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지난달 18일 서이초 교사 사망 1주기를 맞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서적 아동학대 요건 구체화 등 ‘공교육 정상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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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교사까지 아동학대로 신고
10일 전북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전주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 A씨는 지난달 경찰에 교사 B씨에 대한 아동학대 진정서를 냈다. B씨는 3년 전인 2021년 A씨의 자녀가 1학년일 때 담임을 맡았던 교사다. A씨는 “1학년 때 담임교사가 아이의 왕따 등 생활지도를 방임해 현재 아이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아동학대 신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A씨는 지난해에도 아이의 옆반 교사 C씨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바 있다.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를 봤는데,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담임인 C씨가 아이에게 학교폭력 상황 재연을 강요하는 2차 가해를 했다는 이유다. 해당 사안은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무혐의로 종결됐고, C씨가 A씨를 무고로 고소하기도 했다.
A씨는 또 “아이의 생활지도를 방임했다”며 2학년 때 담임에게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협박 당시 A씨의 아이는 3학년이었다. 작년에 이미 ‘과거 담임’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있었던 셈이다.
A씨는 현재도 아이의 담임을 맡은 교사 D씨에게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씨가 결국 병가를 냈지만, A씨의 문자는 계속됐다. A씨는 “사안을 해결하지 않으면 교육청에 허위사실 유포로 아동학대 건다”, “경찰서에서 보자”는 등의 협박성 문자를 수십건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전북교사노조는 “D씨는 아동학대 신고를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교사 괴롭히려고” 신고하는 악성 학부모
교사들은 이런 반복적이고 고의성이 높은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무혐의가 나올 것을 알면서도 신고를 일삼는 것은 아동학대 신고의 목적이 교사의 ‘처벌’이 아니라 ‘괴롭힘’이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로 피소된 교사는 경찰에서 ‘혐의없음’ 결정 나와도 검찰에 송치되고, 장기간 수차례 조사·수사를 받아야 한다. 교사들에겐 이 과정 자체가 고통이다.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하는 이들이 노리는 것도 이 지점이다. 아동학대 신고 협박을 하는 것도 교사들이 아동학대 신고를 두려워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서다.
경기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하는 학부모가 원하는 것은 ‘유죄’가 아니다. 신고 후 교사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기 위한 것”이라며 “신고 자체가 목적인 셈”이라고 말했다. 전북교사노조도 “설령 무혐의 처분이 나오더라도 이미 경찰, 교육청, 지자체, 검찰 등 여러 기관의 조사를 받은 교사의 삶은 피폐해진다”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에서도 교권침해로 고발당한 학부모가 교사를 정서적 아동학대로 고소한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해당 학부모는 교사에게 ‘딸에게 별일 없길 바란다면 편지를 끝까지 읽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교사에게 자녀를 해코지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협박 편지를 보냈고, 교육청이 교권침해로 고발하자 맞대응하듯 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했다. 서울교사노조는 “적반하장식 아동학대 고소에 참담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A씨 사례처럼 과거 교사에게도 고소를 일삼는 학부모를 만나면 교사의 두려움은 배가 된다. 아동이 성인이 된 후에도 아동학대 피소의 두려움을 안고 위축된 채 교직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몇 년 전 교사를 신고했다는 것이 충격”이라며 “학급에 문제 아동이 있으면 사고 없이 빨리 1년이 지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데, 수년이 지나서도 신고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교원단체 “아동복지법 개정해 교사 보호해야”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가 많다는 것은 관련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교사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의 대부분은 무혐의 등으로 종결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교권 4법 시행 이후 7개월간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된 건수는 553건으로, 이 중 387건에 대해 교육감이 ‘정당한 생활지도’란 의견을 조사·수사기관에 제출했다. 종결된 사건의 85.6%는 불기소 또는 불입건으로 종결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사들에겐 늘 마음 한켠에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교사노조가 올해 4월에 전국 교사 1만135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교사의 84.2%가 “아동학대 신고로 괴롭힘을 당할까 걱정한다”고 답했다.
교사들은 현재 정서적 아동학대 신고 요건을 강화하고, 무고성 신고를 한 보호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서적 아동학대의 규정이 모호해 신고가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아동복지법은 정서적 아동학대를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이라고만 설명하고 있어 다소 추상적이다. 전북교사노조는 “아동복지법에 ‘학대의 목적이 고의적이고 행위가 지속적이지 않는 한 정서적 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삽입하고, 교원지위법에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보호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강력한 조치를 추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사 출신인 정성국 의원(국민의힘)과 백승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정서적 아동학대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백 의원은 “아동학대 신고를 받았을 때 모든 대응을 교원 혼자서 하는 경우가 많다“며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받았을 때 교원을 보호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교원단체들은 조속한 법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아동 인권 단체 등에서 아동학대 범위를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와 법 통과는 미지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등은 지난달 법 발의 후 공동성명을 내고 “정서적 아동학대 정의를 반복적·지속적이거나 일시적·일회적이라도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축소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개정안은 아동학대의 개념을 왜곡하고, 피해 아동이나 보호자가 ‘심한 정도’를 입증할 책임을 떠안는다”며 “과거 ‘교육’ 명목 하에 행해지던 정서적 아동학대 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될 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동복지법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도 “아동학대 처벌의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4개 교원단체협의회(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사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헌재는 법원 판결 기준으로 아동학대의 구성요건을 ‘아동에 가해진 유형력의 정도’, ‘지속성’, ‘반복성’ 등이라 밝힌 바 있다. 이를 정서적 아동학대의 구성요건으로 법에 명기하는 것이 아동학대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란 주장은 헌재 결정례에 부합하지 않는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이들 “정서적 아동학대의 구성요건을 법에 명기하면 급증하는 정서적 아동학대 신고 오남용으로 인한 사회적 낭비를 줄이는 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며 “아동복지법 개정안은 아동의 권리와 교사의 교육권을 상호 보완하고 둘 다 존중하는 방안이다. 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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