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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글로벌 유니콘 기업도 한국선 영업 불가... "사업화 하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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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샌드박스 5년 점검]
<상> 퇴보 부르는 규제 장벽
OECD 국가 중 '원격진료 불가' 유일
규제 탓 해외로 눈 돌리는 혁신기업들
베트남서 AI 데이터 확보 후 한국 진출
직역 갈등, 제도 미비에 리걸 테크 지체
한국일보

닥터나우 팀 관계자들이 6월 28일 서울 강남구 닥터나우 사무실에서 약 배송 관련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있다. 닥터나우는 약 배송 서비스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규제 탓에 한국에서는 현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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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해도 되나요?"

"좋은 아이디어인데 규제 때문에..." (이슬 닥터나우 준법감시·대외정책이사)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 사무실. 반복되는 "안 될 것 같다"는 답변에 한숨이 쌓였다. 이 실장은 "좋은 아이디어도 규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다 안 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에 진료와 처방약을 원하는 곳에서 받을 수 있는 원격진료는 현재 한국에서 '조건부'다. 코로나19 당시 한시 허용했던 정부가 이를 다시 막은 탓이다. 6개월 내 대면진료를 한 적이 있으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고, 휴일·야간에만 초진 환자에게도 허용되는데 약 배송은 아직 꽉 막혀있다. 의약계 반대 영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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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닥터나우 준법감시·대외정책이사가 6월 28일 서울 강남구 닥터나우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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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유일하게 원격진료가 불가하다. 닥터나우는 고민 끝에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임경호 닥터나우 부대표는 "디지털화가 훨씬 늦은 중국에 이미 원격의료 기술이 따라잡혔다"며 "한참 뒤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면 해외 업체가 한국 시장을 장악할 텐데,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사라지게 할 수 없다"고 했다.

20일 정부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 창업 10년 이하 비상장기업) 중 55개는 한국에서 사업이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혁신 기업이 나오기 힘든 주요 원인으론 ①신기술 사업화가 힘든 법·제도 환경 ②이해관계 직역 갈등이 지목된다.

해외서 활로 찾는 스타트업

한국일보

6월 20일 서울 금천구 카이아이컴퍼니 연구소에서 한 직원이 치면세균막(플라크) 체크 솔루션 '덴티엑스'를 시연하고 있다. 올해 미국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도 선보인 기술이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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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 플랫폼 카이아이컴퍼니는 휴대폰으로 치면세균막(플라크)을 확인하면 인공지능(AI)이 맞춤 분석해 주는 '덴티엑스'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업을 인정받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의료 데이터 관련 규제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정미리 이사는 "당시 관련 지침 자체가 없었고 보수적인 상황이라 사업화 가능성이 불분명했다"고 회상했다.

이들이 베트남으로 떠난 배경이다. 의료 데이터 제공에 열려 있던 베트남은 적극 관심을 보였다. 2019년 네트워크를 형성한 뒤 '덴티베트남' 공적개발원조(ODA)로 3만 건 이상 의료 데이터를 확보, 하노이의대와도 손잡았다. 개발은 빠르게 진척됐고 사업은 급물살을 타 호치민으로 확대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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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리 카이아이컴퍼니 이사가 6월 20일 서울 금천구 카이아이컴퍼니 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달청 혁신제품 선정 등 다수 수상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내 규제로 베트남에서 먼저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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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국내에선 2022년 조달청 혁신제품 선정 과정에서 "플라크 체크가 의료 서비스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정 이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유권 해석을 요청해 수차례 답변을 청한 결과 의료법 문제를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 서비스는 10월에야 개시 예정이다.

AI 시니어케어 플랫폼 마크노바 상황도 다르지 않다. 디지털 돌봄 서비스 '노크', 경도인지장애 관리 서비스 '인지플러스' 등 곧 초고령사회가 될 한국에 필요한 기술이지만 의료 데이터 수집 규제, 의료·공공기관 등의 보수적 태도로 제약이 컸다. 최혁 대표는 "그나마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이 생겼지만, 가명 처리해도 여전히 법적 분쟁 가능성을 신중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직역 갈등, 법원 비협조... '리걸 테크' 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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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출시된 온라인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 정보 비대칭성이 큰 폐쇄적인 법률시장에서 소비자와 변호사를 이어주기 위해 개발됐으나 변호사 직역단체와의 갈등으로 실질적 합법화 인정까지 8년이 소요됐다. 로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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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비자에게 장벽이 높은 법률 분야 '리걸 테크(법+기술)' 문턱도 낮아지기 어렵다. 변호사 업계 등 직역단체로부터 환영받지 못해 규제 개선이 더딘 데다, 공개재판 원칙에도 법원이 판결문을 전면 개방하지 않아 AI 산업 성장 기반인 정보량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용보다 법률가 보조 위주로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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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순 로앤컴퍼니 법률AI연구소장이 지난달 9일 서울 강남구 성홍타워에서 열린 AI 법률 어시스턴트 '슈퍼로이어'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로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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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가 대표적이다. 변호사 정보를 알기 힘든 소비자를 위해 내놓은 로톡은 월평균 약 130만 명이 방문하는 서비스로 성장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된 건 최근 일이다. 출시 후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변호사법 위반으로 3차례 고발해 8년간 홍역을 치렀다.

합법 판단을 받았지만 변협은 자체 규정으로 로톡을 쓰는 변호사들을 징계했다. 법무부가 지난해 변협의 징계 처분을 취소하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안기순 법률AI연구소장은 "부당한 규제로 성장이 지체되는 사이 글로벌 리걸 테크 시장은 급속 성장해 유니콘 기업만 12곳"이라며 "해외 기업이 국내에 진출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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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리콘연구소가 개발한 AI 솔루션 '도큐브레인 GPT'가 탑재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챗봇 형식으로 법률 관련 문의를 하자 출처와 함께 답변이 생성됐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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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17년 일본, 영국 법률 AI 대회에서 연속 우승할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인텔리콘연구소도 오래 고초를 겪었다. 임영익 대표는 "현재는 기업·기관 법률 업무를 보조하는 생성형 AI 문서검색분석 솔루션 '도큐브레인 GPT', 나만의 법률 AI 코파일럿 '법률 GPT' 등 모델 고도화와 시장확대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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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가 6월 20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유지 기자


법원 판결문 전면 공개는 리걸 테크 업계의 숙원이다. 미확정 판결문과 소송 기록까지 무료 공개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판결문을 건당 1,000원씩 받고 미확정 형사 사건 등은 공개하지 않는다. 임 대표는 "국민 세금으로 만든 판결문을 법원이 비싸게 판매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하급심 판결과 법률 관련 해설, 연구자료 등도 적극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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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① <상> 퇴보 부르는 규제 장벽
    1. • 에어비앤비 활개, 국내 업체 불안... 규제 개혁 24%의 그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2917150000716)
    2. • 글로벌 유니콘 기업도 한국선 영업 불가... "사업화 하세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2917170005196)
    3. • 화상 투약기도, 디지털 광고 배달통도... "부가 조건이 혁신 발목"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2917180005390)
  2. ② <하> 규제 혁신 골든 타임
    1. • 정쟁에 묻혀 폐기된 '규제 혁신 법안'... 공은 22대 국회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2110370005565)
    2. • 정부 '27년까지 유니콘 5곳'... 전문가 "샌드박스 거듭나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2115560003163)
    3. • "자율주행은 중국에, 드론은 싱가포르에 뒤처진 대한민국"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2110440000019)


세종=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세종=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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