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3 (금)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국립중앙의료원, 10%가 자살 기도 환자...“의료 공백에도 마음 아픈 이들 위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립중앙의료원 권역외상센터 개소 1주년, 본지 기자가 가보니

국립중앙의료원 권역외상센터는 서울 유일 권역외상센터다. 지난 1년 동안 공사장에서 다친 노동자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경상 환자들이 끊임없이 이송돼 왔다. 2018년 8명 규모의 작은 ‘외상팀’을 마련했던 국립중앙의료원에는 지금 100명이 넘는 권역외상센터 전담 의료진이 일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NMC) 권역외상센터가 개소 1주년을 맞았다.

조선일보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 의료진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모습. /국립중앙의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6일 자정, 본지 기자는 김영환 외상센터장 안내로 권역외상센터 중환자실 오후 회진에 참여했다. 이날 중환자실에는 당일 아침 교통 사고로 들어온 환자부터 의식을 잃고 50일 이상 입원해있는 환자까지 포함해 20개 병상 중 14개가 차있었다. 외부 공연장 작업 중 높은 곳에서 떨어져 입원한 50대 가장에겐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안 된 둘째 아이가 있었다. 김 센터장은 “오후 회진에선 환자들의 바이탈 사인(vital sign·활력 징후), 투약량을 포함해 착란으로 수면을 방해 받는 환자들의 상태 등 환자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핀다”면서 “중환자실은 뇌사 환자의 장기 기증 여부 등, 삶과 죽음에 관한 논의가 수도 없이 이뤄지는 공간”이라고 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권역외상센터에는 유독 자살 기도 환자가 많다고 한다. 외상센터에 따르면 작년 입원한 총 환자의 약 10%가 자살 기도 환자다. 자살 기도나 자해를 한 환자는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더 큰 사고를 방지해야 하므로, 경상이어도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된다.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한 20대는 질환을 앓고 있는데, 같은 건물에서 3번이나 뛰어내렸다. 한 10대 환자는 학업 스트레스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김미나 외과전문의는 “환자 가족 중 일부는 병원비를 내기 어렵다며 재활치료 준비 전 단계인 ‘급성기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면서 “이런 현실적인 문제 앞에선 치료 전 보호자의 동의를 얻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잦게 일어나자 국립중앙의료원 권역외상센터에서는 지난 4월 취약 계층 환자를 위한 사회복지사를 특별히 고용하기도 했다. 병원비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 복지 제도를 안내하고 환자 가족 마음의 안정을 돕는 등 심적·물적으로 지원한다고 한다.

조선일보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로 소방구급차량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모습. /국립중앙의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의료원는 국내 17개 권역외상센터 중 유일하게 ‘준중환자실’을 마련했다. 김영환 외상센터장은 “단순히 외상을 치료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 아픈 이들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셈”이라고 했다. 준중환자실 10개 병상으로 옮겨진 환자들은 상주하는 의료진에게 관리·감독을 받는다.

외상센터 의료진들은 마음이 아픈 환자들과 대화하며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지도도 받는다고 한다. 마음의 상처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며, 아픈 원인이나 치료 상황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주로 논의한다. 정진호 외상전문의는 “자살 환자는 연령을 따지지 않고 많이 발생하고, 마음의 벽을 견고하게 쌓아둔 환자와 그 보호자들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면서 “의료진들끼리 ‘서울은 슬픈 도시’라고 말하곤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 의료진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모습. /국립중앙의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권역외상센터의 목표는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을 낮추는 것이다.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이란 외상으로 사망한 환자 중 ‘골든 타임’ 안에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망자 비율을 뜻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조사된 전국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은 2021년 13.9%(2015년 30.5%), 서울지역에 한해서는 대략 12%(2015년 30.8%)로, 낮아지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외상환자를 담당하는 권역외상센터가 확대된 것을 주요한 개선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의료진들은 각자 사정을 가진 외상 환자와 그 가족을 만날 때마다 심리적인 어려움을 느끼지만 차마 현장을 떠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외상을 전담하는 의사 수가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외상환자는 갑자기 발생하고, 핼러윈 참사처럼 다수의 환자가 발생하기도 하므로 의료진들은 권역외상센터에 교대로 상주해야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이 흔들리고 업무 강도가 높다 보니 전공의들에게 외상전문의는 비선호 분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직접 환자를 보고 치료하는 현장에서 만들어진 책임감과 보람을 동력으로 꼽았다. 외상센터의 김영웅 심장혈관흉부외과전문의는 “외상환자를 전담하는 인력은 권역외상센터에만 있으니, 서울 시내에서 가슴 부분을 다친 외상환자를 전담할 흉부외상전문의는 (본인) 한 명인 셈”이라면서 “오늘도 서울에선 누군가 다칠텐데, 그 사람의 가슴을 치료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외상센터를 지킨다”고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4~5년 후쯤 바로 옆인 서울 중구 미군 공병단 부지로 이전할 예정이다. 김영환 외상센터장은 “부지 이전 후 권역외상센터는 감염병·화상·외상을 유기적으로 다루는 ‘중앙재난병원’으로까지 발전시킬 계획”이라며 “코로나와 같은 질병 뿐 아니라 각종 질환에 감염 가능성이 높은 화상 등 외상 환자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했다. 또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위한 폐쇄병동 시설을 마련하고 정신의학과도 강화해 서울 권역의 심리적 보루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김보경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