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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이란 단어를 왜 이렇게 좋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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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을지 및 제36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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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19일 을지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 ‘반국가세력’ 발언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정확히 뭐라고 했을까요? 원문은 이렇습니다.



“허위 정보와 가짜뉴스 유포, 사이버 공격과 같은 북한의 회색 지대 도발에 대한 대응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하여,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 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다.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 반국가세력으로 찍히는 거 아니냐?”라고 농담을 합니다. 대통령이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반국가세력이라는 말 자체가 희화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반국가세력은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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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저열해지는 ‘색깔론’ 정치





윤석열 대통령은 평생 검사를 한 사람입니다. 검사들은 대체로 보수 우파 성향을 갖기 쉽습니다. 분단된 우리나라에서 검찰은 오랫동안 ‘체제 수호’, ‘정권 수호’가 존재의 목적이었습니다. 양주와 맥주를 섞어서 폭탄주를 돌리던 1980~90년대에 검사들은 술잔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우익 보강”, 왼쪽으로 돌리며 “좌익 척결”을 외쳤습니다. 윤 대통령도 그런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반국가’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포함된 법률은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보안법의 목적 자체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보안법이 규정하는 반국가단체는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입니다. 반국가단체 구성, 반국가단체 목적수행, 반국가단체 자진지원·금품수수, 반국가단체 잠입·탈출, 반국가단체 찬양·고무, 반국가단체 회합·통신을 모두 처벌합니다. 심지어 불고지도 처벌합니다. 무시무시한 법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이라는 단어를 국가보안법의 ‘반국가활동’과 ‘반국가단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에 ‘반국가세력’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념의 딱지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정치에 나서면서부터였습니다. 2021년 6월29일 대선 출마 선언에서 “이 정권은 권력 사유화에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해 계속 국민을 약탈하려 한다.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고 했습니다.



2021년 12월29일 경북도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는 “좌익혁명이념, 그리고 북한 주사이론, 이런 거 배워서 민주화운동 대열에 낑겨서 마치 민주화 투사인 것처럼 지금까지 끼리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온 집단들이 이번 문재인 정권 들어서서 국가와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문재인 대통령에 맞서서 보수 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려다 보니 무리하게 색깔론까지 제기한 것입니다.



그래도 대통령 취임 직후에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우리는 여야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민생 앞에서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온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며 ‘협치’를 강조하는 등 짐짓 여유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뒤 두달도 안 돼서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낮아지는 ‘데드 크로스’가 일어나고, 취임 5개월 만에 긍정 평가는 20%대, 부정 평가는 60%대를 기록하는 등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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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갤럽 2022년 10월 둘째 주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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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0월19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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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19일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들과의 오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실이 정리해서 배포한 내용입니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고, 안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확신을 갖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



야당을 반국가세력이라고 비난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협치의 대상은 본래 야당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국가세력’보다 더 자극적인 ‘주사파’라는 단어가 이목을 끌었습니다. 다음날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기자가 질문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주사파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잘 아는 거니까. 어느 특정인을 겨냥해서 한 얘긴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야당·국민에 대한 선전포고 같은





그 뒤 2023년 6월13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6월이 ‘보훈의 달’임을 환기하며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행위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반국가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데나 ‘반국가’ 딱지를 붙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뒤 ‘반국가’라는 단어가 구미에 딱 맞았는지, 발언 반도가 훅 늘어났습니다. 6월28일 자유총연맹 창립 69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를 반국가세력이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그리고 8월15일 경축사에서 마침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 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이러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왔다.”



이 정도면 야당과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습니다. 8월21일 을지 국무회의에서는 “북한은 개전 초부터 위장평화 공세와 가짜뉴스 유포, 반국가세력들을 활용한 선전 선동으로 극심한 사회 혼란과 분열을 야기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전승 기념식에서도 “공산 세력과 그 추종 세력, 반국가세력들은 허위 조작과 선전 선동으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024년 3월26일 국무회의에서는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는 것은 국가안보를 무너뜨리고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반국가세력들이 국가안보를 흔들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4·10 22대 총선 참패 뒤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발언은 잠시 잦아드는 듯했습니다. 기세가 꺾인 것 같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8·15 광복절 경축사로 다시 시작됐습니다.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 “검은 선동 세력”에 “국민들이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흘 뒤 을지 국무회의에서 ‘반국가세력’이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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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상처 부인·회피





윤석열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이라는 단어를 왜 이렇게 좋아할까요?



프로이트가 만든 ‘방어기제’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영어로 ‘디펜스 메커니즘’입니다. 이성적인 방법으로 자아가 겪는 갈등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심리적 상처를 막고자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고 회피하는 사고 및 행위를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방어기제로 ‘투사’(projection)가 있습니다.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생각, 태도, 감정, 욕구 등의 원인을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사람입니다. 뭔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원인과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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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자신에게 미리 경고하지 않은 관료, 학자, 재계, 언론을 비난했습니다. 노동법 개정과 기아 처리에 협조하지 않은 ‘김대중씨를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광우병 사태의 책임을 미국과의 협상을 마무리하지 않고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 문화방송 ‘피디수첩’, 대선 불복 정치 세력, 시민사회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는 자신의 ‘망언’이 촛불집회 확산의 기폭제가 됐는데도, 회고록에서 이 대목은 쏙 빼놓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3·9 대선 승리 뒤 국립현충원 방명록에 “위대한 국민과 함께 통합과 번영의 나라 만들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잘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사와 국정 실패로 취임 초부터 지지율이 폭락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터졌고, 부산 엑스포 유치도 실패했습니다.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논란, 채 상병 사건 수사 개입 논란, 대파 논란 등 자충수로 총선에서 참패했습니다. 그런데도 반성하지 않고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반국가세력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는 고백 아닐까요? 갈라치기와 남 탓은 이제 그만하고, 야당과의 대화, 국민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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