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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기억할 오늘] 'HAL 9000'의 섬뜩한 아이러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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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 해리 데이커의 'Daisy Bell'
한국일보

브라더스 포의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처럼, 2인승 자전거(tandem bicycle)는 가난한 연인의 로맨스를 상징하기도 한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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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섬뜩한 인공지능(AI) 컴퓨터 ‘HAL 9000’이 마지막 숨(에너지)을 모아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영국 대중음악가 해리 데이커(Harry Dacre 1857~1922)의 1892년 노래 ‘데이지 벨(Daisy Bell)’의 후렴구.
“데이지, 데이지, 이제 대답해 줘/ 난 당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야/ 멋진 결혼식은 아닐 거야/ 내겐 마차 살 돈도 없어/ 하지만 2인용 자전거에 앉은 당신은 사랑스러울 거야”

데이커는 미국으로 건너오며 자전거를 가져왔다가 수입관세를 물었다. 한 친구가 “2인용 자전거를 안 가져온 게 다행이네”라고 한 농담에서 착안한 노래라고 한다. ‘2인용 자전거(Tandem Bicycle)’란 부제를 단 저 노래는 큰 인기를 끌었고 2인용 자전거는 가난한 연인의 애틋한 로맨스를 상징하게 됐다. 1961년 벨 연구소는 진공관 컴퓨터 ‘IBM 704’를 이용한 음성 합성실험에 저 노래를 썼다. 큐브릭은 컴퓨터가 부른 인류 최초의 노래이자 순박한 사랑 노래를 인류 최초의 AI 악당에게 부르게 함으로써 사랑과 열정, 과학기술의 아이러니를 떠올리게 했다.

자전거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2인용 자전거는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부터 1972년 뮌헨올림픽까지 올림픽 정식 종목이었다. 이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시각장애인(뒷좌석)을 위한 패럴림픽 종목으로만 남았고, 일상에선 주로 연인-가족의 유원지 오락거리로 쓰인다. 타본 이들은 알겠지만 2인용 자전거는 앞자리 파일럿과 뒷자리 탑승자(stoker)의 호흡과 협력이 중요하다.
영국인 사이클리스트 베로니카(Veronica)와 콜린 스카길(Colin Scargill) 부부가 2인용 자전거로 1974년 2월 미국 뉴욕을 출발, 19개월간 약 2만9,000km를 달려 세계를 한 바퀴 돈 뒤 75년 8월 27일 뉴욕으로 되돌아온 일이 있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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