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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텔레그램은 어떻게 '범죄 양성소'(?)가 됐나 [이슈크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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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앱.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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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이 전 세계적인 화두에 올랐습니다. 텔레그램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가 경찰에 체포된 건데요.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경찰은 각종 범죄에 대한 초기 수사를 벌이고 두로프를 범죄의 조정대리자(coordinating agency)로 간주했습니다. 이에 체포 영장을 발부, 전용기를 타고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르부르제 공항을 통해 파리로 돌아온 두로프를 붙잡은 겁니다.

텔레그램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메신저입니다. 타 메신저들보다 강력한 보안성으로 잘 알려져 있죠.

그러나 동시에 악명(?)도 높습니다. 루머 유포부터 사기, 마약, 성폭력 등 각종 범죄의 온상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요. 프랑스 당국이 주목한 것도 이 부분입니다. 텔레그램이 관리 미비로 각종 범죄를 방관하고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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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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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세계 4위 메신저…비결은 '보안성'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두로프는 텔레그램에 앞서 2007년 또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콘탁테'(VK)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VK는 '러시아판 페이스북'으로 통하는데요. 두로프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에 빗댄 '러시아의 저커버그'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죠.

VK는 2011년 러시아 총선과 대선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는 시위 정보가 확산하는 창구 기능을 했습니다. 이란과 중동, 홍콩 등에서도 반정부 시위의 소통 수단으로 활발히 이용됐죠.

러시아 정부가 가만있지는 않았습니다. 러시아 보안기관은 줄곧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VK 이용자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의 계정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는데요. 두로프는 이를 거부하고 2014년 VK CEO직에서 물러났고 독일로 이주했죠. 이후 아랍에미리트(UAE), 프랑스, 카리브해 세인트키츠네비스 등의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현재 텔레그램 본사는 UAE 두바이에 있습니다.

러시아 당국의 사용자 정보 요구, 검열 압박에 시달렸던 두로프가 2013년 8월 형 니콜라이와 만든 메신저가 바로 텔레그램입니다.

텔레그램은 타 플랫폼보다 철저한 보안성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두로프는 사업 초기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해왔습니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두 사람 외에는 암호화된 메시지를 풀 수 없는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이 적용돼 있는데요. 암호화된 메시지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메시지 송신자와 수신자에게만 주어집니다.

텔레그램에 따르면 서버에도 암호화된 메시지만 저장됩니다. 비밀 대화 기능으로 대화 내용이 일정 시간 후에는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수신자의 디바이스에 남겨진 발신자 메시지도 삭제할 수 있습니다. 삭제된 데이터는 서버 기록도 남지 않는데, 중요한 건 텔레그램의 서버 위치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텔레그램의 본사 위치는 두바이로 명확하지만, 텔레그램의 데이터 서버는 10년 전 영국, 싱가포르, 미국에 분산돼 있다고 알려진 게 다입니다. 텔레그램은 수시로 서버를 옮기고 있죠.

채팅방 수용 인원도 남다릅니다. 카카오톡은 그룹 채팅방 최대 수용 인원이 1500명이지만, 텔레그램은 100배가 넘는 20만 명에 달합니다. 카카오톡 방에 올린 사진이나 텍스트 등의 파일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료 서비스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텔레그램은 무제한 기간으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설립 초기 주로 암호화폐 커뮤니티로 사용되던 텔레그램은 타 메신저보다 높은 보안성, 익명성을 내세워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텔레그램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2018년 2억 명, 2021년 5억 명을 돌파한 뒤 현재 약 9억 명으로 불어났죠. 전 세계 메신저 앱 중에서 4위에 해당합니다.

국내 대기업에서도 텔레그램을 임직원의 업무 및 소통 채널로 활용합니다. 특히 증권사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가 개설한 텔레그램 채널은 수천~수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리서치 보고서나 요약본, 시황 자료 등을 제공하는 채널을 구독만 하면 편리하게 정보를 받아볼 수 있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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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온라인 커뮤니티, X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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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그늘'…수사기관 협조 요청에도 철저히 '침묵'


강력한 보안성과 익명성으로 빛을 본 텔레그램이지만, 치명적인 그림자가 있습니다. 전 세계 약 10억 명이 사용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지만, 동시에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됐다는 겁니다.

텔레그램은 극단적인 콘텐츠 유통, 마약 거래, 금전 사기 등 악성 정보의 중심지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국내 사례를 들어보자면, 이달 초에는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하면서 투자 사기 피해자들을 상대로 재차 수십억 원대 코인 사기 범행을 벌인 A(35) 씨 일당이 실형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A 씨 일당은 과거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텔레그램에서 사들인 뒤,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하면서 전화를 걸어 "손실이 복구될 수 있도록 코인을 지급하겠다"고 속였습니다.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인천과 경기 의정부 등 4곳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피해자 123명으로부터 70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죠.

소위 '먹튀' 목적의 스캠 코인(사기 코인)도 텔레그램에서 활발히 일어납니다. 흔히 '리딩방'이라고 불리는 채팅방이 수천 개에 달하는데요. 이곳에서는 "거래소 관계자와 합의를 마쳤다"며 마치 상장 약속이라도 받은 것처럼 특정 코인으로 투자를 유도하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실제로 상장되더라도 ‘상장 브로커’를 통해 상장한 코인은 유의 종목 지정, 상장 폐지 등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 유의해야 하죠.

마약 거래도 횡행합니다. 개인 간 거래부터 필리핀 등 타국에서 국내로 수십억 원 상당의 마약을 밀반입해 판매하는 '업자'까지 규모도 다양한데요. 최근 대전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 범죄단체조직, 특정 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을 받는 총책 B(45) 씨 등 조직 간부 9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일당 45명을 불구속 송치한 바 있습니다. B 씨는 2020년부터 필리핀에서 암호와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 판매 채널을 만들고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해 50억 원 상당에 달하는 필로폰 등 약 8㎏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중 필로폰은 무려 6㎏ 상당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필로폰 1회 투약량이 0.03g인 점을 고려하면 B 씨가 판매한 필로폰은 2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입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텔레그램 기반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유포 사건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26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지난달 말까지 초·중·고등학교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가 10건 접수됐고 이와 관련해 14세 이상 청소년 10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는데요. 이어 "해당 범죄에 대해서도 촉법소년 규정이 적용된다"면서 "시교육청 등과 같이 사례, 처벌 조항 등을 정리해 학교별로 진출해 예방 교육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죠.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에 대한 것도 만들어 퍼지고, IT 기기에 익숙한 청소년 중심으로 확산해 굉장히 우려스럽다"며 "심각한 범죄 행위로서 처벌받을 수 있고, 이러한 범죄 전력은 향후 사회생활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교육청과 협의해 학생들에게 교육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5월에는 텔레그램을 활용한 '서울대 불법합성물 유포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서울대 졸업생들이 졸업 앨범이나 SNS에 올라온 동문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한 성범죄물을 만들고 텔레그램으로 이를 유포했는데요. 이후 서울대뿐 아니라 전국 70여 개 대학별로 분류된 불법합성 성범죄물 공유 텔레그램방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죠. 지난 주말 사이에는 초·중·고등학교까지 이 같은 범죄에 노출된 정황이 드러나며 충격을 안겼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범죄에 대해 텔레그램이 철저한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조주빈 등 'n번방' 성착취물 제작·유포 사건 주도자들도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움직인 바 있는데요. 가해자 일당은 텔레그램으로 성착취물을 유포하고, 외부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방을 폭파하면서 수사망을 피했습니다.

2020년 10월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텔레그램 자료제공 요청 내역'에 따르면 경찰은 n번방 수사 목적으로 7개월 동안 7차례에 걸쳐 텔레그램에 수사협조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게시물 신고에 쓰이는 범용 이메일 주소로 공문을 보냈는데 협조를 받지 못했고, 결국 트위터·페이스북·가상화폐 거래소 등 다른 플랫폼에서 파악한 물증으로 조주빈 등 가해자를 붙잡았죠.

각종 범죄가 판치면서 '범죄 소굴'이라는 악명까지 쓴 텔레그램이지만, '중립적 플랫폼'으로 남아야 한다는 입장은 견고했습니다. 각국 수사당국의 협조 요청을 무시해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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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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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방관 책임 물어야" vs "표현의 자유 족쇄"…당신의 생각은?


텔레그램은 프랑스에서 구금된 두로프와 관련해 성명을 내고 "텔레그램은 디지털 서비스법을 포함한 유럽연합(EU) 법률을 준수하고 있으며, 업계 표준에 부합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며 "플랫폼이나 그 소유주가 플랫폼 남용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건 터무니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에 가까운 이용자들이 텔레그램을 의사소통 수단이자 중요한 정보 출처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조속한 사태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죠.

전 세계 SNS 플랫폼들도 일제히 두로프의 체포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사실상 SNS의 미래 모습이 이번 사안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마침 유해 콘텐츠로 SNS에 대한 각종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는 요즘입니다. 미국, 프랑스, EU, 대만 등 다양한 국가에서 청소년의 스마트폰과 SNS 사용에 제한을 두고 있고, SNS 기업들이 혐오와 폭력을 조장할 수 있는 유해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모니터링, 삭제하도록 하는 책임도 나날이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매체 TF1은 "두로프는 구속될 게 확실하다"며 "억만장자인 그는 도주할 수 있는 막대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그가 법정에 출석하겠다는 약속은 판사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로 두로프의 재산은 155억 달러(약 20조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요. 이 매체는 두로프가 "최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도 예측했죠. 프랑스 OFMIN의 수사관 중 한 명은 AFP 등에 "텔레그램이 아무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끝났다"고 강조했죠.

반면 일각에서는 두로프의 체포 소식 이후 반발이 일었습니다. SNS X(옛 트위터)를 소유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유럽의 2030년은 밈을 좋아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며 두로프의 석방을 촉구했습니다. 마리아 부티나 러시아 국회의원도 "두로프의 체포는 표현의 자유가 없다는 의미"라며 "유럽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죽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러시아 블로거들은 세계 각국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의 항의 시위를 촉구하기도 했죠.

프랑스 경찰은 텔레그램을 통해 발생하고 있는 마약 밀매, 자금 세탁, 아동 성범죄 등 각종 범죄와 관련해 두로프에 대한 예비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번 사안은 가짜 뉴스 유통 경로 등으로도 이용되는 각종 온라인 플랫폼에 책임을 부여해야 할 필요성에 관한 토론까지 부를 것으로 보이는데요. 불법 콘텐츠가 유통되는 플랫폼에 사회적인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까지 지울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yxxj@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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