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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영어하는 착한 필리핀 이모님, 한국을 구할까[궁금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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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가정부 필리핀 가사관리사 한국 첫발

홍콩 싱가포르 등 전 세계서 50년 이상 검증

영어 잘하고 성격 좋고 가족애 강한 30대 지식인 많아

저출산·경력단절 해소 해법될지 주목

"슈퍼보모 구하는데 성공했어요. 너무 신나요."
아시아경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가운데 글로리씨가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공항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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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한 홍콩여성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훌륭한 보모를 구하는데 성공했다며 보모가 아이들과 영어공부를 하는 사진을 올렸다. 이 여성은 "아이를 공부시켜주는 슈퍼보모다. 나는 아이 가르치는 데 소질이 없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아이가 영어 읽는 과제를 마쳤다"면서 "슈퍼보모는 심지어 구글 번역을 사용해 내 일을 돕기도 했다"고 감탄했다. 홍콩 누리꾼들은 "정말 운이 좋다", "좋은 보모를 둔 건 대박이다", "복권에 당첨됐다"는 글을 남겼다. 이 여성이 공유한 정보에 따르면 슈퍼보모는 35살 필리핀 출신으로 필리핀에서 교사 일을 했지만 수입이 적어 해외서 일자리를 찾았다. 필리핀 보모의 한달 월급은 최저임금인 4730홍콩달러(현 환율기준 83만원)를 받고 있다. 홍콩에서는 30만명의 외국 가사도우미가 일하고 있는데 이중 20만명 이상이 필리핀 국적으로 추정된다.

2022년 기준 필리핀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1만8423페소(당시 환율로 한화 44만원). 우리나라의 현재 최저임금이 월 206만원이니 5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인구 1억명이 넘는 필리핀은 한때 한국보다 잘사는 아시아의 신흥강자였지만 오랜기 간 쌓여온 부정부패의 그늘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필리핀 국민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고 관광과 함께 인력 수출이 경제의 근간이 될 정도다. 필리핀이 세계의 가정부라고 불리는 이유다. 국내서는 필리핀 이모님으로 부르듯 해외에서는 보모(nanny)로 표현한다. 공식명칭은 가사관리사 또는 가사서비스노동자(Household Service Workers ·HSW)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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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사진=공항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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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기준으로 보면 해외 필리핀 근로자는 196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113만 명(57.8%)이 여성이고 82만 8천 명(42.2%)이 남성이다. 113만 명의 여성 해외근로자 중 대부분(69.8%)이 기초 직업에 종사한다. 기초 직업은 청소, 세차, 주방보조, 캐셔, 가사관리사 등이다. 196만 명의 해외근로자가 본국에 보내는 송금액만 2000억 페소(4조8천억원)에 이른다. 근로자 1인당 260만원이다. 전 세계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한 인력송출업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필리핀의 두 번째 공식언어가 영어여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은 영어를 잘하고 그들은 친절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필리핀 사람들은 많은 자녀를 둔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 항상 가족이 우선이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지난 6일 오전 7시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4주간 특화교육을 받은 뒤 9월 3일부터 6개월간 서울 시내 각 가정에서 아동 돌봄과 가사 서비스를 한다. 이들 모두 필리핀 직업훈련원에서 780시간 이상의 교육을 이수하고 정부 인증 자격증을 취득한 24∼38세의 가사관리사다. 영어가 유창하고 한국어로도 일정 수준 의사소통할 수 있다. 건강검진과 마약·범죄 이력 등 신원 검증도 거쳤다. 이들은 서울의 공동 숙소에서 출퇴근할 예정이다. 100가구 모집에 751가구가 신청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신청 사유로는 아이 방 청소나 식사, 등·하원 등이 주로 꼽혔는데, 특별히 영어 교육을 요청한 가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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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6일 아침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뒤 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항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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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업무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도 있다. 쉽게 풀이하면 아이를 위한 식사와 목욕시키기·간식주기·세탁은 된다. 하지만 아이와 무관한 집안일인 설거지·쓰레기버리기·반려동물보기·청소·음식 어려운일 등은 안된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청소, 세탁 등 육아와 관련된 가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동거가족에 대한 가사업무를 부수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나, 이용계약에 사전에 명시된 업무를 수행한다. 이용자가 직접 임의로 업무지시를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업무 범위의 세부 내역을 체크리스트 형태로 구비한다는 계획이다.

여러 명칭이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보모나 입주도우미, 가사관리사, 과거의 식모, 가정부 대신 이모 또는 이모님이 적당한듯 보인다. 필리핀 이모님들의 활약은 육아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경력단절 여성들이 다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저출산 해법이기도 하다. 시범사업 이후 본 사업으로 정착되려면 임금, 처우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현재 비용은 최저임금을 웃도는 시간당 1만3700원. 하루 4시간을 기준으로 월 119만 원, 8시간 기준으로는 238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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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육아박람회 방문객들이 육아용품 등을 살펴보고 있다. 자료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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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처럼 함께 사는 입주기준이라면 현재 아파트, 빌라 형태의 가정에서는 별도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비용은 더 들 수도 있고 출퇴근이라면 주거지 마련이 변수다. 부자들만을 위한 제도가 될 수 있어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필리핀 이모님들을 보는 시선과 인권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다. 싱가포르, 홍콩 경우 50년 이상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운영 중이지만 폭행, 감금, 협박, 임금체불 등 육체적, 정서적 학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사관리사라기보다는 노예, 하인으로 생각한다. 자는 방까지 CCTV로 감시하고 잠자는 시간 외에 하루 16시간씩 일하도록 강요받는 경우도 있다.

필리핀 정부와 필리핀 사람들에게도 한국은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이미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고 국내서 돈을 벌어 본국의 가족에 송금하고 있고 일부는 숙련공이 되거나 사업주가 돼 큰 돈을 벌기도 한다. 필리핀 이모님이 필리핀에 새로운 코리안 드림이 될지, 악몽이 될지, 한국 가정에 새로운 가사서비스로 정착될지는 시범사업의 성패에 달려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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