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절 79돌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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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79돌 경축사에서 밝힌 ‘통일 비전과 통일 추진 전략’은 박정희 정부 이래 역대 정부 통일·대북정책과 남북 합의로부터의 중대한 ‘탈주 선언’이다. 분단 뒤 첫 남북 합의 문서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4년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의 핵심은 ‘상호존중, 화해협력, 평화공존, 합의통일’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돼야 한다”며 “통일 대한민국”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석열식 자유’의 깃발을 치켜든 ‘흡수통일’ 추진 선언이다. “흡수통일은 추진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공식 방침과 충돌한다.
‘자유의 북진’ 선언
윤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간절히 원하도록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자유의 가치를 북녘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고선 “북한 주민들이 다양한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정보접근권’을 확대”하겠다며 “‘북한 자유 인권 펀드’를 조성해 민간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민간’을 앞세워 북녘에 ‘외부 정보’를 주입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상호 체제 존중 △내정 불간섭 △비방·중상 금지 △파괴·전복 행위 금지를 명시한 남북기본합의서 1~4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쓰레기 풍선’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북쪽의 ‘적대적 반작용’을 불러올 게 뻔하다.
대통령의 ‘실무협의’ 제안
윤 대통령은 “남북 당국 간 실무 차원의 ‘대화협의체’ 설치”를 제안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형식·위상·주제를 규정한 남북 대화를 제안하기는 집권 뒤 처음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격에 맞지 않는 ‘실무 협의’ 제안을 두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남북 정상이 만나서 악수하는 깜짝 이벤트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세차례 정상회담으로 관계 발전을 도모한 ‘톱다운’ 방식에 대한 거부다.
문제는 대통령이 ‘자유의 북진’과 ‘통일 대한민국’을 외치며 내놓은 대화 제안에 북쪽이 호응할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한국 쓰레기들은 불변의 주적, 철저한 타국”이라며 완전한 관계 단절을 선언한 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윤 대통령의 대화 제안을 “안 될 걸 알고도 흡수통일 주장을 물타기하려는 포장지”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역시 “북쪽 반응을 낙관적으로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왜 통일방안이 아닌 ‘독트린’인가?
윤 대통령의 “자유 평화 번영의 통일 대한민국” 비전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단계적 접근’ 및 ‘3대 원칙’(자주·평화·통일)과 접점이 거의 없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화해협력도 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엔 없는) 통일의 지향점을 명확히 하고 행동 계획”을 제시한 “8·15 통일 독트린”이라고 풀이했다. 윤석열 정부의 통일방안이란 얘긴데, 대통령실은 굳이 ‘통일방안’이라는 표현은 피했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자유주의적 철학·비전이 누락됐다”며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대체할 새 통일방안을 마련하겠다던 태도와 다르다.
현 정부에서 일한 전직 고위 인사는 “정치 선전의 효과는 누리되, 보수진영에서조차 새 통일방안 마련에 반대하는 흐름을 의식해 내놓은 고육책”이라고 짚었다. 남북관계에 오래 관여해온 한 원로는 “윤 대통령의 새 통일 구상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처럼 정권이 바뀌면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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