난 2월 남도학숙(광주·전남 지자체 지원으로 운영되는 지역학사)에 들어가게 된 이강록(19)씨는 기숙사가 운영하는 ‘매칭 플랫폼’부터 훑어봤다. 이곳에선 기숙사에 들어오려는 수십명의 학생들이 취침·기상 시간과 잠버릇, 샤워시간, 청소나 야식 습관, 더위·추위를 잘 타는지, 실내 통화를 자주 하는지 등을 표시한 체크리스트와 함께 본인의 장점을 소개하는 문구들을 적어뒀다. 이씨는 수면 패턴과 흡연 여부, 취미 등을 따져 지금의 방친구(룸메이트)에게 연락해 기숙사에 함께 입소했다.



한겨레가 7일 서울 시내 대학 기숙사와 지역 학사 23곳을 취재해보니 무작위 배정이 11곳이고, 나머진 흡연·코골이 여부, 아침형·저녁형 등 기본적인 생활 습관만 조사해 배정하고 있었다. 매칭 플랫폼을 운용하고 있는 지역학사는 아직까진 남도학숙이 유일했다. 다른 기숙사에서 기거하는 학생들은 자체적으로 자신과 맞는 방친구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도 “아침 20분 정도 샤워함. 술 거의 안 마심” 등의 소개글과 함께 “친구 데려오지 않기. 통화는 밖에서 하기” 등 공동생활 희망사항을 적어둔 글을 여럿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대학 기숙사는 마음 맞는 학생끼리 공동으로 신청하면 같은 방을 배정하고 있다.



이런 달라진 풍경은 저출생과 코로나19 이후 다인실 적응이 어려워진 대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에서 스스로 ‘삶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풀이된다. 5년 넘게 기숙사 생활을 했다는 대학생 김대영(27)씨는 “여러 룸메이트를 만났는데 생활 습관이 다르다 보니 (기본 조사를 한다고 해도) 불화는 늘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으로 남도학숙의 ‘매칭 플랫폼’을 통해 방친구를 구했다는 김상민(25)씨는 “예전엔 (방친구와) 억지로 맞추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어서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한겨레

지역 학사인 남도학숙 동작관이 올해 처음 시도한 ‘룸메이트 매칭 플랫폼’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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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대학 기숙사가 수요자 중심의 교육공간으로 바뀔 수 있도록 조만간 교육부와 대학 등에 제도개선을 권고할 예정이다. 권익위가 지난해 9월 실시한 대학생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772명 중 1237명(복수응답 가능)이 개인 공간 및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특히 241명은 생활 습관 유지를 위해 1인실을 찾는다고 응답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설문조사 이후 기숙사 문제를) 올해 제도개선 과제로 선정했고 본격적인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플랫폼 등이 고질적인 대학 기숙사 방 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원수현 세종사이버대 교수(상담심리학)는 “펜데믹 이후 온라인 소통이 익숙한 학생들에겐 일종의 갈등 해결 방법의 하나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진 삼육대 교수(상담심리학)는 “불편함을 덜 수 있는 합리적인 구조로 정착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취재 도움: 이수안 교육연수생)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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