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4 (토)

‘디지털 피난처’로 살찌운 텔레그램, 성착취 ‘디지털 온상’이 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39)가 24일(현지 시각) 프랑스에서 체포되면서, 그간 한국 사회를 뒤흔든 각종 성 착취 범죄의 통로가 되어온 텔레그램의 지난 행적도 주목받고 있다. 2014년과 2016년 두 차례 ‘텔레그램 망명’으로 한국 이용자를 크게 불린 텔레그램은 엔(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 착취의 온상이 되었지만,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에는 철저히 ‘무응답’으로 일관해왔다.



한국에서 텔레그램이 처음 주요 메신저로 떠오른 것은 10년 전 박근혜 정부 시절이다. 2014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고 발언한 직후, 검찰은 별도의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을 구성했다. 당시 검찰 전담 수사팀이 모바일 메신저 등을 모니터링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카카오톡 사용자들이 대거 텔레그램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2013년 독일에서 출시돼 현재 본사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둔 텔레그램은 강력한 보안성이 특징이다. 특히 ‘종단간 암호화 기술’을 활용한 ‘비밀 대화’는 송신자와 수신자를 제외하고 중간에서 가로채 해독하는 게 불가능하다.



1년여 뒤인 2016년 4월 테러방지법 통과는 ‘2차 텔레그램 망명’을 촉발했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에 의한 사찰 우려가 제기되면서 카카오톡 등 국내 메신저 이용자들이 또다시 대거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당시에는 야당뿐 아니라 법안 통과를 주도한 여당(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인사들도 연달아 텔레그램에 가입하는 등 정치권의 ‘망명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렇듯 수사기관이 사인 간의 내밀한 대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우려가 몇 차례 반복되면서, 텔레그램의 국내 이용자 수는 빠르게 늘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텔레그램의 국내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300만명으로 카카오톡(4492만명)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강력한 보안성에는 치명적인 그늘도 존재한다. 2019년 텔레그램 엔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이 대표적이다.



2020년 10월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텔레그램 자료제공 요청 내역’을 보면, 경찰은 엔번방 수사 목적으로 7개월 동안 7차례에 걸쳐 텔레그램에 수사협조 메일을 보냈으나 답장을 받지 못 했다. 당시 텔레그램 보안 담당자의 메일주소 조차 파악하지 못한 경찰은 게시물 신고에 쓰이는 범용 이메일 주소로 공문을 보냈다. 결국 텔레그램의 협조를 얻지 못한 경찰은 트위터·페이스북·가상화폐거래소 등 다른 플랫폼에서 파악한 물증으로 조주빈 등 가해자를 붙잡았다.



올해 5월에는 텔레그램을 활용한 ‘서울대 불법합성물 유포 사건’이 새롭게 드러나기도 했다. 서울대 졸업생들이 졸업 앨범이나 사회관계망에 올라온 동문들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한 성범죄 영상물을 만들어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유포한 것이다. 당시 피해자들의 신고에 경찰은 ‘텔레그램 서버가 국외에 있어,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며 미온적 태도를 보였지만, 피해자와 시민활동가들이 위장수사 방식으로 가해자를 특정하면서 범죄의 덜미가 잡혔다. 이후 서울대뿐만이 아니라 전국 70여개 대학별로 분류된 불법합성 성범죄물 공유 텔레그램방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렇듯 최근까지 각종 범죄의 통로로 애용되고 있지만 텔레그램은 여전히 법망의 사각지대에 있다. 2021년 12월부터 시행 중인 이른바 ‘엔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 개정안)에는 텔레그램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있다. 텔레그램이 ‘사적 대화방’이어서 인터넷 사업자에게 성범죄물 삭제 등의 조처를 하도록 한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에 힘을 더해주세요 [한겨레 후원]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