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총리직 연임 포기
야 “자민당, 반복해 온 수법”
한·미·일 안보 영향 ‘촉각’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사진)가 다음달 말 자민당 차기 총재 선거 불출마를 14일 공식 표명하면서 사실상 총리직 연임을 포기했다. 내각 지지율이 20%를 밑돌고, 당 안팎의 사임 압력에 몰리는 등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하자 불출마를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함께 인도·태평양 안보 네트워크의 중심축을 이뤘던 기시다 내각의 퇴진이 한·미·일 안보 협력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민당이 바뀌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국민들이 가장 알기 쉬운 첫걸음은 내가 물러나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불출마 이유와 관련해 “정치 불신을 초래한 사태에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치개혁으로 나아간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무거운 결단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자민당 내에서 불거진 ‘비자금 스캔들’, 자민당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간 유착 문제 등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스캔들 이후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10~20%대에 정체돼 기시다 총리는 당내 의원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아왔다. 일본에서는 내각 지지율이 30% 미만인 경우 ‘퇴진 위기’ 수준으로 평가된다.
기시다 총리의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는 총리직 연임을 포기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게 되며, 현 제1당은 자민당이다. 기시다 총리는 다음달 말 새 자민당 총재가 선출되면 총리직에서 퇴임하게 된다.
NHK방송은 “정권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내각 지지율이 침체한 상황에서 자민당 내부로부터 ‘지금 정권으로는 다음 중의원(하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며 “(정치) 불신을 불식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책임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기시다 총리는 2021년 10월 취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총리 중에는 재임 기간이 8번째로 길다. 그는 재임 기간 성과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탈피 등과 함께 한·일관계 개선을 언급하면서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로, 한·일관계 정상화를 더욱 확실한 것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은 “정권이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총재 불출마 선언은)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기시다 내각은 (방위력 강화, 저출생 대책 등) 큰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했다. 내정과 외교 양측에서 확실한 성과를 남겼다”고 말했다.
야당은 기시다 총리의 불출마 선언을 자민당의 속 보이는 전략이라며 깎아내렸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대표는 “(총재·총리 교체는) 자민당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복해온 수법”이라며 “기시다 내각은 비자금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았다. 누가 총재가 되든 자민당의 체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의 불출마 공식화에 따라 차기 총재 자리를 둘러싼 당내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고노 다로 디지털상,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출마를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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