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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이슈 윤석열 정부 출범

윤석열 일본관의 퇴행…개인적 호감이 ‘기괴한 수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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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1월16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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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15일 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자유 통일’이라는 새로운 통일 비전과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 등장했던 ‘흡수통일론’의 연장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통일론보다 훨씬 더 관심을 끈 것은 ‘쪼개진 광복절’이었습니다.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단체들이 정부 주최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고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별도로 기념식을 했습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여기에 대거 참석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인 우원식 국회의장도 정부 경축식에 불참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눈앞에 두고 우리끼리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참담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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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계기는 윤석열 대통령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강행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계속된 뉴라이트와 극우 성향 인사 발탁이 누적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번 광복절 기념사에서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 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 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광복회는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역사·역사교육 관련 기관 임원 가운데 최소 25개 자리를 뉴라이트나 극우 성향 인사들이 차지했다는 기사를 경향신문이 8월13일치 1면과 3면에 자세히 실었습니다. 경향신문은 이를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때의 ‘역사 수정’ 움직임으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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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에게 일본은 대체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뉴라이트나 극우 성향의 인사들을 왜 자꾸 기용하는 것일까요? 윤석열 대통령에게 일본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친일파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일본이 좀 특별한 나라인 것은 맞습니다. 2023년 3월 일본 방문을 앞두고 요미우리신문과 했던 인터뷰의 마지막 문답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버지가 히토쓰바시 대학에 있었던 적이 있고, 대통령도 어렸을 때 일본에 자주 갔다고 들었다. 일본에 대한 인상은?



“아버지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듬해인 1966년 히토쓰바시대에 1년간 가셨다. 당시 (한국의) 한양대 교수였다. 우리 가족도 방학 때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지금도 히토쓰바시대가 있는 (도쿄도) 국립시가 눈에 선하다. (도쿄의) 우에노역에서 철도를 타고 국립역에서 내려 아버지 아파트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학생 때 생각한 것은 선진국답게 예쁘다는 것이다. 일본 분들은 정직하고 (무슨 일에나) 정확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히토쓰바시대 교수의 집에도 초대받아 식사했다. 아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또, 나는 일본 음식을 좋아한다. 모리소바(메밀국수), 우동, 장어덮밥 등을 좋아해서 지금도 ‘고독한 미식가’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꼭 본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버지 윤기중 교수는 공주농고,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뒤 한양대 교수를 했습니다. 이후 일본 문부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돼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1968년부터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교수를 했습니다.



어린 시절 방문한 나라에 대해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친일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이명박 대통령이 친일파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친일파라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대한민국 국민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애국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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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8월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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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검사일 때 그를 직접 만나서 취재했던 기자들은 윤석열 검사가 ‘박학다식’이었지만 외교·안보 분야는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냥 그 나이와 학력에 걸맞은 정도의 상식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이념과 정책은 대부분 대통령이 된 뒤에 형성됐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정치인의 사상과 사고의 흐름을 추적하려면 그의 말과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말과 글은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8·15 경축사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대해 했던 말과 글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과거 우리의 자유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 정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었던 일본은 이제, 세계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다. 한-일 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2022년 8월15일)



“3·1 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로 변하였다. 특히,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2023년 3월1일)



“한반도와 역내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 간에 긴밀한 정찰자산 협력과 북한 핵·미사일 정보의 실시간 공유가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다. 북한이 남침을 하는 경우 유엔사의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개입과 응징이 뒤따르게 되어 있으며, 일본의 유엔사 후방 기지는 그에 필요한 유엔군의 육해공 전력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는 곳이다.”(2023년 8월15일)



“한·일 양국은 아픈 과거를 딛고 ‘새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 자유, 인권,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양국의 안보 협력이 한층 더 공고해졌다.”(2024년 3월1일)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흐름이 느껴지십니까? 다시 읽어봐도 좀 섬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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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제79주년 광복절인 8월15일 오전 서울 효창공원 내 임정 요인, 삼의사,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한 뒤 백범김구기념관 앞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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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몰역사적인 굴종 외교’ 비판





이번 2024년 8월15일 경축사에서는 일본이나 한-일 관계에 대한 언급 자체가 거의 없었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참으로 이상하고 기괴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본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은 ‘이상하고 기괴한’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안보에 대해 편견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정치에 뛰어들었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런 윤석열 대통령의 눈과 귀를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론자들이 사로잡았습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등입니다. 이들에 의해 윤석열 대통령은 냉전 시대의 극우 이념 노선으로 급속히 의식화된 것 같습니다. 본래 ‘늦깎이’가 더 무서운 법입니다. 여기에 북-미 대화 단절, 미-중 관계 악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도 윤석열 대통령의 신념을 굳히는 쪽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국내 정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적대 관계인 ‘이재명의 민주당’이 일본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경한 반일 노선을 취한 것도 윤석열 대통령이 친일 노선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입니다. 정치 양극화가 극심한 지형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보수 기득권’ 세력의 수호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박노자 교수가 최근 한겨레에 ‘윤 정권은 왜 뉴라이트를 편애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면서 이 부분을 예리하게 짚었습니다.



“뉴라이트의 일제 합리화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근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긍정 일변도의 태도와 직결된다. 일제만 정당화되는 게 아니고 사기업과 사유재산에 뿌리를 박은 근대 자본주의 문명 자체가 인류에게 ‘축복’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반대로 사유재산을 부정한 혁명에 정권의 유래를 두고, 사기업을 국가에 복속시키는 중국이나 북한은 ‘문명의 적’으로 치부된다.



이런 이분법과 세계 체제의 패권 국가와 그 지역적 동맹 세력들에 대한 무조건적 미화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구상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초강경 대결 노선이나 중국과의 무리하고 다분히 인위적인 탈동조화는 중국과 북한을 악마화하는 사관으로 너무나 잘 합리화된다. 나아가 일본과의 사실상 군사 동맹 체결 노선과 대미 맹종 노선은 미국과 일본을 ‘자본주의 문명의 전도사’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사관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라이트 사관은 윤석열 정권 국정 철학의 ‘기본정신’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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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이후 지금까지 일본에 너무 많은 것을 내주었습니다. 그만큼 돌려받지는 못했습니다. 일본 언론이 일본 정부에 가끔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할 정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를 야당이 ‘몰역사적인 굴종 외교’라고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야당을 향해 “반자유·반통일 세력, 검은 선동 세력”이라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4·10 22대 총선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과 협치하는 것보다 ‘확실한 내 편’을 결집해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이 정권 유지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대통령실 기류에 밝은 사람들의 전언입니다.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중도·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뉴라이트와 극우 성향 인사들을 더 많이 발탁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태를 어쩌면 좋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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