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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통일 외치며 분열 조장…‘이상하다 못해 으스스한’ 윤석열식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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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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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맞이한 심정이 복잡하다.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기억하고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되새기기에도 부족한 국경일에 역사 논쟁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사실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뉴라이트 학자들과 정치인들이 국가연구기관과 정부 요직을 하나씩 꿰차면서 시작된 일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일본에 대한 굴욕적 외교 논쟁 등이 되풀이되다가 결정적으로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역사관이 의심스러운 이가 임명되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그가 뉴라이트이건 그의 항변대로 오해이건 적어도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과 역사학계에서 일제히 임명 철회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이번 인사는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단행한 인사 대부분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자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시각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고,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는 ‘입틀막’으로 유명한 현 경호실장이 지명됐으며, 군대 내 사고에 속수무책이었던 국방부 장관이 안보실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은 사회적 갈등과 정쟁을 유발하기 위해 대통령이 된 사람으로 생각될 정도다. 격동의 민주화와 선거 민주주의 안착을 통해 어렵사리 이뤄낸 역사적 합의와 사회적 상식을 하나씩 끄집어내 다 논쟁거리로 전락시키니 말이다.





독립운동이 공산세력과 싸움?





최근 정부가 내세우는 통일 논의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자유’ 철학을 반영한 통일담론을 제시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1994년 초당적 합의 아래 남한의 공식 통일방안으로 발표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것에 상당수 전문가가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이미 정부 곳곳에서 권력 작동의 이상 경고음이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나서 ‘통일’을 강조하는 이러한 움직임이 의아하기만 하다. 총선 패배 이후 이미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고, 사표를 낸 총리나 장관을 대신할 인물을 찾지 못해 유임이 되고,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정부가 통일을 추진할 역량도 없고, 곤두박질친 국민들의 통일의식이 경직된 관 주도 캠페인으로 전환될 리 없기 때문이다. 분명 숨겨진 이유가 존재한다.



실마리는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첫번째 광복절 경축사에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광복절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십분 활용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메시지를 발신해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윤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일본 식민지배로부터의 ‘독립’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위한 건국 운동”으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공산세력에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과정”인 독립운동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독립운동은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자유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자유’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그 반대에 북한을 두고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이나 반성 요구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독립운동의 대상으로 북한을 소환한다.



이와 같은 기조는 202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더욱 강화된다. 북한을 ‘공산전체주의’ 체제로 비난하면서, 이러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 세력이 남한 내에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한 세력의 “패륜적 공작”에 싸워 이겨야 한다고 역설하기까지 했다. 사회 통합과 연대를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전쟁의 언설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남한 내 특정 세력을 ‘공산전체주의’로 인식하는 그의 세계관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윤 대통령이 그토록 맹종하는 ‘자유’를 위해서 척결해야 할 대상은 북한이라는 ‘공산전체주의’ 체제와 북한과의 대화, 한반도 평화, 과거사 청산 등 역사 정의를 주장하는 남한 내 모든 이들로 확장된다. 정부에 비판적인 야당, 시민단체, 지식인, 언론인 모두를 ‘공산전체주의’를 추종하는 집단으로 정의 내린 윤 대통령의 사고 체계에서 협치나 대화, 성찰이 있을 턱이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라는 윤석열 정부에서 국민들은 과연 더 자유로워졌을까?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관련해서 언론인과 정치인에 대한 통신조회가 자행되고,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는 2024년 기준 세계 62위로 급격하게 하락했다. 자유시장 원칙을 내세우면서 부자들의 상속세와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지만 평범한 시민들의 근로소득세는 꿈쩍하지 않는다. 적극적 재정을 통해 복지를 늘리는 것은 공산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악마화하고, 노동조합 및 노동자들의 권리 개선을 담고 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자유로운 재산권에 반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밀기까지 한다. 이 밖에도 이 정부에서 주장하는 ‘자유’가 얼마나 선별적이며, 더 나아가 반자유적인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다시 말해 윤석열 정부의 ‘자유’는 ‘공산전체주의’를 주요 타깃으로 하는 것이며, 자신들의 반대 세력을 낙인찍기 위한 수단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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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협치도 못 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통일을 외칠 것이다. 북이라는 ‘공산전체주의’를 섬멸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한줌 남아 있는 지지자를 결속하고자 할 것이다. 체제 경쟁이 한창이던 냉전 시기에 소구력이 있었던 그 논리가 2024년 현재에 다시 소환되는 역사적 퇴행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말을 아무리 외쳐댄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대다수가 알아채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일은 상대방이 분명한 민족적 과제이다. 상대방을 척결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뿐더러 천운이 닿아 통일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 과정은 지난하고 힘겨울 것이 분명하다. 남한 내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과도 대화와 협치를 하지 못하는 역량으로 70여년을 다른 국가로 살아온 이들과 함께 살아갈 사회적 기반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유’국가를 완성하기 위해 북한을 없애버리겠다며 진격의 깃발을 드는 것은 한반도 통일은커녕 남한 사회 내 분열만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얼마 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된 팀 월즈가 도널드 트럼프를 묘사한 직관적 비판이 젊은층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트럼프와 부통령 후보 제이디 밴스를 “으스스하고, 정말 이상해요”(creepy and just weird as hell)라고 말한 것이 지금까지 민주당의 수많은 정치적 수사를 압도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토록 엄중한 시기에, 그것도 혼자서 통일을 외치며 분열을 조장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보며 나도 모르게 “크리피, 위어드”라는 월즈의 표현이 떠올랐다. 참, 항간에는 김건희 여사가 남북관계와 통일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도 있다. 정말이지 이상하다 못해 으스스하다.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의 학술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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